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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위길이 돌아보니 하필이면 방금 전까지 찾았던 강석배였다.

'허! 이게 무슨 일인고!'

백위길은 잠시 망설이다가 시치미를 떼며 오히려 강석배에게 물었다.

"그러는 강별감께선 어디로 가시는지요?"

태연한 척 도로 묻는 백위길의 말에 강석배는 뜻밖에도 약간 당황해 하는 듯했다.

"나야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일세만……. 포교들은 남촌에 주로 살지 않나? 지게에 땔감거리까지 잔뜩 지고 가니 집에 가는 길 같아서 하는 소릴세."

"그렇지 않아도 집으로 돌아갈 참이오."

백위길은 몸을 돌리며 소리쳤고 강석배는 다시 특유의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백위길에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땔감을 사게나! 어디 포교가 땔감을 구한답시고 사대문 안에서 지게질이나 하고 다니면 체통이 서나!"

"체통이 밥 먹여 주나……."

백위길은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투덜거리며 지게를 추슬렀다. 사실 강석배를 만나면 말없이 돈을 돌려줄 참이었지만 다소 융통성 없는 백위길의 생각으로서는 땔감을 사느라 석 냥을 빼버린 엽전 꾸러미를 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옹기 짐을 지고 다닌 적이 있기에 백위길은 지게질이 서툴지는 않았으나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백위길이 뒤돌아보니 저만치 빨간 옷의 강석배가 산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저 놈이 애향이를 만나러 가는 길임에 틀림없다.'

백위길은 맥이 탁 풀리며 지게를 진 채 너털너털 집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복색의 강석배와 지게까지 진 채 추레한 복색을 한 자신이 애향이에게 행여 비교라도 된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멀리서 강석배는 백위길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대체 모를 녀석이군.'

강석배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가 싶더니 도중에 옆으로 새어 산비탈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석배가 얼마쯤 내려가자 조그만 오두막이 보였고 그 안에서 왁자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쌍준오에 삼오!"

"푸하하하! 났구나 났어!"

안에서는 옴 땡추와 그 패거리들이 한창 투전판을 벌이고 있었다. 강석배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순간적으로 소리가 뚝 끊기며 옴 땡추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별감인가?"

"예."

강석배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퀴퀴한 골방에 들어서서 잠시 코를 찡그렸다.

"자네가 이 시각에 여기 어인 일인가?"

"급히 전해야 할 소식을 들었사옵니다. 지금 삼남에는 가뭄이 들어 굶주리는 자들이 늘어가고 한양 인근에 역병이 번져 민심이 날로 흉흉해 지고 있다 하옵니다."

옴 땡추는 등을 벅벅 긁은 뒤며 투전패를 던져 놓으며 하품을 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옴 땡추가 너무나 무심한 반응을 보이자 강석배는 적잖이 당황해 하며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어, 어쨌다니요. 민심이 흉흉할 때를 노려야 하지 않겟습니까?"

옴 땡추는 비웃음까지 담아 힐책하듯 강석배에게 말했다.

"겨우 그런 말을 전하자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민심이 흉흉하기를 따지면 평서 대원수가 봉기를 일으킨 때가 더했지. 겨우 역병이 돌고 가뭄이 났다는 것으로 민심을 이용한다면 이 나라는 골백번도 더 뒤집어져야 했을 걸세."

강석배는 그 말에 무안해 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자신의 능력과 의지를 보여 주고자 한 일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일을 당하자 동궁전의 별감이라는 직위에 자긍심을 가진 그로서는 자괴감을 느낄 지경이었다.

"자네도 한 판 끼게나. 아니면 술이라도 한 잔 하겠나?"

"아, 아니옵니다. 그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강석배는 서둘러 움막을 빠져나왔고 옴 땡추는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투전을 해도 자기 손가락만 쳐다 봤음에도 좋은 패가 들어왔다고 흥분하는 사람이 있지. 조금 나은 게 자기 패만 보는 사람이고 가장 뛰어난 자가 모든 패를 훤히 꿰뚫고 있는 자가 아닌가."

혹 땡추가 투전패를 좍 돌리며 소리쳤다.

"아따 형님! 당연한 말을 무게 잡고 중얼거리지 말고 패나 받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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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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