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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로 비국(備局 : 비변사)에서 충주로 포교를 보내어 달라 요청했단 말이지?"

늦은 등청으로 아침 조회에 참석하지 못한 이순보가 박춘호의 말에 달갑지 않은 듯 되물었다.

"그렇네 이포교, 그래서 자네가 가 줘야겠네."

"이 사람...... 내가 충주까지 갈 여유가 있는 줄 아나? 다른 이를 보내게!"

포장 박춘호는 거부하며 돌아서는 이순보의 뒤통수를 보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일인즉, 충주에서 세곡을 빼돌리는 심증이 있으니 포도청에서 포교를 보내어 증거를 수집하고 해당자들을 체포하라는 명이 내린 것이었기에 말을 꺼낸 것이었다.

"이보게! 그럼 내가 알아서 사람을 뽑아 보낼 것인 즉, 나중에 아무 말 하지 말게나."

박춘호의 말에 이순보는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이고선 제 갈 길로 가 버렸다. 이리해서 김언로와 백위길이 충주로 급파되게 되었다.

"허허허, 이거 차라리 잘 된 일 아닌가? 충주라면 인근에 절경도 많으니 유람이나 다녀오는 기분으로 갑세나."

김언로는 길을 떠나며 흥겨워했지만 백위길은 그리 마냥 흥겨워할 수 없었다. 어느덧 가슴속에 자리잡은 애향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아야 할텐데......'

원칙적으로 한양에서 온 포교는 누구에게도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며 활동을 해야 함에도 김언로는 충주에 당도하자마자 그곳의 아전들을 불러 일단 자신이 포교임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당연히 아전들은 술과 밥을 내어놓으며 자신의 집에 숙소까지 마련하는 등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평소의 백위길이라면 이런 일에 눈살을 찌푸릴 터였지만 그의 마음은 그저 한양의 애향이에게만 머물러 있었다.

"거 충주의 세곡을 누군가가 빼돌린다는 얘기가 있는 데 말일세......"

술 한잔을 걸친 후 김언로가 지나가는 듯한 소리로 말하자 아전들은 정색을 하며 손을 내 저었다.

"어찌 감히 나라에 바칠 대동미를 축낼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일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나본데 저희들은 그저 장부에 적힌 대로 세곡을 거두고 올리는 것뿐입니다. 허나......"

"허나 뭔가?"

순간 김언로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조창에서 세곡을 배에 실어 보낸 후에는 우리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조창을 담당하는 이는 누군가?"

"모영하란 자입니다."

백위길이 분위기를 보니 아전들도 세곡에 대해서는 모영하란 이를 의심하거나 책임을 미루는 눈치였다. 다음날 새벽녘부터 잠자리에서 일어난 김언로는 조창으로 간다고 하며 백위길에게 일렀다.

"이 일은 나 혼자 조용히 다녀오는 게 좋을 듯 하네. 자네는 어디든지 마음내키는 곳이나 둘러보게나. 듣자하니 이곳에는 온천이 있다 들었네. 그곳에 몸을 담그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 하니 찾아가 봄직 하네."

백위길은 잠시 망설이다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에 김언로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선 도로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한번 깬 잠은 쉽사리 들지 않았고 몸을 뒤척이던 백위길은 집 주인인 아전이 일어날 때를 기다려 나가 온천이 어디 있는 지를 물어보았다.

"이곳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하인이라도 딸려 보내어 모실 까유?"

"아닐세, 길이나 알려주면 알아서 찾아가겠네."

백위길은 아전의 호의를 한사코 마다하며 온천이 있다는 곳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면 상념이 조금이라도 잦아들지 않을까.'

백위길은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반나절 동안 온천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찾은 나무울타리로 둘러쳐진 온천에는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부스럼을 앓고 있거나 손발이 불편한 이들이었다.

'허! 이런 이래서야 제대로 마음놓고 목간이나 하겠나.'

백위길이 망설이며 서성이고 있자니 사람들이 말이 '주위를 잘 찾아보면 다른 작은 온천도 있다.' 고 했다. 백위길은 그 말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혼자 주위를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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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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