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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쑥부쟁이> 공연 현수막
ⓒ 정일관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는 문화 소외 지역에 있는 학교입니다. 대부분의 인성 중심 대안학교가 자연 친화 체험을 위해 도시를 피하고 시골에 터를 잡아 운영하고 있는데, 원경고등학교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합천은 특히 산과 물이 수려하고 맑은 곳이지만 경남 내륙에 들어가 있어 교통이 상대적으로 불편한 곳이라 다른 지역에 비해서 더 오지 같은 느낌이 듭니다. 때때로 학부모 학교나 입학 면접을 위해서 찾아오는 분들은 학교 오는 길이 첩첩산중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글쎄 그것이 실제 물리적인 거리인지, 심리적인 거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원경고등학교에 깃들어 사는 100여 명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영화와 연극, 음악회와 전시회 등 도시에서 맛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문화와 예술적인 접촉이 뜸할 수밖에 없지요. 정서적인 안정감과 풍부한 감성이 요구되는 대안학교 학생들로서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여 이제 초창기 대안학교의 어려움과 곤고함을 지나고 일곱 해를 맞이한 학교로서 저희들은 더 이상 학교를 문화적 불모지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습니다.

▲ <쑥부쟁이> 배우의 열연
ⓒ 정일관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학교가 그동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찾아가는 문화 공연'을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들이 체계적이지 못하였고, 학교와 선생님들의 문화적인 마인드가 투철하게 열려있지 않았으며, 초창기 학교의 초석을 다지는 일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단편적인 시도에 그치거나 정규 교육활동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2004학년도를 맞이하면서 저희 학교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 체험을 제공하고 그것을 학교의 중요한 교육활동으로 만들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명칭을 '문화 즐기기'라고 하였고, '신나고 재미있는 교육'이라는 교육 목표를 담았습니다.

▲ 둥글게 앉아 관람하고 있는 원경고 학생들
ⓒ 정일관
그래서 지난 3월 16일,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저희 학교 개교기념일 행사의 일환으로 <문화 마을 들소리>에서 전통의 타악기 연주와 현대의 퍼포먼스를 섞어 청소년들의 예술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위해 '해설'과 '참여'가 있는 공연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3월 24일부터 26일까지 2박3일간의 일정으로 각 학년별 현장학습을 실시하여 이 기간 내에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중부권, 호남권, 제주권에서 연극과 영화 관람, 도자기 체험, 전시회 관람을 했습니다. 또 4월 27일에서 28일까지는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이미 1000회 공연을 돌파한 학전 소극장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보고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배우와 아이들
ⓒ 정일관
5월에 접어들어 저희 학교는 한국종합예술학교의 <쑥부쟁이> 공연을 유치하여 지난 7일, 무대를 꾸몄습니다. 학교 5층 강당에서 자리를 편 <쑥부쟁이>는 명랑 순정 뮤지컬로서 청소년들의 감성과 수준에 걸맞은 재미있는 코믹 마당극이었습니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모여 기획하고 공연한 이번 공연으로 일상에 지친 우리 아이들에게 즐겁고 상쾌한 문화 예술을 체험하게 한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지난 99년부터 문화예술공연을 직접 접하기 어려운 지역을 찾아다니며 예술 작품을 만나게 하자는 취지로 직접 찾아다니는 공연을 시작하였습니다. 문화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찾아가는 문화행사>를 주관하는 단체가 여럿 있습니다만 이와 같은 적극적인 문화 예술 공연은 대안학교를 비롯한 문화 소외 지역에 문화 예술의 씨앗을 많이 뿌리고 다님으로써 우리나라 문화의 전반적인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공연의 끝 세레모니
ⓒ 정일관
오는 6월 중에 한 번 더 <문화 마을 들소리> 공연이 예정되어 있고, <사랑의 문화 봉사단>의 오페라 공연도 신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또 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참여하는 합창제, 축제, 작은 음악회, 시 낭송의 밤, 사진전, 미전, 시화전 등의 전시회와 생활 공예품 전시회 등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젠 인성을 중시하는 대안학교도 문화와 예술의 마인드와 감수성을 확보해야 할 때입니다. 학교 건물과 교실의 구성이나 조경 등에서 예술적인 차원의 체험이 상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그 곳에서 문화 예술의 감흥이 흘러넘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학교가 진정한 대안학교의 모습이며, '아름다운 학교'를 지향하는 우리 모두의 소망일 것입니다.

▲ 공연을 마치고 배우들과 함께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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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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