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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
'말총 따위로 만든 먼지떨이'

국어사전에서 '총채'를 정의한 말이다. 지금은 많이 자취를 감췄지만 어릴 적엔 집집마다 총채 하나씩은 있었다. '안타깝게도' 총채는 사전적 의미로만 쓰이지 않았다. 성적이 하락하거나 거짓말을 한 게 들통이 날 때, 총채는 청소도구에서 순식간에 체벌도구(!)로 탈바꿈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대걸레 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맞는 일이 종종 있었고, 체벌과 기합은 학생들에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군에 입대해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그 곳에서 폭력은 초소에서, 화장실에서, 창고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25살 무렵이 되어 제대를 할 때까지 내 인생은 '체벌 혹은 폭력과의 전쟁'이었다. 부모님이 때리고, 선생님이 때리고, 선배가 때리고, 상급자가 때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체벌이 과연 '반성의 계기'가 될까. 셀 수 없을 만큼 체벌의 대상이 되었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 그런 경험을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체벌을 당하는 동안 가장 절실했던 바람은 '빨리 이 체벌이 끝났으면 하는 것'이었고, 체벌이 끝난 후엔 '절대 다시는 걸려들지 말자'는 다짐만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그건 반성이 아니라 '공포와 경계의 마음'일 뿐이었다.

체벌을 당하면 반성의 계기가 마련된다는 논리는 지나치게 체벌을 가하는 쪽만을 대변하고 있다. 체벌을 가하는 쪽에서는 편리한 논리지만 체벌을 당하는 쪽에서는 궤변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의 매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맞는 사람이 생각해 보면 어불성설이다. 때리는 사람이 아무리 사랑으로 때려도 맞는 사람에겐 그저 육체적 고통에 불과하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때리는 행위가 사랑을 전하는 수단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해도 왜 꼭 때리는 행위여야만 하는가.

ⓒ 김태우
"비인간화된 사회에서 교육이 인간화 운동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올로 브레이리는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말했다.

체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아무리 근사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명분의 수단으로서 체벌을 택하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다소 교육의 효과가 더디게 나타난다고 해도 대의명분에 걸맞는 교육 방식을 추구해야만 한다.

최근에 여고 문학 선생인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이 체벌을 가했다는 이유로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단다. 과격한 행동을 서슴지 않던 학부모는 급기야 체벌을 가한 선생님의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이 오고 갔다.

'선생님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 경건함을 바라지는 않지만 어떻게 선생님에게 그럴 수 있냐며 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친구는 동료 선생이 가한 체벌이라는 행위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친구는 학교가 변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며 말을 이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부조리를 수정하려고 해야 하는데, 문제 자체를 감추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문제를 은폐하고 대충 넘어가기 때문에 이후에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키는 화근이 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학생에게 존댓말을 하는 선생님을 소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서로 존댓말을 습관화하는 의식이야말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 김태우
체벌은 일제 식민지 교육과 군사 독재정권이 추구했던 '병영사회의 건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강제로 정권이 원하는 지식과 의식만을 주입하려고 했던 그 시대의 교육방식이 바로 '체벌'이었다. 질문과 반론은 봉쇄당했고 불경스럽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서로 존중하고, 존중 받는 교육 풍토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체벌은 법적으로 제재해야 마땅하다. 이제 그러한 교육의 유물과 단호하게 이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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