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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화단에 활짝 핀 작약꽃
ⓒ 정일관
5월 초순과 어버이날을 지나면서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 화단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작약이 꽃망울을 터트린 것입니다. 마치 폭죽이 터지듯, 여기 저기서 툭툭, 펑펑 터지고 벌어지는 작약은 화단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 따뜻한 행사가 많은 5월을 축하해 주는 듯합니다.

5월 14일, 이젠 작약이 한껏 벌어져 절정에 이른 날,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원경고등학교 전 식구들은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체육대회를 가졌습니다. 체육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학생회와 함께 계획을 짜고 종목을 정하고 선수를 선발하였고, 청군과 백군 두 편으로 나누어 마침내 힘찬 체육대회를 열었죠.

▲ 사람 찾아 달리기 출발
ⓒ 정일관
400m 이어달리기로 체육대회를 시작하였습니다. 대개 이어달리기는 체육대회의 맨 뒤에 배치하기도 하지만 맨 앞에 올려놓음으로써 체육대회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였습니다. 이어서 쪽지를 주워 쪽지에 적힌 특정 사람을 찾아서 함께 달리는 '사람 찾아 달리기'를 하였는데, 교장 선생님부터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달리기를 하여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였습니다.

달리기에 이어 남학생 농구 대회와 여학생 피구, 그리고 남학생 축구가 계속되었습니다. 여학생은 남학생을 응원하고, 남학생은 여학생을 응원하여 응원의 열기가 학교에 가득 찼습니다.

▲ 축구 경기
ⓒ 정일관
점심 식사를 하고 난 뒤, 청백팀 학생 전원이 기마전을 하였습니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집단으로 세 차례 격렬하게 부딪힌 기마전은 아이들에게 강한 정신력과 단결력을 기르고 승부 근성을 기르는 경기였습니다.

스승의 날 기념 체육대회의 끝은 4km 단축 마라톤이었습니다. 학교 정문에서 출발하여 드넓은 적중 벌판을 한 바퀴 빙 돌아 적중면을 거쳐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마라톤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과 학교 식당 조리사 아주머니들까지 함께 뛰었습니다. 더워진 한낮의 날씨에 아이들은 얼굴이 벌겋게 익은 채 열심히 달렸고, 1학년 권익현 학생이 일등을 하였지만 꼴찌까지 모두 훌륭하였고 많은 박수로 격려하였습니다.

▲ 기마전
ⓒ 정일관
체육대회는 매년 치르는 행사이지만 올해는 유달리 아이들이 열심히 참여를 하여 선생님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선생님들은 함께 어우러지는 그 마음 그대로 우리 아이들과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이날 하루만큼은 마음의 부대낌 없이 하나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시상식을 마치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올려다 본 학교 뒤 우람한 미타산이 더 높아 보였습니다.

다음 날, 스승의 날에는 아이들이 마련한 조촐한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아이들이 불러주는 노래 '스승의 은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감사의 편지'를 낭독하여 선생님들이 뜻하지 않은 깊은 감명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기념식에는 졸업생들이 많이 찾아와서 스승의 날을 함께 빛내주었는데, 토요일인데도 졸업생들이 계속 찾아온다기에 선생님들은 퇴근도 못했습니다.

▲ 스승의 날 기념 마라톤 대회
ⓒ 정일관
매년 스승의 날이 가까워오면 스승의 날에 대한 문제점을 곳곳에서 지적하며 그 폐지를 논하기도 하지만 저희 대안학교는 이 날이 소중합니다. 이 날은 대안학교의 교사가 된 사람으로서,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과 얼마나 깊이 만나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과 얼마나 뜨겁게 하나되고 있는가? 다시 한 번 본원을 돌아보고 목적을 반조하는 날이며, 우리 아이들에게 은혜와 감사를 일깨우는 날이며, 3년 동안 품어주었던 학교와 선생님들을 졸업생들이 찾아오는 날이기도 합니다.

스승의 날을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날로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노력과 관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제도의 개선 또한 따뜻한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온전하게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화단의 작약꽃이 남김 없이 활짝 핀 스승의 날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스승의 날 기념식에서 낭독한 2학년 정성훈 학생의 <감사의 편지>

다른 곳에서는 문제아, 꼴통이란 소리를 들으며 나도 저 자신에게 아, 나는 그런 놈이구나! 하고 자포자기할 때쯤 원경고등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선생들은 다 똑같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그 편견들은 사라지고 저에게 '선생'이란 두 글자로 생각되던 당신들이 세 글자로 늘어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제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도와주신 원경고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나 전학 오기 전 선생님들과도 사이가 썩 나쁘진 않았지만 저의 나쁜 모습으로 실망을 드려 사이가 점점 멀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원경 선생님들께는 나름대로 진지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마음을 터 놓을 수 있기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원경 선생님들 덕분에 하고 싶은 것도 생기고, 집에서도 좋아하고 해서 어떻게 감사하단 말만 이 마음을 전하겠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는 선생님들께 부끄러워서 여자 친구한테도 잘 안 하는 말인데 해 드릴 게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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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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