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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김 교수는 지난해부터 성공회대에서 <인권과 평화> 교양 심화과정의 하나인 ‘인권과 평화’를 강의하고 있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인권이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대학 또한 시대적 요구에 차츰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 시대적 관심에 비하면 그 수준은 아직 '배가 고픈'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인권에 대한 다양한 담론 형성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전국 대학, 26.9%가 인권 강좌 개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성공회대를 필두로 서강대, 대구대 등에서 인권 관련 강좌를 개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인권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더군다나 1997년 이후 IMF라는 초유의 경제상황을 맞이한 한국사회에서 인권을 돌아볼 만한 여력은 없었다.

인권 과제를 낸 김동한 교수는 “학생들은 강의실에서만 배우는 지식, 이론에서 벗어나 현장 체험과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을 통해 인권의 문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이 사회를 더 폭넓게 이해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사회 속에서 자신이 가진 권리의 소중함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국가인권위는 지난해 전국 245개 대학을 상대로 각 대학에 개설된 인권 강좌 현황을 조사했다. 이에 회신한 대학은 모두 81곳. 이중 66개 대학이 현재 인권 관련 강좌가 개설돼 있었다.

조사 결과, 전국적으로 26.9%만이 대학에 인권 강좌를 개설한 것으로 드러나 여전히 인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법 과목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는 현상도 여전했다. 전체 71개 과목 중 38개 과목이 법대에 편성돼 53.5%를 차지했고, 다음으로 사회과학대가 12개 과목, 기타 21개 과목으로 나타났다.

ⓒ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각 대학이 인권 관련 강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한편에서는 자칫 인권 교육이 강의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인지적, 지식정보적인 강좌로 변질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에 인권 강좌의 교육내용과 함께 강사의 높은 인권 감수성과 학교의 민주적인 분위기 등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공회대 고병헌 교수는 “인권 강좌의 목적은 먼저 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인권과 평화의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면서 학문적·지적 접근의 인권 강좌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던 1995년부터 성공회대는 인권 강좌를 진행하기 위한 팀티칭을 조직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996년부터 정식으로 ‘인권과 평화’(고병헌 교수)가 개설되었고, IMF 사태 직후인 1998년에는 ‘인권과 사회 복지’, ‘법과 인권’, ‘지구촌 사회와 평화’ 등의 심화 과정을 추가로 신설하기까지 했다.

이어 지난해부터는 <인권과 평화> 강좌를 전교생의 필수 교양 과목으로 선정하는 동시에 다양한 인권 관련 강좌를 더 개설해 학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혔다. 현재는 ‘인권과 평화’, ‘민족, 인종, 평화’, ‘지구촌사회와 인권’, ‘인권과 사회복지’, ‘여성과 인권’, ‘평화를 찾아서’ 등 6개 강좌가 개설돼 있다.

성공회대의 인권 강좌가 주로 교양과목이라면 몇몇 대학에 개설된 '피해자학'은 강의 중심의 전문 인권 강좌다. 최근 들어 체계화된 '피해자학'은 범죄 피해자들의 유형과 대처방안 등을 다루고 있어 인권의 관심사로 새롭게 떠오른 학문이다. 피해자학의 경우 대부분 법정대나 경찰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에 개설돼 있다.

당대의 사회 흐름 폭넓게 담아야

교양과목으로서 인권 강좌를 진행해 온 학교 중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진 학교가 서강대다. 서강대는 성공회대보다 조금 늦은 1997년 ‘가톨릭교회의 인권과 정의’라는 과목을 개설해 2~4학년을 대상으로 강의를 개설했다.

이 강좌는 세계인권선언 분석을 포함해 현재 한국의 인권상황, 한국 사회의 인권운동, 인권과 민주화의 관계 그리고 보다 나은 인권 사회 실현을 위해 할 수 있는 인권운동 및 인권교육으로 이뤄져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인권선언 애니메이션’, ‘보랏빛수건(푸른영상 제작)’, ‘상계동 올림픽(푸른영상 제작)’ 등의 시청각 교재를 활용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긴 이후 수업 중에 국가인권위를 다룬 경우도 생겼다. 배재대는 지난해 ‘현대사회와 인권’ 강좌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과목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 목적과 권한, 진정, 권고 등을 상세하게 다뤘다.

인권 수업은 곧바로 실제 현장에 적용되기도 했다. 2002년 건국대에서 한상희 교수는 1학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헌법학 강의에서 과제를 제시했다. ‘주변에 인권침해나 차별 행위 사례를 찾아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하라’는 것. 당시 강의를 듣던 황윤희씨는 이화여대의 ‘금혼조항’에 대해 진정을 넣었고, 이를 계기로 이화여대의 ‘금혼조항’ 폐기를 이끌어 내게 되었다.

이처럼 인권 강좌가 사회적인 요구에 따라 점차 발전해 왔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대학들은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국제사회 인권 자료의 지원’, ‘현장체험 프로그램의 개발 부족’, ‘팀티칭 교육 필요’, ‘관련 전문가에 대한 정보 부족’, ‘미디어 교재 부족’ 등을 지적했다.

최근 국가인권위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대학의 인권 강좌 활성화 계획을 세웠다. 각 대학의 인권강좌 현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강의계획서 자료집 제작과 강의 교재 수집 및 활용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범대와 교육대를 중심으로 인권 강좌 개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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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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