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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활짝 핀 얼굴로 포도청에 등청한 백위길은 문전에서 포졸들이 울며 불며 통곡하는 이들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쓰기도 하고 쫓아 내기도 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와 맞닥트렸다.

"왜들 이리 소란인가?"

"감옥에서 멀쩡하던 죄수가 급살을 맞아 죽었습니다. 어제 포교께서 데려온 싸전 상인입니다."

"뭐라?"

잠시 후 백위길은 거적에 덮인 채 들것에 실려 밖으로 나오는 시신의 발을 볼 수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싸전 상인의 가족들은 다시 한번 오열하며 포도청을 욕했다.

"아, 이 사람들아! 거 시신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네! 말 그대로 급살을 맞았는데 우리더러 이러면 어떻게 하나!"

포교 이순보가 간밤에 당직을 서서 피곤한 낯빛으로 통곡하며 울부짖는 싸전 상인들의 가족들을 쫓아보냈다. 백위길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이순보를 바라보았다.

"자넨 뭐하나? 등청했으면 냉큼 들어서지 않고!"

백위길은 서서히 포도청으로 들어서며 곰곰이 어제 싸전 상인이 한 말을 곰씹어 보았다.

'싸전 상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호조에서 국가의 세곡을 빼돌렸다는 말이 아닌가? 호조의 누군가 관련되어 있다는 얘기다.'

백위길은 싸전 상인의 갑작스런 죽음이 왠지 석연치 않았다. 백위길이 싸전 상인에 대해 말해 준 이는 종사관 한상원과 포장 박춘호, 그리고 이를 줄곧 보아온 두 명의 포졸이 있었다. 어떻게 되었던지 말은 여기저기에 흘러 퍼졌을 가능성은 컸다.

'이 포교가 당직을 서며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은 아닐까? 우선 싸전 상인의 시신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백위길은 시전을 돌아본다는 핑계로 싸전으로 가 상인의 집을 물어보았다. 이미 소문이 퍼진 후라 백위길을 보는 눈은 곱지 못했다.

"거기 문상이라도 가는 척 하며 시신을 두고 또 죄를 따져 물으려는 게요? 아, 됫박 좀 속였다고 사람을 죽여 보내!"

백위길은 그런 것이 아니라며 사정하다시피 말해 겨우 싸전 상인의 집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시신을 볼 수 있게 허락이라도 해 줄지가 의문이었다.

'일단 부딪혀 보는 수밖에.'

싸전 상인의 집을 찾아 들어가려던 백위길은 멀리서 낯익은 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선 재빨리 몸을 숙였다. 그는 바로 이순보였다. 이순보의 옆에는 백위길이 처음 보는 자가 동행하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로 싸전 상인의 집을 찾은 것일까?'

이순보와 낯선 이는 싸전 상인의 집으로 들어가 금방 나오지 않았고 백위길은 그동안 무료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한참 뒤, 이순보와 낯선 이는 싸전 상인 집안 가족의 배웅까지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허…. 싸전 상인의 집으로 들어가 봐야 하나? 아니면 이 포교의 뒤를 밟아야 하나?'

만약 이순보가 이번 일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면, 싸전 상인의 집을 들려 무슨 수작을 부려 놓은 것일지도 몰랐다. 백위길은 일단 이순보와 낯선 이의 뒤를 밟았다. 이순보는 낯선 이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느릿느릿 길을 가더니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갑자기 잰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앗차! 들켰는가!'

만약 이순보가 자신의 뒤를 밟는 이가 누구라는 것 마저 눈치챈다면 산통이 다 깨지는 격이었다. 백위길은 뒤쫓는 것을 단념하고 다시 싸전상인의 집으로 돌아가 문을 두드렸다.

"뉘시오?"

문이 조금 삐걱 열리며 상복을 입은 사내가 백위길을 훑어보았다. 문상객을 맞아야 할 상가집에서 문을 걸어 닫아 놓았다는 것부터가 이상했지만 백위길은 우선 자신이 포교라는 사실부터 밝혔다.

"되었소!"

사내는 사납게 소리치며 문을 닫아 걸었고 백위길은 멍하니 문 앞에 서 있다가 뒤 돌아섰다. 그런 백위길을 어느새 돌아온 이순보가 숨어서 바라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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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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