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니! 기찰을 그만두라니 그게 무슨 말이옵니까!"

백위길과 김언로는 포장 박춘호의 말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내게 따져봐야 소용없는 일이네. 위에서 시킨 일이니 낸들 어찌 하겠나."

박춘호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는 매우 큰 일이옵니다! 나라의 재정을 도맡는 호조에서 세곡을 빼돌린다는 말이 아니옵니까!"

"이 사람! 목소리가 크네! 물증이 없는 일 아닌가!"

"물증이 없기에 찾으려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내 포도대장 나리 앞으로 가 고하겠사옵니다!"

김언로가 이렇게 말하며 뛰어가려 하자 박춘호는 그 앞을 막아서며 엄히 말했다.

"아서게! 포도대장께서도 심히 괴로운 투로 한 말씀인데 심기를 더욱 상하게 할 참인가!"

김언로는 낙심한 듯 고개를 떨구며 일찍 퇴청하겠다는 말과 함께 뒤돌아섰다. 백위길은 처음에 귀찮게만 생각했던 일들이 점점 실체가 드러나면서부터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게다가 모처럼 이번 일을 통해 포교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던 차였기에 도무지 이번 처사에 대해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백위길은 박춘호를 쳐다보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박포교님! 이것은 분명 이포교의 농간이 분명하옵니다! 죽은 싸전 상인의 집에 수상한 자와 같이 드나드는 것을 이 눈으로 목도했사옵니다. 사헌부에 고변하면 사정을 들어주지 않겠사옵니까!"

"뭐라… 사헌부? 네 놈이 어찌 사헌부를 들먹인단 말이냐!"

박춘호는 얼굴까지 붉히며 백위길에게 화를 내었다.

"사헌부에서 너 같은 포교놈을 만나주기라도 할 줄 아느냐! 어찌 포도청의 위계를 무시한 언동을 꾀한단 말이냐! 사헌부에서 포도청에 일을 넘겨주는 일은 있어도 거꾸로 가는 일은 없느니라!"

백위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흥분한 박춘호의 꾸지람을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박춘호가 씩씩거리며 가버린 후에도 백위길은 그 자세 그대로 서서 입술을 깨물었다.

'내 이놈을!'

백위길은 순간 분한 마음에 이순보를 찾아 다녔고 마침내 포도청 창고 근처에서 마주치자 사납게 다가서서 얼굴을 바싹 마주 대고 노려보았다.

"뭔가?"

이순보 역시 눈을 부릅뜨며 백위길을 노려보았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노려보며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려 애썼다. 마침내 백위길이 먼저 말을 둘릴 것도 없다는 듯 단도직입적으로 내질렀다.

"이포교님…과연 포교로서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허리에 차고 있는 통부가 부끄럽지 않은지요? 얼마나 받고 그런 일을 맡아서 하시옵니까?"

"뭐라?"

이순보는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을 치더니 평소답지 않게 매서운 눈빛으로 백위길을 노려보았다.

"내 이놈! 날 겁박(劫迫 : 위력으로 협박함)하겠다는 것이냐! 네 놈이 더러운 돈을 받은 것을 다 아는 데 어찌 이리 뻔뻔스러운가!"

백위길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순보가 자신이 옴 땡추에게서 돈을 받은 사실을 알 수도 있다는 것을 잊고 있던 참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순보의 입에서 겁박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마치 적반하장(賊反荷杖)인 듯 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주위 포졸들과 포교들이 싸움이라도 난 줄 알고 말리려 몰려오자 이순보는 더 이상 안 좋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며 자리를 피했다. 다시 혼자 남게 된 백위길의 전립에 빗방울이 한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다. 해갈이구나."

사람들이 떠드는 것처럼 해마다 가뭄이 들어 더없이 반가운 비였지만 백위길은 더욱 마음이 우울해질 뿐이었다.

'그래. 그 놈들에게 진 빚을 갚고 나서 포교 자리를 결단코 때려치우리라.'

백위길은 순간 술 생각이 간절했지만 금주령이 내린 판국에 이조차도 쉽지 않았다.

'기방으로 가면 몰래 담가놓은 술이 있을 것이다. 애향이와 함께 회포나 풀어야겠다.'

백위길은 퇴청한다는 말도 없이 곧장 애향이를 만나기 위해 기방으로 향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