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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오후 2시경 또다시 과일칼과 비닐봉지를 챙겨 든 어머니는 장롱 안에서 좀더 챙이 넓은 모자 하나를 골라 썼다. 그리고 집을 나가며 어머니는 말했다.

"쑥을 많이 캐다가 쑥떡을 잔뜩 쪄 가지구 북한 용천의 그 다친 애들헌티 보내줬으면 좋겄네. 증말루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매나 좋디야."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노인네가 아무리 열심히 쑥을 뜯는다 하더라도 한도가 있을 터였다. 또 쑥을 무한정 뜯어온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쑥떡을 무진 만들 수는 없을 터였다. 설령 어머니가 만드신 쑥떡을 북한 용천으로 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다친 아이들 모두에게 골고루 차례가 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매사에 사려 깊으신 어머니가 그걸 모르실 리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하면서도 노인네가 굳이 그런 말을 한 것은, 그만큼 용천의 다친 아이들이 안쓰럽고, 용천의 그 모든 상황들이 한없이 답답하고 안타깝기 때문일 터였다.

나는 어머니의 그 따뜻한 심성이 다시 한번 갸륵하고 고맙게 느껴져 왔다. 하느님의 은총을 느끼게 하는 어머니의 이런저런 모습들 중에서도 어쩌면 그 착한 심성이 가장 확실한 하느님 은총의 실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컴퓨터 자판기에서 손을 떼고 어머니가 쑥을 캐러 집을 나가며 하신 그 말을 가만히 내 뇌리에 새겨 보았다. 얼마든지 음미를 해볼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하느님 은총의 실체 속에서 감미로움 같은 것만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미 아니었다. 어머니의 그 말은 최근에 발생한 북한 용천 참사와 관련하여 좀더 우울하고도 서글픈 일들을 반추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2)

나는 어제 저녁에 어머니와 특이한 대화를 나누었다. 텔레비전 밤 아홉시 뉴스에서 또 한번 북한 용천 참사 관련 소식을 접하고 난 다음이었다. 용천 참사를 몹시 가슴아파하고, 남한에서 보내는 구호물자가 신속하게 육로로 가지 못하고 배에 실려 더디게 가는 상황을 되우 안타까워하신 어머니가 내게 우리 가족의 용천 구호성금 동참 여부에도 관심을 표한 바람에 생겨난 대화였다.

"어머니, 너무 그러시지 마세요. 인터넷에서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올리는 글을 읽으면요, 북한으로 구호품 보내는 걸 되게 못마땅허게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요. 북한으로 구호품을 보내는 건 김정일을 도와주는 거라면서 얼마나 야단이라구요."

"아니, 지금 당장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해주는 일이 급허지, 거기에 김정일이를 왜 따져?"
"그 사람들이 어머니 얘길 들으면 어머니를 빨갱이 할망구라구 헐 걸요."
"아니, 지금 세상에두 빨갱이가 있다나?"

"빨갱이가 있어서 있남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맹글어 대니께 있는 거지유. 그 사람들 얘길 들으면요, 우리가 한시바삐 김정일을 몰아내지 않으면 기필코 김정일이헌테 먹혀서 적화통일이 되고 만대요. 용천 참사 하나 땜에 온 나라가 난리를 떠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두 해요. 그런 게 다 나라 망헐 징조라면서…."

"원 세상에, 별 소릴 다 듣겄네."
"그게 다 천주교 신자라는 사람들이 허는 얘기예요."
"그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라구?"
"심지어는 용천 참사를 보구 '하늘이 내린 저주'라구 헌 사람두 있어요."
"뭐, 저주? 그럼, 하느님이 저주를 내리시는 분이라는 말여?"
"김정일의 죄 탓이라는 뜻이겄지유."
"아무리 김정일이가 밉다헤두 워떻게 그런 말을…."

그리고 어머니는 말을 잊지 않았다. 잠시 후 거실에서 몸을 일으킨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서 촛불을 켜고 기도상 앞에 앉았다. 슬프고 혼란한 마음을 기도로 달래시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잠시 후 손에 묵주를 쥔 채 거실로 나오시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게 말했다.

"북한 룡천의 그 일이 하늘이 내린 저주라면, 옛날에 이리역에서 생긴 그 일은 뭐라나? 그 일두 하늘이 내린 저주라나? 그 사람헌티 한번 물어봐. 이리역 사건두 하늘의 저주를 받아서 생긴 일이냐구…."

어머니의 그 말에 나는 잠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필요 없는 일이었다. 이미 말이 말 아닌 사람들에게는 무슨 말도 다 말이 되지 못할 터였다.

(3)

또 하루 쑥을 캐러 가신 어머니는 오늘은 웬일인지 한 시간도 안 되어 돌아오셨다. 어머니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에는 쑥이 얼마 들어 있지 않았다.

"오늘은 슬슬 샘골 안창까지 들어가봤는디 냇갈 옆 밭둑에 쑥이 어떻게나 많구 좋은지 물러. 그래서 오늘은 금세 한 자루 뜯겄다 혔지. 그런디 그 근처 집이서 한 젊은 각시가 나오더니 거기는 약을 준 디라구, 약 맞은 쑥을 먹으면 암병 걸린다구, 뜯지 말라구 허데. 그러면서 저 정산포를 가면 낫으루 베두 좋을 만큼 탐스런 쑥이 지천으루 깔렸디야. 내일은 정산포루 가봐얄라능겨."

"그 밭둑이다가 약을 주었다는 말에 그 많은 쑥을 그냥 놔두구 오셨다구요?"
"약을 맞었는디두 왜 이렇게 쑥이 싱싱허구 좋으냐니께, 약을 맞어두 쑥은 다른 풀들허구 달러서 이내 죽지 않구 오래 간다구 허데."
"그류이잉?"

나는 긴가민가 싶은 마음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어머니는 정산포의 쑥밭을 알려준 그 여인에게 고마워하면서도 어제와 엊그제 뜯어온 쑥도 약 맞은 것은 아닐지 걱정을 했다. 그러잖아도 쑥이 오염되었을 것을 염려하여 어제와 엊그제 뜯어온 쑥을 세 번이나 씻고, 삶은 다음에도 다시 두 번이나 씻은 어머니였다.

그리고 저녁에 어머니께 지압을 해드리려고 온 뒷동의 작은 아들로 하여금 두 손으로 꽉꽉 짜게 해서 여러 개의 덩어리를 만들어 일단 김치냉장고 안에 보관을 해놓았다. 곧 안양의 딸네 집에도 보내고, 두고두고 쑥떡을 만들어서 자식들 손자들에게 먹이고 성당 신부님과 수녀원에도 선물을 하려는 것이 지난해 팔순을 지내신 어머니의 뜻이었다.

그런데 그 쑥은 농약을 맞지 않은 것일지, 어머니는 은근히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인 며느리가 퇴근을 해와서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도 김치냉장고 안에 보관되어 있는 쑥이 과연 건강한 쑥일지 걱정을 했다. 나는 한마디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니, 너무 걱정허지 마세요. 오늘 농약 얘기를 헌 그 여자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밭둑에다가 누가 약을 쳤다면 제초제를 뿌렸다는 얘긴디, 제초제가 얼마나 독성이 강헌 약이라구요. 쑥이 원래 생명력이 강헌 식물이라구 혀두, 다른 풀들은 제초제를 맞구 다 죽어 가는 마당이 쑥만 그렇게 멀쩡허구 싱싱헐 수가 없어요. 그 여자, 암만헤두 좀 수상헤요."

"수상허다니요?"

아내가 즉각 의구심을 표했다.

"그 쑥을 자기가 다 차지헐라구 말여…. 암만헤두 그런 것 같은디…."
"에이, 설마 그럴라구…. 사람을 너무 그렇게 의심하지 말아요. 남을 함부로 의심하는 것도 죄가 돼요."
"뭐, 죄…? 그럼 우리 한번 확인을 헤볼까?"
"무슨 확인을요?"

"내일 모레쯤 오후에 샘골 안창 냇갈 옆 그 밭둑을 가보자구. 그 밭둑에 쑥이 그대로 있나, 그리구 제초제를 맞은 쑥이 그때까지두 싱싱헌 상태루 있나 확인을 헤보자구. 어머니두 같이 가요. 잘허면 오늘 못 뜯은 쑥을 모레 왕창 뜯어올 지두 물르니께…."

"한번 그래볼까요?"

아내가 먼저 동의하자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헤봐. 남을 의심허는 것은 좋지 않지먼….

(4)

토요일 오후 우리 가족은 샘골 안창으로 걸음을 했다. 우리 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샘골 안쪽 냇갈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까이에 두고 살면서도 꽤 오랜만에 찾은 곳이었다.

잠시 후 우리는 엊그제 어머니가 좋은 쑥을 포기했던 밭둑에 도착했다. 쑥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제초제의 영향으로 쑥이 시르죽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내 추측이 거의 들어맞은 듯한 상황이었다.

"저 집엘 한번 가볼까요? 집안을 한번 들여다보자구요."

그리고 나는 앞장을 섰다. 어머니와 아내는 입을 다문 채 내 뒤를 따라왔다.

외딴집이었다. 대문이 잠겨 있지는 않았지만 집안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울안 마당에 넓은 자리개가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쑥이 가득 널려져 있었다. 쑥을 햇볕에 말리고 있는 것이었다.

"내 그럴 줄 알었지. 저 널어 말리구 있는 쑥을 왕창 걷어가 버릴까?"
"그건 안돼요. 무슨 말을 그렇게…."
"못 본 척허구 그냥 가. 그 젊은 각시가 늙은 할메를 묘허게두 쇠겨먹었지먼, 속은 내가 잘못이지…."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밭둑의 남은 쑥을 뜯는 것도 포기한 채 허탈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다음날 주일, 오전에 성당에 가서 교중미사를 지내고 집에 오니 거실에 어느 정도 말린 쑥이 가득 든 포대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어제 저녁 특전미사 겸 학생미사를 지낸 관계로 집을 지키고 있던 중학생 아들 녀석이 묻기도 전에 말해 주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이걸 놓구 가셨어요. 우리 집을 잘 아신대요. 그 아주머니가 이것도 놓구 가셨어요."

그리고 아들 녀석은 쪽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 쪽지를 받아 읽었다.

"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순간적인 욕심으로 할머니를 속였어요. 노인네께 먼 정산포 쑥 얘기를 한 것도 죄송해요. 저한테 속아 할머니가 뜯지 못하는 쑥을 아까워하시면서 북한 용천 얘기를 하셨지요. 쑥떡을 많이 만들어서 용천의 다친 아이들한테 보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그날밤 저는 많이 반성했어요. 그런 마음을 갖고 사시는 할머니를 속였다는 것이 부끄러웠어요. 이 쑥으로 쑥떡을 만들어서 할머니 가족이 잘 잡수시면 용천으로 보낸 거나 다름없을 거예요. 북한 용천 얘기를 하시는 할머니는 제가 처음 봤어요. 할머니, 감사하고 존경해요."

우리 가족은 동시에 야릇한 충격을 느끼며 잠시 서로 말없이 마주보았다. 그러다가 내가 한마디 중얼거렸다.

"이거이 북한 용천에서 온 쑥이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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