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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장 상공을 선회하는 패러글라이더의 결혼 축하 비행
예식장 상공을 선회하는 패러글라이더의 결혼 축하 비행
지난 달 30일 경기도 안성에 가서 결혼식 주례를 하고 왔습니다. 과거 이웃 동네인 서산에 가서 결혼식 주례를 한 적은 두어번 있지만, 충청도 땅을 벗어나는 먼 곳까지 가서 주례를 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결혼식 주례를 많이 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첫번째 주례와 두번째 주례를 1995년에 서산에서 했으니 그때로부터 벌써 근 10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주례를 선 일은 이번까지 다섯번에 불과합니다.

그 다섯번 중에 두번이 우리 고장인 태안에서 있었는데, 그 중의 한번은 신랑 신부가 원래 태안 사람들이 아닌 경우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고장 사람들로부터는 주례 부탁을 거의 받지 못한다고 봐야지요.

이번에 내 주례로 결혼식을 한 신랑 신부는 나와 아무런 인연도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양가 혼주들과도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경기도 안성에까지 가서 결혼식 주례를 한 것에는 약간 재미있는 사연이 있답니다.

재작년, 그러니까 2002년 9월 어느 날 나는 생면부지인 공주대학교 토목공학과 고만기 교수로부터 뜻밖의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공주대 토목공학과 학생들이 대천해수욕장에 있는 공주대 수련원에서 미팅 행사를 갖는데 하루 와서 한 시간 정도 특강을 해달라는 것이었지요.

생면부지인 고 교수가 내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은, 그 분이 웹사이트에 오르는 내 글들을 열심히 읽는 열렬한 팬인 까닭이었습니다. 그 분은 <오마이뉴스>에서 내 글을 거의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저 고마운 마음에 서슴없이 특강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내게 고마워하는 고 교수보다도 오히려 내 쪽이 더 감지덕지한 마음이었지요. 인터넷 사이버 공간이 또 이런 일도 만들어 내는구나 싶고, 참 기분이 즐거워졌습니다.

그 해 추석 이틀 전이던가, 나는 대천해수욕장에 있는 공주대학교 수련원에 가서 80여명의 토목공학과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했습니다. 문과가 아닌 공과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해 보기는 처음이어서 어떤 얘기를 할까 잠시 고심도 했는데, 곧 가닥을 잡고 재미있게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천수만 제방 길을 통해 대천에 갔기 때문에 옛날의 현대건설 천수만 간척 사업과 관련하는 얘기로 시작해서 토목공사와 환경과의 관계, 또 그것들에 반드시 결부되어야 하는 철학의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또 새만금 이야기도 하면서 애초부터 환경과 철학의 문제를 배제한 채 정치적인 이해에 의해서 발상되고 시행되고 있는 새만금 간척 사업의 문제점들을 설파하였습니다.

천수만 제방 길에서 보았던 망둥이 낚시꾼들의 차량 행렬과 관련하여 내가 일찍이 접했던 망둥이라는 물고기의 망각(忘却)의 실태와 망둥이의 망각이 사람들에게 전이된 것으로 볼 만한 우리 한국인들 특유의 망각 증세를 내 나름의 재미있는 화법으로 소개를 했습니다.

원래 1시간 예정의 강의를 1시간 30분이나 논스톱으로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은 내 얘기 도중에 많이 웃었고, 특강을 마쳤을 때는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생선횟집에서 저녁 대접도 잘 받았고 내가 추석 명절에 요긴하게 쓸 만큼의 강연료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때부터 시작된 고 교수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내가 자주 20여명의 내 피붙이 겨레붙이 인연붙이들에게 보내는 인터넷 편지를 그에게도 꼭꼭 보내 드릴 정도로….

그런데 달포 전쯤에 그에게서 뜻밖의 연락이 왔습니다. 공주대 토목공학과 졸업생 제자 한 사람이 결혼을 한다면서 내게 주례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 제자가 고 교수께 주례를 부탁드렸는데 고 교수는 주례 경험도 없고 해서 내게 부탁하기로 제자와 의논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고 교수는 내게 제자의 결혼식 주례 부탁을 하면서 그가 재작년 가을 대천해수욕장 미팅 행사 때 내 특강을 들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해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결혼식 주례를 해 주기로 약속하면서 한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장에서 발표할 짤막한 글들을 써야 한다는 조건이었지요. 신랑이 신부에게, 신부가 신랑에게, 그리고 신랑 신부가 양가의 부모에게 드리는 편지를 써서 미리 주례에게 제출해야 한다는, 어찌 보면 참 까다로운 조건이었지요.

이틀 뒤에 신랑이 될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정중히 인사를 하는 그에게 나는 그 조건을 다시 설명해 주었습니다. 결혼식 자리에서 주례가 판에 박은 듯한 주례사만 하는 것보다는 신랑 신부의 그 편지를 또박또박 읽어주면 결혼식이 얼마나 의미 있고 재미있겠느냐는 설명에 그는 내 지시(?)를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5월 23일 오후에 신부와 함께 나를 정식으로 찾아뵙고 인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경기도 안성에서 여기까지 굳이 먼길을 고생스럽게 올 필요가 없다고 해도 한사코 미리 찾아뵙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랑 장대영씨와 신부 박미영씨의 맞절 장면
신랑 장대영씨와 신부 박미영씨의 맞절 장면
그리고 23일 태안을 찾은 두 사람은 각자 육필로 써 가지고 온 세통의 편지를 내게 주었습니다. 편지를 꺼내어 읽어보니 신랑의 글씨는 거의 악필 수준이었지만, 내용이 충실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신부 자리의 편지는 글씨도 예쁘고 더욱 아기자기했습니다.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는 신부만 썼는데, 부모님이 들으면 콧마루가 찡할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들이 더없이 고맙고 예뻐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결혼식 주례를 하면서 신랑 신부에게 그런 편지 제출 부탁을 매번 했는데, 신랑 신부가 똑같이 내 요구에 응해 주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착한 심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듯한 서글서글한 인상의 신랑 장대영씨는 한국도로공사에 입사해서 연구소에서 일한다고 했습니다. 대학에서 특수교육학을 전공하고 현재 특수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신부 박미영씨는 제주도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천사처럼 착하게 보이는 용모였습니다. 그런 용모를 지녔기에 정박아와 지체장애아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일을 하며 밝은 모습으로 살 터였습니다. 나는 글을 통해서 그들이 대학 시절 동아리 모임에서 처음 만나 5년 동안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떠나보낸 후 다시 한번 편지들을 읽어 보고 편지마다 '2004년 5월 30일 안성 궁전웨딩홀에서 주례 지요하 낭독'이라는 글자들을 적은 다음 아내에게 복사를 해 오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내가 복사해 온 편지 사본들을 내 문서철에 잘 보관을 해 놓았습니다. 물론 영구 보관을 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9일 나는 가족과 함께 덕산온천에 가서 목욕을 했습니다. 결혼식 주례 전날이나 당일 아침에 목욕재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녁에는 주례사를 할 때 낭송할 '축복 기도시'를 지었습니다. 내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 신부, 새 부부가 서로 변치 않고 사랑하며 평생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모든 주례자의 공통된 인지상정일 터이지만, 나에게는 그 마음이 더욱 간절했습니다.

30일은 그리스도교회의 창립기념일, '성령강림대축일'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아침에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냈습니다. 4대 축일의 하나인 성령강림대축일에 낮의 교중미사가 아닌 아침미사에 참례하기는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미사를 지낸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안성 행차 길에 올랐습니다. 결혼식 주례를 하러 가는 귀한 몸이니 행차라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닐 터였습니다. 천안 딸아이의 원룸 앞에다 내 차를 놓고, 10시쯤 복자여고 앞에서 공주에서 온 고만기 교수와 만나 고 교수의 차로 안성으로 갔습니다.

낮 12시 신랑 장대영씨와 신부 박미영씨의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머리칼이 부실한 편이어서 전에는 결혼식 주례도 모자를 쓰고 해 버릇했는데, 이번에는 식장 안이 꽤 더워서 모자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내 부실한 머리칼이 신랑 신부와 하객 여러분께 혹 시력 장애를 안겨 드릴지 몰라 죄송하다는 말로 웃음을 안겨 주고 주례사를 했습니다.

주례사를 비교적 짧게 하고, 내가 특별히 지은 '축복 기도시'를 낭송했습니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편지 세통을 차례로 읽었습니다. 듣기 좋은 음조로 또박또박 그 편지들을 읽으면서 여러 번 웃음을 유발하고 박수도 유도했지요.

일반 예식장의 결혼식이 대개 20분이면 끝나는데 반해 40분을 경과했는데도 하객들에게 지루한 감을 준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결혼식이 끝났을 때 아내가 내게 말하더군요. "이렇게 재미있는 결혼식을 처음 본다는 말도 들리던데요. 엄숙한 분위기를 적절히 유지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잘 하셨어요."

예식장 문 밖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있는데 한 아가씨가 와서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신랑측에서 드리는 거라고 하며…. 나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이었고,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결혼식 후 신랑 신부와 주례가 함께 기념촬영
결혼식 후 신랑 신부와 주례가 함께 기념촬영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신랑 신부는 태국에서 밀월을 즐기고 있을 겁니다. 그들은 결혼식 후에 내게 진심으로 고마워했습니다. 내가 지어 선물한 '축복 기도시'와 결혼식 자리에서 내가 대신 읽은 자신들의 편지를 평생 동안 잘 간직하면서 그 편지에 적힌 마음을 절대 잃지도 잊지도 않으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그 약속을 믿습니다. 결혼식 자리에서 내가 읽은 그들의 그 편지에 적힌 그 마음을 평생 동안 함께 올곧게 안고 살아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나는 그들이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오늘 저녁에 '축복미사'를 봉헌하려고 합니다. 그들의 평생의 행복한 부부생활은, 그 일정 부분은 결혼식 주례의 음덕일 수도 있을 테니까….

글이 길어졌지만, 그리고 '축복 기도시'가 좀 길지만, 내가 지어 새 부부에게 선물한 그 시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사랑의 꽃씨들을 잘 심고 가꾸시길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서로 자기 짝을 찾게 하고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어 살게 하신 조물주 하느님

조물주 하느님께서 태초에 마련해 주신
신비롭고도 성스러운 섭리에 따라
오늘 2004년 5월 30일
대한민국 경기도 안성 땅에서
새로 탄생하는 이 한 쌍의 부부를
사랑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소서

두 사람이 오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수억만 명 조상들의 덕분임을 헤아리게 하소서
수억만 년 전부터 인연의 강이 흐르고 흘러
오늘의 만남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하소서

강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된 사실에서
인연의 신비를 깨닫고
조물주 하느님의 안배를 헤아리게 하소서

조물주 하느님이 두 사람을 골라 짝지어서
인연의 꽃바구니 안에 넣어주신 것은
서로 사랑하며 평생 동안 잘 사는 모습을
몸소 보시고자 함이니
늘 하느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오늘 새로 맺어지는 이 부부가
평생 동안 하나가 되어 살면서
서로를 자기 몸처럼 아끼고 돌보며 살되
그것은 조물주 하느님에 대한 예의임을 알게 하소서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감사와 존경의 미덕들을
한 겹 한 겹 쌓아올려서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알찬 부부가 되게 하소서

두 사람이 쌓아 가는 삶의 미덕들 속에는
부모에 대한 효심의 그림도 그려지고
형제들에 대한 우애의 자수도 만들어지고
이웃들과의 화목도 여울지고
삶 자체로 자식들을 가르치는 지혜의 꽃밭도
촘촘히 수놓아지게 하소서

두 사람의 마음 안에
오늘 하나로 마련된 사랑의 꽃밭
오늘 드디어 세상 사람들에게 선보인
사랑의 꽃밭을
지금 이 시간의 고결한 마음으로
늘 함께 정성껏 가꾸며 살게 하소서

그리하여 수많은 꽃들이 자라고 피어나는
풍성한 꽃밭이 되게 하소서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고귀한 이름들이
그 꽃밭에서 자라고 피어나서
조화의 화원이 되게 하소서

2004년 5월 30일 오늘은
두 사람이 함께 가꾸어 갈 사랑의 꽃밭에
갖가지 이름의 꽃씨를 뿌리는 날
믿음 감사 존경 희생 봉사 효심 우애 화목 지혜….
그 고귀한 이름의 꽃씨들을
그대들이 진심으로 원하고 또 약속했으니

그리하여 오늘 많은 이들이
그대들의 꽃바구니에
축복의 꽃씨들을 담뿍 담아주었으니

장대영의 박미영, 박미영의 장대영
늘 하늘 우러르는 농부와 같은 마음으로
평생의 꽃 농사를 잘 지으시기를
기원 축복합니다. *


(2004년 5월 30일 12시 경기도 안성 궁전웨딩홀 에메랄드실 / 장대영 박미영 결혼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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