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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전혀 두려워 하는 기색 없이 가볍게 몸을 돌려 칼날을 피했다. 달빛이 칼날에 번뜩이며 사내의 얼굴이 선명하게 백위길의 눈에 들어왔다.

'허...... 저자는!'

사내는 분명 백위길과 충주의 온천에서 만나 한양까지 함께 세곡선을 타고 온 끔적이었다. 몇 차례 사나운 칼날을 피하던 끔적이는 안 되겠던지 품속에서 낫을 꺼내어 칼을 막기 시작했다.

"흥! 겨우 이정도냐!"

박팔득의 동생이 휘두르는 칼은 더욱 맹렬해졌고 이에 끔적이는 낫으로 공격할 엄두는 못 낸 채 겨우 막아낼 정도였다.

"위험하다!"

보다 못한 백위길이 도리깨를 휘두르며 달려나갔고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낫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완전히 이겼다는 안도감과 함께 난데없는 백위길의 등장이 주의를 흩트리는 순간, 끔적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잽싼 발길질로 칼을 쥔 손을 차 버렸다. 박팔득의 동생이 몸을 굴리며 다시 칼을 주워들려는 찰나 백위길의 도리깨가 바람을 가르며 그의 어깨에 떨어졌다.

"웬 놈이냐!"

다른 사내들이 달려들자 백위길은 통부를 꺼내 보이며 소리쳤다.

"멈춰라! 난 우포도청의 백포교니라! 섣불리 덤벼들면 모두 물고를 내어버리겠다!"

사내들은 잘 못 걸려들었음을 깨닫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네 이놈! 감히 사람을 해하려 들다니!"

박팔득에게 부탁을 받은 것도 있고 해서 적당히 타일러 보낼 양으로 백위길은 엄포부터 놓았다. 어깨를 감싸 쥔 박팔득의 동생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뒤로 돌렸다.

"어서 묶어서 포도청으로 데리고 가시오."

"...... 뭐라?"

"죄가 있으니 포도청으로 데려가면 될 것 아니오. 어서 묶으시오."

너무도 태연한 태도에 백위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고 그새 백위길을 알아본 끔적이가 아는 척을 했다.

"이거 백 포교님 아니시옵니까? 이런 일로 만나 뵈어 참으로 송구합니다."

"송구할 것까진 없네만...... 자네는 어떤 원한을 지었기에 이런 일을 당한단 말인가?"

끔적이는 땅에 떨어진 칼을 주워 챙기며 웃어 보였다.

"그건 저도 모르겠사옵니다. 이 자도 시킨 일을 할 뿐인 것 같사옵니다만."

백위길이 듣기에 끔적이의 말에는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그 스님이 관련되어 있는 것인가?'

백위길이 다른 생각을 할 겨를 도 없이 백위길의 동생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괜한 수작들 떨지 말고 어서 날 묶어서 가시오!"

하지만 포승을 챙겨 오지 않은 백위길이 그를 묶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애당초 포도청으로 압송할 생각조차 없었다. 백위길은 솔직히 말하기로 하고서는 그에게 버럭 소리쳤다.

"네 이놈! 이번 일은 동생이 죄를 짓는 일을 너의 형이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알린 것이니라! 어서 가서 근신하라!"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것인가를 깨달은 박팔득의 동생은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형? 내게 무슨 놈의 형이 있다고 그러는 것이오! 그 놈이 뭔데 내 일에 참견했단 말이오! 에이!"

박팔득의 동생은 화를 못이기겠단 듯 마구 백위길의 앞으로 달려나갔다. 깜짝 놀란 백위길은 도리깨를 곧추 잡았지만 그는 백위길을 지나쳐 그대로 어디론가 달려가 버리고 말았다.

"흉악한 놈일세!"

끔적이는 한숨을 쉬며 백위길을 돌아보았다.

"포교님, 포교님께서는 무엇을 위해 여기 있사옵니까?"

끔적이의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백위길은 금방 대답하기 어려워 이를 되물었고 끔적이는 당연한 것을 묻는 다는 듯 대답했다.

"저는 항상 전하를 위해 일하옵니다."

전하? 백위길이 나라의 녹을 먹기는 하나 얼굴도 보지 않은 전하에 대해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항상 그렇듯이 그는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만 신경을 쓸 따름이었다. 백위길이 말없이 서 있자 끔적이는 괜한 말을 했다는 듯한 태도로 다리를 약간 쩔뚝이며 달빛 아래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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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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