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회의 탄핵방송 보고서는 그 정확성을 떠나 탄핵문제에 대한 역사의식이 빠져 있다. 국민의 70∼80%가 탄핵을 잘못된 결정으로 판단했는데 방송이 50:50으로 양적 균형을 맞춰 보도했다면 그것이야말로 편파다. 방송위원회 역할과 위원구성에 과거보다 더 정치논리가 개입되는 게 우려스럽다. 오늘의 사태는 방송위원회의 정파적 나눠먹기 구조에서 비롯됐다."
'탄핵무효 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을 지낸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언론학회 탄핵방송 보고서에 대해 한마디로 '참담하다'고 표현했다. 김 처장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탄핵을 생각했던 국민들이 이번 보고서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면서 "국민의 뜻을 숫자로 평가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모욕"이라고 강조했다.
언론개혁국민행동에 소속된 언론개혁시민연대(공동대표 김영호 외)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이명순),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 참여연대(공동대표 박상증 외), 전국민중연대(공동대표 정광훈 외)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8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핵방송에 대한 방송위원회 및 언론학회의 심의를 규탄했다.
단체들은 "방송위원회가 일부 보수 언론학자를 앞세워 '탄핵방송이 편파적이었다'는 결론의 보고서를 이끌어내 사실상 제2의 탄핵사태 불씨를 되살리려 시도하고 있다"며 현 상황을 '방송판 탄핵사태'로 규정했다.
또 언론학회의 보고서에 대해 "뉴스와 토론, 시사프로그램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기계적 균형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재단했다"고 지적한 뒤 "탄핵사태를 '합법적인 갈등'으로, 방송을 '정파언론으로 회귀하는 퇴영적 매체'로 전제한 보고서 곳곳에 연구자의 정치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당추천제 없애야 정치권 대리전 막을 수 있다"
언론·시민단체들은 방송위원회의 직무유기와 되풀이되는 편파심의를 비판하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보도교양제1심의위원회 심의위원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특히 정파적인 방송심의와 함께 정치권 대리전만 벌일 수밖에 없는 현행 방송위원회 구성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언론학회의 보고서 내용 이전에 방송위원회의 무책임을 먼저 비판해야 한다"며 "방송위원회가 탄핵방송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해서 언론학회에 분석을 의뢰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방송법을 고쳐서 방송위원 정당추천제를 없애야 정치권의 대리전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도 민주적 방송위원회 구성의 필요성을 언급한 뒤 일부 언론 보도의 역편향도 지적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집행위원장은 "탄핵정국에서 일부 신문은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20만명이 모인 것과 찬성집회에 수 천명이 모인 것을 동등하게 보도하는 등 오히려 역편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 역시 정략적인 방송위원회 구성 자체가 이번과 같은 사태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최 총장은 "앞으로 KBS 개혁을 포함한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등 방송개혁 과제를 계속 제안할 것"이라며 "특히 방송위원회가 입법부의 나눠먹기식 인사가 되지 않도록 하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시민사회·언론단체들은 공정한 탄핵방송 심의를 위해 ▲복수 연구단체에 의한 재검증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모든 매체의 선거보도에 대한 포괄적 공정성 검토 ▲공청회 개최를 통한 의견수렴 등을 방송위원회에 요구했다.
"조중동은 최소한 요건은 갖춘 기사를 써달라"
단체들은 이번 탄핵방송 보고서를 주도한 방송위원회와 언론학회는 물론 이를 정략적으로 침소봉대하는 보수신문를 향한 비난도 쏟아냈다.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은 "조중동의 편집방향에 왈가왈부하지 않겠지만, 어떤 신문이든 최소한 거짓과 편파·왜곡없이 기사를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명순 민언련 이사장은 주요 지면을 할애해 언론학회 보고서를 대서특필한 <조선일보> 사례를 들고 "조선·동아의 입맛에 맞으면서 평소 연구진 논리와도 딱 들어맞고 있다"고 비유했다. 그는 "'만두사건' 보도 분석을 언론학회에 다시 맡긴다면 불량만두 제조업자와 소비자의 취재불균형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면서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그들의 보고서에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영삼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과 최승호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은 특정 연구진이 선정된 경위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언론학회에 요구하기도 했다. 최승호 위원장은 "공모자를 제쳐두고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학자를 책임 연구원으로 선임한 과정에 대한 언론학회의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바란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연구진이 한국언론 지형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이미 편향적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도 내놓았다. 연구진은 보고서 서론에서 "97년 2002년의 정권교체는 권력구조의 투쟁전선이 양극화되고 있음을 재확인시켜줬다"며 "언론매체들은 그들이 대리하는 권력과의 공조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정파적 성향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풀이했다.
또 연구진은 "빅3으로 불리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의 후원자로서, 진보·좌파 이념에 동조적인 한겨레신문과 공영방송은 집권여당의 후원자로서 각각 활동하면서 권력투쟁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했다"며 "권력투쟁 전선이 언론매체까지 확대됐다"고 표현했다.
| | "보고서에 대한 방송위 평가가 중요" | | | 방송학회·언론정보학회 기자회견 | | | |
| | ▲ 15일 방송학회와 언론정보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언론학회 탄핵방송 보고서'에 대한 공동 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신미희 | | "언론학회 보고서를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방송위원회 몫이다. 방송위 보도교양제1심의위원회가 이번 보고서를 어떻게 평가하고 취급하느냐가 중요하다. 방송위가 아젠다 설정 기능을 갖추고 있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방송심의를 지속할 수 있겠는가."
김남석(경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언론정보학회장은 탄핵방송 심의와 관련, 방송위원회의 책임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충분히 파문을 짐작할 수 있는데도 심의 완료 이전에 언론학회 보고서가 사전 공개돼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방송위원회의 적절한 책임도 요구했다.
이같은 지적은 한국방송학회(회장 김재범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한국언론정보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언론학회 탄핵방송 보고서'에 대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두 학회는 15일 오전 시민사회·언론단체보다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학회 연구결과물에 대한 일부 언론의 지나친 확대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김재범 회장은 "공정성은 연구자의 이론적 틀과 사회관, 세계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따라서 공정성을 다르게 정의하는 연구집단이 탄핵방송을 분석하면 상이한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방송위원회가 결정하고자 한 방송보도의 공정성 문제는 하나의 보고서를 통해 정리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탄핵방송 보고서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태도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김 회장은 "학문적 연구결과를 자신들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재단해서 과장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바른 보도태도가 아니다"며 "언론학회 보고서를 보도하는 여러 언론들은 탄핵보도와 관련해 어떠한 공정성의 잣대와 기준을 가지고 있었는가"라고 되물었다.
두 학회는 탄핵보도와 관려한 공정성 문제는 학자들간 논쟁이 필요하다고 거듭 밝힌 뒤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연구하고 학문적인 논쟁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