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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교육 전문가와 미래학자 그리고 기업의 두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가까운 미래 사회에 가장 요긴한 능력은 다음 두 가지라고 하네요. 하나는 어떤 상황에 처해서든 스스로 문제에 대처하고 해결할 줄 아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와도 관계를 맺고 유지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요. 이 두 가지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소임이자 학교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면 그 두 가지, '문제 해결 능력'과 '관계 맺기 능력'은 별개가 아니라 관계의 기술 한 가지로 수렴된다 싶어요. 모든 '문제'가 관계에서 비롯되고 '해결' 또한 관계를 통해야 하니까요. 자연과 인간, 사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 등 모두 관계지요. 이렇게 보면 배움의 본능이란 관계 맺기의 본능이 발현된 것이며 교육이란 관계의 갈구이자 성취이고 성찰입니다.

우리가 맞딱드린 교육의 위기란 이 관계의 욕구를 배제하거나 짓누르고 그 위에 정보와 지식과 규율의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올려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고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 어떤 배움이 충족되고 어떤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제가 거쳐온 초·중·고·대학교를 돌아보거나 교사 또는 강사의 자격으로 여러 교육 현장에 서게 될 적마다 아득한 현기증에 빠져 휘청거리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때였지요. 신문에서 이상한 미술 강사에 대한 기사를 읽었답니다. 고스톱 점수 계산법을 시험 문제로 냈다더군요. 간간이 그 미술 강사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더군요. 물의를 일으켜서 나가던 대학교에 사표를 내고 새로 강사 자리를 얻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에는 그의 강의 일기를 모은 책 소식도 접했었지요. 무척 궁금했지만 제가 그의 책을 일독한 것은 올해 초여름 문턱에 이르러서였답니다.

표지에는 '괴짜 미술강사', '천방지축 강의', '엽기강사' 등의 수식어와 함께 <백설공주를 죽이시오!>라는 별난 제목이 붙어 있더군요. 호기심에 첫 장을 펼쳐 보니 강의 오리엔테이션인 '미술을 이해하는 법'에 써있기를 그해 2학기 수강생이 120명이나 된다는 겁니다. 저는 순간 숨이 턱 막혔지요. 강사 한 명에 학생이 120명이라니, 1대 120의 관계에서 교육은 '괴짜'가 되어야 하고 '천방지축'이 되고 '엽기'를 동원해서라도 학생들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는 쇼가 되어야 했겠구나, 그렇게 지레 짐작을 했더랬습니다.

대량 생산 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의 대학은 100명씩 200명씩 학생들을 한데 몰아 넣고 단 한 명이 강의를 진행하는 일이 태반이지요. 해서 강의 도중에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분도 계시고, 분필을 이마로 받아쳐 온갖 방향으로 날려 보내는 분도 계시다 하고, 학생들을 수시로 웃기기 위해 갖은 성대 모사를 연습한다는 분도 계시다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되나 봅니다.

저는 이런 풍경이 참 서글픈 일이면서도 그런 강사 분들의 노력에는 진심으로 경외의 마음을 갖게 되더군요. 교육이란 늘 관계의 새로운 경험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교육 환경에서 어떻게 해서든 소통의 물꼬를 트려는 눈물겨운 몸짓들이니까요. 책의 첫 장을 보는 순간 이 미술 강사도 그런 분이구나 싶어서 한숨 반 존경 반의 심정으로 다음 장을 읽기 시작했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지요. 저는 다음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읽는 내내, 책의 구성은 한 학기 동안의 강의 진행 순서대로 이어지는데, 제 짧은 선입견과 연민의 감정을 버려야 했답니다. 한 젊은 대학 강사가 열악한 교육 조건을 딛고 일어서서 수많은 학생들과 살아 있는 관계의 축제를 만들어 가는 해맑은 지혜와 끈끈한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거든요.

"어두운 교실에서 슬라이드를 보고 있다 보면 졸음이 몰려올 수도 있다. 졸음을 물리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필기 행위가 아니라 입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그리하여 다른 감각까지 깨울 수 있는 간식이 아닐까. 그것도 바삭바삭 소리도 경쾌한 스낵류로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학생들의 예측 불가능한 생각의 점프"를 중요하게 여기고 수업 도중에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뜻밖의 일들"을 통해 학생 저마다의 감각이 모두 깨어나서 다양한 관계 맺기를 경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의 핵심이라고 믿는 이 미술 강사에게 학생들이 소리 죽여 바삭바삭 씹어먹는 간식의 중요성이 얼마만한 것인지 말입니다.

그는 책 말미에 이렇게 썼더군요. "어느 것 하나 내가 계획하고 그렸던 밑그림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저는 그래서 그의 미술 강의가 성공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의 강의는 17개조로 짜여진 학생 그룹들이 만들어내는 별별 희안한 조별 발표로 채워져 있더군요. 학생들은 말과 슬라이드로 된 충실한 프리젠테이션부터 교실에서 라면을 끓여 나눠 주는 퍼포먼스와 배용준식 머플러 매는 법, 키스의 종류와 테크닉, 고전 패러디 연극, 미술치료까지 가히 현대 미술이 포괄하는 모든 개념들을 멋지게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저는 그가 '미술의 이해'라는 텍스트보다 '미술의 이해'를 둘러싸고 벌어지게 될 학생들의 살아있는 관계, 그 단정할 수 없는 컨텍스트에서 교육의 생명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고도로 준비된 아티스트가 아마추어들과 함께 하는 즉흥 연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그가 의도적으로 중간고사를 아주 일찍 치르는 이유를 듣고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지요.

그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마음껏, 어떤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강력한 격려"로 중간고사를 준비했고, "어쨌거나 미술하고 억지로라도 연결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법한 "학생들을 황당하게 만들기 위해서" 시험 문제를 냈고, 그 결과 학생들이 강의 초기부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려고 했다더군요. 해서 나온 중간고사 시험 문제가 "백설공주를 죽이시오!"라는 주관식이었지요.

학생들이 얼마나 황당해 했을까 상상해 보면서 웃게 되고 또 얼마나 상식 밖의 다채로운 답안지를 써냈을지도 궁금해지더군요. 이 책을 직접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어쨌거나 그의 의도는 통했지요. 일찍 치른 중간 고사 덕분에 학생들은 '미술의 이해'가 단지 교사서의 미술사를 따라가며 암기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의 오감을 열고 관계 맺기에 따라 그 의미와 해석과 쓰임새가 무궁무진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던 것이지요. 스낵을 바삭바삭 씹어 먹으면서 학생들은 직접 자신의 미술을 이해했던 겝니다.

그가 강의 끝에 낸 40개 문항의 기말 고사 문제와 답안 그리고 해설이 책 맨 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성적을 매겨야 하는 제도 교육의 틀 안에서 그는 끝까지 관계의 경험과 학습에 대한 중요성을 환기하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고 있더군요. 우리가 겪어온 교육의 지평에서 볼 때 이런 게 무슨 시험 문제냐 싶겠지만, 조금만 달리 보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시험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교육은 곧 관계의 학습이라는 것 말이지요.

"이 교실에서 선생님 다음으로 나이를 먹었다고 우기는 금속공학과 96학번 김봉진옹이 미술관을 간 횟수는? 다음 중 15조 발표 때 끓인 라면의 이름은? 사랑에 관해 발표한 2조가 의견 및 제작 과정은 완벽했으나 발표할 때 곤란함을 겪은 이유는? 한국미술사를 발표한 전자전기학부의 장호영 학우가 집에 있다고 우기는 고려청자의 종류는?"

문득, 오늘도 교실 강단에 서야 하는 무수한 교사들과 예비 교사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웃고 있을지 한숨을 쉬고 있을지, 아니면 아무런 책임도 지지 못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을지. 교실 붕괴와 교육 파탄의 비명조차 귀에 박힌 잔소리가 되고 있는 지금, 교실에 들어찬 심드렁한 눈빛의 학생들 숫자가 100명이든 200명이든, 관계를 갈구하고 소통의 틈을 찾아내려는 교사 한 명의 열의에 찬 표정에서 아직도 배움의 희열이 소록소록 솟아난다는 사실에서, 저는 이 미술 강사의 앞길에 조용한 축복의 인사를 건네고 싶어집니다.

오늘도 교실에 들어서는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신지요. 교사이기 이전에 관계 맺기를 원하는 본능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 당신은 오늘도 그곳에서 당신과 관계 맺기를 기대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의 무엇을 흔들어 깨우시나요?

백설공주를 죽이시오!

정효찬 지음, 이가서(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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