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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사랑의 모티브, 익명성

지금의 인터넷 환경에서 볼 때는 꽤 뒤처진 느낌의 영화이지만 당시만 해도 화려한 감각의 최신 통신 대화창에서 채팅을 하는 남과 여의 새로운 사랑 방식이 매우 독특했던 한국영화, <접속>.

물론 당시 최신 디지털기기인 노트북 컴퓨터와 PC통신을 이용한 사랑 찾기라는 독특한 소재가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영화 속 두 남녀 주인공을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게 해주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 익명성과, 익명성이 담보된 사이버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의 묘한 매력에 끌렸던 기억이 난다.

영화 속 실생활에서 짝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두 남녀 주인공이 감히 함부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이나 생각의 조각들을 익명성이 보장된 PC 통신상에서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교류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만약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면 그 둘의 조우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그러나 정작 두 남녀는 사이버 상에서는 매우 애틋하고 친근한 감정을 느꼈지만 사이버 공간을 떠나 우연히 만나게 되면 그가 바로 그 남자인지, 이 여자가 바로 그녀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지하철 안에서 서로 무심결에 마주 봐도, 레코드 가게의 좁은 계단, 겨우 한 뼘도 안 되는 간격에서 부딪칠 듯 아슬아슬하게 마주치고 지나가도, 그들은 바로 이 사람이 어제 밤새도록 마음을 열고 사이버상에서 대화를 나눴던 그였고 그녀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알 리가 없다.

심지어 바로 옆에 그 사람이 뻔히 지켜보고 있는데도 알지 못하고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의 전화 자동응답기에 이런 내용의 음성녹음을 남긴다.

"당신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내가 아는 사람이었는데… 당신을 본적은 없지만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 것 같았는데… 그걸 느끼지 못하고 가는군요… 이제 나는… 다시 혼자가 되겠죠. 당신처럼…."

이쯤 되면 이러한 철저한 익명성은 어떤 면에서 영화 속 대사처럼 서로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필요조건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마련이다.

익명성은 욕설과 비방의 배설구(?)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현재 익명을 허용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이버 공간에서는 영화 속과 같은 낭만적인 대사가 넘쳐나는 것이 아니라 근거없는 욕설과 비방과 익명성을 담보로 한 범죄도 발생하고 있다.

원래 사이버상에서 익명성을 허용하는 이유는 바로 완전한 평등과 자유를 기반으로 어떠한 가식이나 꾸밈없이 오고가는 속마음을 표현하고 수렴하기 위한 긍정적인 의미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용자들은 익명성을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토로할 수 있는 배경으로 여기기보다는 욕망과 불만을 터트릴 배설구로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하기 힘든 욕설과 비방을 통해 현실 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거나 아니면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위한 도구로서 욕설과 비방이란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국 전세계적으로 점점 익명성이 완전하게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그 대신 회원 가입을 통한 사람만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든 게시판이라든가, 옆에 글쓴이의 IP가 공개되게끔 만든 게시판, 아예 욕설이나 음란한 단어는 쓰기가 금지되어 있는 게시판 등 최소한의 규제를 부여한 공간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익명성이라는 공간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현상 때문에 익명성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장점을 포기한다면 의도했든 안 했든 자칫 가장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서 걸러지지 않은 순수한 목소리를 듣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어떤 것일까?

익명성은 최대한 보장하되 그 내용은 이용자의 자율적인 인식과 선택권을 이용한 자정작용에 맡기는 그런 형태의 사이버 공간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양심에 따른 사이버 공간의 올바른 활동과 자율적인 정화작용 기대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 커뮤니케이션의 특성에는 익명성 외에도 모든 참여자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선택권이라는 것이 있다. 사이버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남에게 자신의 주장을 듣도록 강요할 수 없으며 참여자의 자발적인 동의와 공감을 끌어낼 수 없다면 인정받기 힘들어진다.

이러한 선택권은 근거없는 비방 글이나 욕설 글이 올라오면 얼마 안돼 그 비방 글을 비판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와 결국 욕설 글을 물리치고 정화하는 자정행위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결국 사이버상에서 익명성이 긍정적으로 사용되는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지의 문제 또한 인간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욕설이나 비방이 난무하는 사이버 공간을 정화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이라면 당장의 여러 형태의 제한과 규제보다는 전적으로 사이버 공간을 배회하는 인간 개개인의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화되는 형태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동시에 사이버 공간의 이용자들 또한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는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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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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