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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판 화성연쇄 살인사건’ 용의자가 검거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관악, 구로, 동작, 영등포구 등 서울의 서남부권을 중심으로 비 오는 목요일만을 골라 살인을 저지른 용의자가 잡힌 것이다.
2, 4, 5, 6월에 각각 저질러진 살인사건은 서남부권의 시민을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언론은 연쇄 살인사건일 가능성을 제시해 시민들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지만, 경찰은 사건 현장의 정황으로 판단할 때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고 한다.
이번 살인사건들은 모두 ‘무동기 범죄’, 일명 ‘묻지마 범죄’이다. 일반적인 살인사건은 범죄 동기가 분명하고, 피해자와 범인 사이의 인과관계가 확실하다. 이에 반해 무동기 범죄는 범죄동기가 명확하지 않고, 우발적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그 누구라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시민들은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한달 전쯤, 남부순환도로에서 강남방면으로 차를 몰아 집으로 가고 있었다. 막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지만 아직 도시는 잠들지 않고 있었다. 신호를 받아 차를 몰고 나가는데 4차선 도로 한가운데로 한 여자가 뛰어들었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정지했다. 여자는 운전석 쪽으로 다가왔는데 한 눈에 보아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여자의 머리 상태는 엉망이었고 얼굴은 눈물범벅이었고 두 눈은 잔뜩 공포에 질려있었다.
여자는 내게 도움을 청했다. 여자를 진정시키고 나서 들은 말에 따르면, 여자는 방음벽이 쳐져 있는 한적한 도로를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나 가방을 빼앗고 자신의 옷을 벗기려 했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필사적으로 남자를 뿌리치고 도로를 가로질러 도망을 쳤고 내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차에 태운 이후에도 여자는 계속 울고 있었다.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 공포로 여자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무서워요. 너무 무서운데 어떻게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가버릴 수 있어요” 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공포와 사람들의 몰인정이 여자를 두 번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여자를 태우고 인근 파출소에 데리고 갔다. 여자가 차에서 내릴 때, 나는 그녀가 맨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이 저절로 그려졌다. 경찰은 사건을 접수하고, 그녀를 경찰차에 태우고 사건현장으로 떠났다. 함께 사건 현장에 가보고 싶었지만 경찰차에 남는 좌석이 없었기 때문에 함께 갈 수는 없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거리는 무척이나 우울했다. 이 삭막하고 비정한 도시의 공기가 온 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약한 여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공포에 떨고 있는 여자를 모른 척한 사람들과 함께 그녀의 맨발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쨌든 그 일을 겪은 이후에 내 주위에 내가 알고 있는 여자들을 만날 때마다 “밤길을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우연하게 범죄의 대상이 되는 불행을 피할 수 있다면 조심에 또 조심을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밤 늦게 택시에 사람을 태워 보낼 때는 반드시 택시 번호를 미리 적어두고, 가로등이 없는 좁은 거리로는 다니지 말고, 큰 길을 이용하는 게 좋다. 혼자 다니지 말고 둘 이상 함께 다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심야 밤거리에 치안 활동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미리 조심하는 것 이상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아울러 ‘서울판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도 빨리 검거되어 시민들을 불안에서 해방시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