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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번에는 은 장수와 선인들이 어리벙벙한 얼굴이었다. 그간 행방불명이 된 장군 문제에만 집중하느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별안간 또 전투 작전으로 돌입해야 한다니…. 그때 책임선인이 나섰다.
"그럼 이제 제후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 일에서 배제해야겠지요? 어차피 다른 도시를 친다면 딜문과는 상관도 없는 일이고…."
그러자 에인이 나섰다.
"아니오. 이곳 사정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제후가 잘 압니다. 또 그는 도시마다 환족을 심어두어 수시로 그곳 동태를 파악하고 있고요."
"그러니까 그자를 우리와 합류시키자는 말씀입니까? 그건 아니 될 일입니다. 그러면 이번엔 자기가 군주가 되겠다고 나설 인간입니다. 그 간교한 인간에게 두 번 다시 당할 수가 없습니다!"
은 장수가 당장 왼 꼭지를 틀었다. 사실 그로서는 제후를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강 장수가 떠날 때도 단단히 당부한 것은 장군의 안녕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장군의 행방을 잃었고, 그것은 참수형에 해당했다. 자신의 죽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참수형을 당하면 전 가족이 그 화를 면치 못한다. 그는 속이 타고 애가 말라 날마다 목에서 피가 올라올 지경이었는데 또다시 그 원흉과 한솥밥을 먹자는 말인가.
"간교하다는 것은 옳은 말일지도 모르오. 하지만 그는 군주가 되기 위해 전쟁을 부추긴 것은 아닐 것이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여기저시 쑤시고 다녔단 말입니까? 우리에겐 말도 하지 않고 별읍장에게 가서 직접 군사를 내달라고 했던 것은 또 무슨 수작입니까? 우리는 따돌리고 자기 혼자 나라 하나를 가지겠다는 흑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에인이 가만가만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는 그저 환족이 이곳에서도 큰 도시 하나쯤 차지하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오."
"그러면 왜 여행가기 싫다던 장군님을 꼬드겨서 보냈고 또 그런 행방불명의 일까지 만들었느냐 말입니다. 그걸 보더라도 그 작자는 우리 군사를 이용해 도시 하나를 차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가 우리 군사를 이용해 도시 하나를 차지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자기가 군주가 되려고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오. 왜냐하면 그는 별읍장에게만 간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그런 간청을 했던 때문이오."
"하지만…."
"어쨌든 좋소. 이 다음에라도 다시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때 벌해도 늦지 않으니 일단은 그도 참모로 합류시키도록 하시오."
에인의 설득에 이어 강 장수가 오단을 지었다.
"사실 우리에겐 길 닦고 도랑 칠 시간이 없소. 장군님 말씀대로 제후를 불러들여 함께 작전을 세우도록 합시다."
강 장수는 생각했다. 원정군에게 장기전이란 가장 큰 취약점인데다 곧 가을이고 또 겨울이 닥친다. 딜문 정벌 때야 그럭저럭 겨울을 넘길 수 있었지만 연고지가 없는 곳의 상황은 그와 다르다. 식량문제는 물론,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그는 에인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장군은 아무나 고통에 빠트릴 수 있는 인물도 아닌데다 설령 어떤 불상사가 있다 해도 금방 풀어낼 힘이 주어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조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당장 철과 구리 공급이 끊겨 주물 야장이 중단된 데다 수출품으로 실어가던 모피와 비단까지 약탈당해 그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별읍장 역시 반. 입출 물품마저 현저하게 줄어들어 소호상점거리조차 점점 위축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 제후를 불러오시오."
알맞은 순간에 에인이 지시를 내렸다. 강 장수는 그런 에인을 깊숙이 바라보며 겨울쯤에는 도시 하나를 차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장군이 결정을 내리거나 마음만 먹어주면 일은 반드시 성사된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야 부르십니까."
제후가 천막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말투는 투정 같았지만 그 얼굴은 두려움과 기대가 양볼 한쪽 식을 차지해 마치 각판의 가면을 쓰고 불쑥 들어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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