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회 일본 참의원 선거가 지난 11일 치러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 전날 기자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연립내각의 과반수에 해당하는 61석 중 51석(나머지 10석은 공명당 예상치)을 공언하는 등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자민당은 목표치에 2석 모자라는 49석에 그치고 말았다.
공명당이 10석을 얻었으나 합계 59석은 전체 참의원 의석수 121석의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 반면 제 1야당인 민주당은 대도시는 물론 지방에서도 고른 지지를 얻어 50석을 획득해 자민당을 누르는 대약진을 보였다.
이번 선거의 쟁점은 국민연금 미납과 이라크 파병, 그리고 선거 직전 불거진 고이즈미 총리의 다국적군 참가 발언 등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10일 납치가족 중 1인인 소가 히토미와 북한 거주 중인 가족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지만, 지난 19회 선거 때와 같은 고이즈미 바람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과반 획득 자신했던 고이즈미 총리 궁지 몰려
이번 선거는 '무당파'의 투표성향이 크게 좌우된 것으로 보여진다. <아사히신문>이 12일 발표한 선거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당의 지지도는 자민당 33%, 민주당 23%, 공명당 6%, 공산당 5%, 사민당 3%, 무당파가 23%를 보이고 있어 처음에는 자민당이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지지정당이 없다고 밝힌 무당파 23%가 기표한 정당은 자민당 15%, 민주당 49%로 집계되었다. 2001년 제 19회 참의원 선거에서 무당파 17%의 투표성향이 자민당 27%, 민주당 20%로 집계된 것과 비교해 본다면 하늘과 땅 차이의 수치. 결국 이 무당파 층이 이번의 참의원 선거 결과를 좌우한 셈이 되었다.
사실상 자민당 패배라는 선거 결과에 대해 자민당의 아베신조 간사장은 각 매스컴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국민들의) 정권 선택은 작년의 총선거(중의원)에서 이미 결과가 나와 있다. (앞으로도) 고이즈미 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혀 이번 선거 결과의 책임을 고이즈미 총리에게 묻지 않을 뜻을 명확히 했다.
자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칸자키 대표도 "지금 개각을 한 직후라서 이번 결과로 총리를 내친다거나 하는 것은 어불성설. 앞으로 더욱더 고이즈미 총리를 지지하겠다"고 밝혀, 이번 선거패배가 고이즈미 정권에 미칠 영향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자민당 출신의 원로정치인 노나카 전 간사장은 고이즈미 총리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니혼테레비>의 선거개표 결과 방송에 출연한 그는 "일본국민들은 여전히 양심적이다. 그들이 지난 몇 개월간 참고 참았던 것을 이번에 폭발시킨 것이라고 본다"고 말하면서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이 펴고 있는 이른바 구조개혁이라는 것이 결국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양산시키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골똘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자민당 내부의 실무진들도 반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민당 중앙본부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가 버블이었던 것은 아닌가 걱정되는 결과"라고 말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총리의 스타일에 국민들이 처음에는 열광했지만 서서히 견제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이러한 목소리는 12일자 <아사히신문>의 사설에도 드러나 있다. 사설은 "이번 참의원 선거는 승리를 거두었던 지난 총선에서 불과 8개월 지난 시점에서의 패배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면서 "국민들의 마음과 기분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났다는 것을 고이즈미 총리가 깨닫지 못한다면 다음 총선에서 실로 오래간만에 정권교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일침을 놓았다.
한편 승리를 거둔 민주당의 오카다 대표는 시종일관 여유있는 표정으로 "(국민들의)신뢰를 얻었다"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그는 자민당의 텃밭이라고 일컬어지는 지방에서의 비약적인 약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여유있는 오카다 민주대표 "정권교체 시대에 들어갔다"
또 오카다 대표는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자민당이 연금이나 자위대의 다국적군 참가 문제 등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무작정 처리해버리는 바람에 민주당에 기대하는 흐름이 선거운동 막판에 형성되었다. 2대 정당, 정권교체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질적으로 연금개혁입법안에 관한 자민당의 설명이 부족했다고 보는 사람이 거의 대다수.지난 6월 5일 연금개혁관련안이 여당의 날치기로 통과된 직후 행해진 TBS의 긴급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역세대 수입의 5할을 정년퇴임 후 매월 수령 가능하게 한다", "보험료는 인상하지 않는다" 등의 추상적인 선언만 있을 뿐 구체적인 데이터나 시행방안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고 대답한 일반시민의 비율이 무려 82%를 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에서 2명의 저널리스트가 숨지고, 서미트 회담에 참가한 고이즈미 총리는 아무런 설명없이 혼자서 자위대의 다국적군 참가의지를 표명한 점들이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그러나 정치평론가 시모다 코지는 "민주당은 승리에 들뜨면 안 된다. 민주당이 잘해서 뽑아준 것이 아니라, 자민당이 워낙에 헛발질만 하고 돌아다녀서 실망한 사람들이 민주당을 선택한 것. 물론 선거의 접점을 국민연금과 이라크 파병문제로 좁힌 민주당의 선거전략은 평가할 만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한편, 공산당과 사민당 등 군소 정당은 2대 정당제가 정착되고 있는 분위기에 휩쓸려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공산당의 경우 지역구 당선자가 한 명도 없는 대참패로 선거전 15석에서 11석이나 모자란 4석에 그치고 말았다.
2석을 얻은 사민당의 경우 의석수는 선거전과 변함이 없으나, 고이즈미 정권 주도의 연금개혁안과 이라크 파병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반대해 온 정당으로서 이번 결과에 대해 실망의 목소리가 높다.
당 내부에서는 "민주당과 합병의 길을 모색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높지만, 이 점에 대해 사민당 아베 중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유사법안에 찬성하고, 헌법9조를 바꾸자는 것에 찬성하는 민주당과 어떻게 합병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며 민주당 합병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사민당의 후쿠시마 당수 역시 "2대 정당제의 흐름이 정착되어 버려 반(反)자민당 성향의 국민들이 전부 민주당을 지지해버려 아쉽다"고 짤막한 코멘트를 남겼다.
중의원이 실질적으로 정책을 개발, 입안하고 참의원은 형식적인 추인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일본의 양원제. 물론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작년 중의원 총선거의 결과가 자민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고이즈미 정권 자체에 큰 변화는 없을 듯으로 보이지만,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내려진 일본국민들의 심판을 고이즈미 정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