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에게 숙소는 중요하다.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생생한 최신 정보를 직접 얻을 수 있는 곳도 바로 숙소기 때문이다. 거기에 마음이라도 맞는 여행친구를 만나면 으슥한 저녁에 당당하게 같이 야경을 보러 나갈 수도 있고 골목 어귀 술집에서 한 잔 기울일 여유도 생기는데 이는 숙소에 얻는 보너스다.
다행이 요즘엔 인터넷이 있어 수많은 정보 비교를 통해 다음 행선지의 숙소를 정하고 예약도 할 수 있다. 특히 전세계 주요 도시에 자리잡은 한국인 운영 민박집은 튼튼한 인터넷 망을 갖추고 있어 애용된다.
전용선 설치로 속도도 빠르고 한글 사용도 용이하며 고가의 PC방 비용까지 절약할 수 있으니 더없이 매력적이다. 여행객들에게 e-메일과 디지털 카메라 사용이 보편화된 요즘이고 보면 민박집 컴퓨터 보유 대수와 인터넷 속도가 숙소 선택의 중요 요건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한국 민박집의 장점은 시원스레 말이 통하니 궁금한 점을 맘놓고 물어볼 수 있고, 김치가 놓인 밥상과 최소한 한끼는 마주할 수 있는 게 눈물나게 반갑다는 것이다.
더구나 유럽 등지의 대도시에서는 현지 숙소에 비해 한국 민박집이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이런 연유로 간혹 성수기에는 민박집 초과 인원 수용으로 매트리스를 들고 이리저리 누울 곳을 찾아다니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도 배낭여행객들에게 숙박비는 언제나 부담이다. 그래서 최소의 비용을 들여 잠시 밤을 피하고 다음날을 위한 준비, 즉 세안과 탈의만 가능하다면 어느 곳이든 숙소가 된다. 그게 간혹, 대합실이나 덜컹거리는 버스 안이 되기도 하지만 여행이 끝나면 이마저도 즐거운 추억이 된다.
특히, 유레일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통과하여 다른 나라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은 상당히 색다르다. 국경을 통과하는 순간 열차의 안내방송부터 달라진다. 도착지의 언어로 먼저 방송이 되고 차창 밖의 풍경도 달라져 있다. 우리처럼 반도 끝 분단된 나라의 국민은 속상해 지는 순간이다.
열차에 비해 버스는 상당히 불편하다. 비좁은 좌석에 갇혀 밤을 지새야 하는데 좌석 간격도 좁으니 옆 좌석에 어떤 덩치의 사람이 앉을까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치로 여겨질 때가 있다. 뜻밖의 사정으로 일정이 변경되어 도착한 낯선 곳에서 밤이 되도록 숙소를 구하지 못한다면 온갖 상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모텔' 간판은 눈을 씻고 봐도 없고 숙소를 찾아도 빈 방이 없다면 아무나 붙잡고 "헬프미"를 외치고 싶어진다. 이럴 때면 최후의 수단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고급 호텔을 찾는다.
대체로 비싼 호텔 방은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절약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밤이 늦은 관계로 내가 이 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할인을 요구하면 뜻밖의 행운을 얻기도 한다.
나는 거의 절반의 할인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런 비상시에 드디어 신용카드의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들어선 호텔 방에서는 본전이 생각나지 않게 잘 지내야 한다. 오랜만에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심신의 피로도 풀고, 밀린 빨래도 해서 히터 위에 널어놓는다. 그런 후에는 비치된 차나 커피를 한 잔 타서는 테이블에 앉아 그간 못 썼던 일기나 편지를 쓴다. 편지지나 편지봉투도 다 갖추어져 있으니 이를 사용하면 된다.
그래도 이왕 나선 나라밖 여행이라면 그 곳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 특히 조그만 소도시에 가게 될 때면 현지인 민박을 이용해 보라.
나는 스코틀랜드 섬 마을에서 보낸 민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노부부가 사는 언덕 위 민박집을 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친절하게 맞이하며 집의 거실과 부엌, 욕실 등을 안내해 주었다. 모든 공간은 공용으로 사용되니 편하게 이용하란다. 그리고 올라간 조그만 이층 방에는 벌써, 뽀송뽀송한 타월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베란다 옆 둥그런 창문으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뛰쳐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아침이 되어 내려간 식당에는 나를 위한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예쁜 식기들로 세팅된 식탁과 한쪽에 놓인 다양한 종류의 시리얼까지 너무도 정성스럽다. 할머니가 요리를 하면 나르는 것은 할아버지 몫이었다.
토스트와 달걀, 베이컨, 홍차, 주스, 절인 살구에 직접 만든 요구르트까지 일일이 취향을 물으며 알맞게 갖다 주신다. 한국인 손님이 처음이라는 노부부를 위해 우리의 전통문양을 찍은 사진과 함께 조그만 선물을 주고 왔다.
여행지에서의 다양한 숙소 선택은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많이 보고 많이 듣는 만큼 성격이 다른 다양한 곳에서 잠을 청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 이제 여러분은 어디에서 주무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