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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뜻에 동조하고 따른다는 언약을 해주시오."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끔적이가 나섰고 백위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약을 깨면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것이니 신중히 이행할 것을 명심하시오."

"알겠소이다. 그런데 애향이는?"

"애향이는 당분간 여기 머물러 있는 것이 안전할 것이오. 해가 뜨면 포도청으로 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연스레 있는 것이 좋겠소이다."

백위길은 박춘호를 떠올리며 잠시 마음이 착잡해졌다. 애향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하고서는 결과적으로 끔적이를 끌고 가는 것까지 막았지 않은가.

'대체 박포장은 어떤 입장에 서 있는 자일까?'

백위길은 몸을 뒤척이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같은 때, 곤히 잠든 이순보의 방문을 두드리는 자가 있었다. 이순보는 짜증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군데 이리 예의를 모르는가?"
"이보게 이포교 날세."

그 소리에 이순보는 마치 무엇에 물리기라도 한 양 후다닥 일어섰다. 이순보의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대충 옷가지를 걸치고선 마당으로 나갔다.

"오래간만일세."
"채선달께서 여긴 어인일이온지요?"

채선달이라 불린 자는 바로 키다리 땡추였다. 그는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에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 사람… 왜 이리 달갑지 않은 눈빛인가?"
"아, 아닙니다. 헌데… 어이하여 이 야심한 시각에…"
"내 급히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네."

키다리 땡추는 이순보의 소매를 잡아끌더니 으슥한 곳에 남루한 차림으로 서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이 분을 좀 보호해주게나."

이순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키다리 땡추를 쳐다보았다.

"아니 선달님! 당장 마누라한테 쫓겨 나갈 일이 있습니까? 야밤에 아이를 떠맡기다니요!"
"말조심하게 이 아이라니! 이 분은 장차 이 나라를 떠맡을지 모르는 분이네!"

그제야 이순보는 감이 잡힌 다는 듯 표정이 굳어졌다.

"전 더 이상 이런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사옵니다."
"뭐라?"

키다리 땡추는 당황해하며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쳤다가 자기 소리에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무슨 소리인가!"
"설사 주상전하가 여기 납신다해도 당장 내 목숨이 위태로울지 모르는 일을 왜 맡소이까? 못 본 것으로 해줄 터이니 어서 돌아가 주시오."
"이 놈!"

키다리 땡추는 품속에서 짧은 칼을 쑥 뽑아들었다. 이순보는 뒤로 주춤거렸지만 그리 겁내는 기색은 아니었다.

"이곳은 포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옵니다. 제가 소리라도 지르면 어찌 될 것 같사옵니까?"
"이…. 이놈! 네 놈이 마음이 바뀌었구나!"
"아니옵니다. 허나 지금은 네 목숨을 건사하고 싶은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사옵니다. 이곳은 순라를 자주 도는 곳이니 어서 가 보시오."

이순보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쏜살같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 후 숨을 가다듬으며 칼을 찾아 들고서는 손에 꼭 쥐었다. 이순보의 아내는 영문을 모른 채 그런 남편의 행동을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이 모두가 신이 미력한 탓이옵니다… 옥체를 살피시옵소서…."

어두운 길목 한 귀퉁이에서는 키다리 땡추가 아이 앞에 꿇어앉은 채 흐느꼈다.

"제게 더 이상 그런 소리 마시고 선달님의 몸이나 건사하십시오. 사람들이 날 왕실의 핏줄이라고 하나 막상 전 태어나서 부모님의 얼굴도 보지 못하였는데 무슨 근거가 있겠사옵니까?"

지친 기색이 역력한 동자승이 오히려 키다리 땡추를 다독이는 모양새였다. 키다리 땡추는 눈물을 닦은 후 동자승을 등에 업은 채 어둠 속을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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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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