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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 온천증기의 꽃, 유노하나

▲ 유노하나의 입구
ⓒ 김정은
예전에 벳부에서는 에도시대부터 이 곳 온천수에 들어있는 유황성분을 추출하기 위해 특이한 방식을 이용해 유황을 추출해왔고, 이렇게 추출한 유황 결정이 마치 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노하나(湯の花)'란 고유명사로 불렀다. 바다지옥을 나와 도착한 곳은 그렇게 내려온 전통방식으로 유노하나를 재배하고 있는 곳이다.

▲ 달걀을 삶을 때 사용하기 위한 시설물
ⓒ 김정은
과연 유황재배지답게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달걀 썩는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문득 가슴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호기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작년에 전 국민의 입에 오르내리던 <대장금>이란 드라마에서 유황의 독성이 언급될 정도로 독한 물건인데 대체 뭘 어떻게 해서 저 피어오르는 연기로 유황을 만들 것이며 그렇게 만든 유황으로 무얼 하겠다는 건지….

알고 보니 이곳에서 추출한 유황은 거친 피부, 땀띠, 튼살, 주부 습진 등의 증상이 있는 분이나, 특히 어린이 아토피성 피부개선에 효과 있는 입욕제로 만들어 벳부 특산물로 생산·판매되고 있었다.

여기 저기 보이는 오두막집은 일정 요금을 지불하고 가족 온천탕의 용도로 사용하는 오두막, 유황 추출을 위해 사용되는 오두막 등 종류가 다양했는데 방문자에게는 모두 공개하지는 않고 대신 유황재배방법을 알리기 위해 오두막 하나만 공개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유황재배 모습보다 가족 온천탕 용도로 사용한다는 오두막 내부가 매우 궁금했다. 어느 정도 규모이고 어떤 시설일까? 과연 짚풀 지붕을 쳐다보며 느끼는 유황온천욕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시간이 있으면 저 오두막 속에서 온천욕을 하는 기분도 꽤 색다르리라는 둥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방문자에게 유황재배 방법을 설명해주는 오두막에 도착했다.

유노하나(湯の花)는 한자의 뜻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온천증기로 만들어진 결정이다. 이것을 추출하기 위해 바닥에 먼저 분기가스의 통로를 만드는 요석을 깔고 그 위에 백점토와 청점토를 깔고 짚으로 만든 지붕을 덮으면 되는데 약 100일 정도 되면 요석을 통과한 온천가스가 백점토와 청점토를 통과하면서 마치 하얀 꽃처럼 응결되어 점점 크게 자라는 원리라고 한다.

문득 예전 뉴질랜드의 로토루아 곳곳에서 뿜어 나오는 유황연기 생각이 났다. 그 곳에 사는 마오리족은 그 뜨거운 증기로 기껏 옥수수나 찌고 음식물이나 익히고 난방이나 하는 수준이었지만 일본인들은 땅 속에서 나오는 증기 하나도 놓치지 않고 유황을 만들고 입욕제라는 상품까지 만들어 수출까지 하고 있었다.

자연을 이용하는 치밀함, 이 또한 일본인의 전형적인 꼼꼼한 민족성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소마찌의 호텔로 돌아가기 전 잠시 벳부항에 들려보았다.

세토나이카이를 보며 예전의 우리 민족을 떠올리다

▲ 벳부항에서 바라본 정기여객선의 선적 모습,
ⓒ 김정은
일본은 엄밀히 말하면 5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인데 철도가 생기기 전 혼슈[本州]와 규슈[九州]·시코쿠[四國] 사이를 배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였다.

예전 한반도에서 건너온 가야 출신 도래인이 큐슈에서 혼슈[本州]로 세력을 넓일 수 있었던 통로도, 발달된 백제의 문화가 오사카로 유입된 통로도, 예전 조선통신사의 화려한 행렬이 부산을 떠나 대마도를 거쳐 오카야마에 도착할 때까지 배로 지나갔던 바다도 바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였다. 현재 이 벳부항에서는 오사카와 고베로 갈 수 있는 관서기선이 운항하고 있다.

▲ 벳부항의 여객 터미널 모습
ⓒ 김정은
호기심에 관서기선의 터미널 안을 들어가 보았다. 여객터미널 안은 우리나라의 여객 터미널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배를 기다리는 색색깔 플라스틱 의자와 매표구, 그리고 매점….

다만 운행시간이 거의 12시간 정도 되기 때문에 철도가 거미줄 같이 이어진 일본의 교통편으로 적합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곳의 장점은 배 안에 자동차를 싣고 곧바로 오사카나 고베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도 일반 승용차에서부터 버스와 대형트럭까지 실을 수 있으며 자동차 길이에 따른 운임이 세세하게 차등 부과되고 있었다. 여객 터미널을 떠나 버스로 돌아오려는 순간 마침 운 좋게 선적을 하고 있는 배를 볼 수 있었다. 육중한 선체에 위압감을 느끼면서도 마지막으로 벳부항의 푸른 앞바다를 쳐다보았다.

비록 내가 그 옛날 한반도 도래인도, 백제인도, 조선통신사도 아니지만 벳부항에서 바라보는 이 앞바다가 그들이 지나갔던 세토나이카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다란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이 곳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정착해가며 자신들의 문화를 전파하고 뿌리를 내렸는데, 지금 나는 그저 바다만 바라보며 뭉클해 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데 무력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최근 일어나고 있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일본의 고대사 왜곡 등 이런 저런 사건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얼핏 그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역사 속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다려주지는 않으며 열심히 깨어서 스스로 움직이는 자들에게 바르게 흘러간다고 말이다.

버스는 벳부 항구에 뭔지 모를 아쉬움의 자국을 남기고 이제 일본 여행의 아쉬운 마지막 밤이 기다리고 있는 숙박지인 아소마찌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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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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