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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문화회관 퍼포먼스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퍼포먼스 "JUMP"
ⓒ 이인우

절기상으로는 입추라 가을의 길목에 들어섰는데도 아직도 실제 날씨는 한여름의 무더위가 절정에 이루고 있는 요즘이다. 시원한 소나기라도 한번 쏟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욕구를 대변하듯 최근의 공연들은 얼음판 위에서 벌어지는 아이스댄스, 아이스 발레가 대규모 공연장을 중심으로 공연되고 있다.

지난 7일 토요일 주말 오후를 맞아 찾은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아이스 발레단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공연되고 있어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로 공연장 주변은 북적였다. 어린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를 뒤로 하고 세종문화회관 옆의 퍼포먼스홀로 발길을 옮겼다.

현재 세종문화회관 퍼포먼스홀에서는 지난 6월부터 순수 국내 창작 퍼포먼스 'Jump'가 공연되고 있는데 모처럼 주말을 맞아 찾은 공연장의 분위기는 뜨거운 바깥 기온과는 사뭇 다르게 시원한 냉방시설이 턱에 차오르던 몸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2002년 12월 초연 된 이래 수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였던 아크로바틱 Jump는 익히 알려진 내용처럼 태권도 등 무술유단자 집안에 두 명의 도둑이 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고도의 아크로바틱 기술과 무술동작을 바탕으로 코믹하게 그려낸 순수 국내창작 공연물이다.

이전부터 Jump의 포스터를 볼 때마다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봐야겠다고 다짐했던 작품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까지 약 1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 만큼 기대도 컸던 작품이었다.

▲ 허리굽은 할아버지 _ 공연의 시작과 중간에 이 할아버지의 역할을 볼 수 있다.
ⓒ 이인우

공연의 시작은 허리가 굽어 지팡이에 의지한 할아버지가 어렵게 아주 어렵게 무대에 오르면서 시작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할아버지의 비밀은 바로 '무대커튼' 또는 '암전(暗轉)의 역할이었다. 매우 기발한 발상인 것 같았다. 작품을 보면서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웠던 희곡의 용어를 떠올리게 될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극중 취권의 대가 역할을 하는 삼촌 _ 오른쪽
ⓒ 이인우

공연장에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무대 어디에도 별도의 자막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음악과 액션만이 공연의 전부는 아닐 텐데 외국인들은 어떻게 내용을 이해할까? 하는 의심을 가지며 공연을 지켜보던 나는 고개가 자연스럽게 끄덕여지는 장면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배우들이 간단한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대화를 하고 커다란 손동작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모습에서 굳이 외국인을 위한 자막장치가 필요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히 자신이 술을 마셨다는 표현을 매우 능청스럽게 손동작과 온몸으로 표현하는 삼촌의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그가 <취권의 대가>임을 알게 된다.

▲ 관객이 직접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꾸며가는 관객참여 프로그램
ⓒ 이인우

우리의 전통 연희극인 '놀이마당'의 그 형태와 매우 비슷한 관객참여 프로그램도 볼 수 있었는데 관객이 공연의 일부가 되어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이러한 내용은 외국인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요소로 최근의 공연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온 관객과 한국인 여성 등 두 명의 관객이 직접 무대에 올라와 배우들의 지시에 따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모습에서 함께하는 공연, 우리 고유의 공연임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약 두 시간에 가까운 공연은 시종일관 긴장이 되고 넘치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이다. 마치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마루운동을 보는듯한 배우들의 고공테크닉과 잘 짜여진 무술동작은 한 편의 무술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본 공연이 끝나고 이어지는 배우들의 자유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아크로바틱 묘기를 겸한 무대 인사는 마지막까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공연의 흥행요소였다.

▲ 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배우들의 사인회 장면
ⓒ 이인우

▲ 자신이 쓴 한글이름과 배우의 사인을 받아 든 일본인 유우키씨
ⓒ 이인우

▲ 중년의 일본인 관광객이 배우에게 사인을 받는 모습
ⓒ 이인우

눈깜짝할 사이 아쉽게 공연이 끝나자 공연장 스피커에서는 잠시 후 배우들의 사인회를 알리는 내용이 관객들의 발길을 로비에 잡아두게 했다. 잠시 후 로비에 모습을 보인 배우들은 아직 흐르는 땀조차 닦아내지 못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던 관객들에게 사인을 해 주기 시작했는데 사인을 받는 관객들 중에는 유독 일본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배우가 사인을 위해 관객의 이름을 묻자 일본인 관객은 한국말로 "저는 유우키에요!"라며 말하고 자신이 직접 한글로 입장권에 이름을 적어주며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필자가 어떻게 공연을 보러 왔냐고 묻자 유우키씨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국어를 배우러 어학연수를 왔다가 주말 문화체험행사로 공연을 보러 왔다"며 웃으며 답한다.

사인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 일본인 학생들뿐 아니라 중년의 아주머니들도 있었고 노랑머리의 외국 사람들도 배우들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인을 받은 관객들은 모두 배우들과 사진을 찍는 것을 잊지 않았는데 약간은 어설픈 한국말로 "사진이요!"하면 배우들은 알아서 그들과 사진을 함께 찍는 모습이 매우 다정해 보였다.

▲ 도둑님! 저랑 사진 찍어주세요! _ 도둑2역의 배우 김민호씨
ⓒ 이인우

▲ 암전역할을 하는 노인역의 윤효상씨와 사진찍는 관객
ⓒ 이인우

▲ 청학동 사내 역할의 안경총각 윤정열씨와 사진찍는 일본인 관광객들
ⓒ 이인우
사인을 하는 배우들의 앞에는 각각, 아버지, 어머니, 딸, 도둑1, 도둑2 등 배역이름이 적혀져 있었는데 한 일본관객이 “도둑님! 저랑 사진 찍어주세요!”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도둑배역을 맡은 배우가 활짝 웃으며 자연스럽게 관객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짧은 한국 여행기간 동안 이들은 소중한 한국에서의 추억 한 가지를 간직하게 되었다.

지금 한국의 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일본등지에서 조용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 가수들의 콘서트, 영화상영, 그리고 우리 고유의 창작 뮤지컬과 연극무대의 공연들이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조용하게 그러나 그들의 가슴속 깊이 추억으로 기억되며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 산업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위치를 자리매김 하고 있다. 우리의 영화, 게임, 노래,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컨텐츠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으며 그것들이 전혀 새로운 문화 파생상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분명 문화를 그 형식 자체만으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 그것이 가져오는 또 다른 산업으로써의 문화영역에 눈을 뜨고 제작자는 그것을 창조적으로 만들어내며 정부와 국가는 그것을 지원하고 우리 소비자들은 그것을 사랑하며 올바르게 이용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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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리고 조선중후기 시대사를 관심있어하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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