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세 파동이 급기야는 지방자치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회의로까지 번지고 있다. 수도권 도시의 지방의원으로서 요즘만큼 주민들의 민원과 개인적인 고민에 시달릴 적이 없다. 그만큼 이번 재산세 파동에는 갖가지 현실적인 불합리와 함께 왜곡된 시민의식이 작동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보유세 강화라는 원론적인 소신만을 고집하기에는 지역 주민들의 항변이 너무도 치열하기 때문이다.
우선, 재산세를 국세로 전환하자는 주장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지방자치는 '자치'에 대하여 주민 스스로 책임 있게 결정권한을 행사하는 제도이다. 그 중에서도 지방세의 확대를 통해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조세자율권을 주어 탄력적으로 지방재정을 운용하게 하는 것은 지방자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지방자치에 대한 각종 정책결정과 권한의 행사에는 지역의 특수성과 주민정서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역성 짙은 갖가지 지역정책이 생겨나게 되고, 심지어 지역이기주의적인 결정도 내려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막는 것은 권한 자체를 몰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없도록 하는 국민의식과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높여야 한다. 강남의 재산세 인하를 들어 그 권한을 거두어들이더라도, 우리의 저급한 사회적 책임성과 연대의식이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누진세원에 대한 국가적 공동관리방식으로 빈곤지자체를 지원한다든지, 세율인하 및 인상에 대한 일정한 한계선 등을 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 있다.
조세의 책임만 지우고 권한을 국가에서 행사하는 것은 지방자치를 하지 말자는 얘기와 같다. 마치 잦은 분규발생과 이익집단화 되어간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없애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재산세 파동과 관련하여 재산세를 국세로 전환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지방자치에 대한 기본원리조차 모르는 유아적인 발상에 불과할 뿐이다. 적어도 지자체의 영토라 할 수 있는 지역의 행정구역 내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재산에 대한 세금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번 재산세 파동은 보유세의 현실화 정책이 나올 때부터 예고되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강남구가 세율인하를 단행하면서 지진의 강도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재산세율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재정 형편 등을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하라는 취지에서 50% 범위의 세율조정권이 주어져 있다. 따라서 지방세인 재산세가 지역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문제는 보유세 현실화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강남에서 이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재산세 인하의 대상을 저소득계층으로 하는 선진국의 감세 통념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다른 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극도로 자극했고, 처음으로 세율의 지역적 차별이 발생하면서 조세의 기본원칙인 형평성에 대해서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아파트 밀집지역인 우리 지역(경기도 고양시)도 이런 역풍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아파트 단지를 찾아 주민간담회를 열며 설득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지방세가 줄어들면 그만큼 복지예산이 줄고 상급기관의 예산지원도 불이익을 받는다고, 세율을 인하한 다른 지자체에 비해서 우리 시의 인상률은 월등히 낮다고, 보유세의 현실화는 압도적인 찬성여론으로 진행되는 조세정책이라고 설명해도 주민들의 분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세액산출의 근거가 되는 적용지수와 잔가율, 평수 크기에서 국세청기준시가로 바뀐 가감산율 등 개념도 난해하고 계산도 복잡한 건물과표 산출체계를 조목조목 따져가며 아무리 설득해도 "우리보다 훨씬 부자동네도 다 내리는데 왜 우리는 내리지 않느냐"는 항변 앞에서는 솔직히 말문이 막히고, 인하를 검토하겠노라고 풀이 죽은 답변을 해야 했다. 뼈대만 남은 우리 공동체의 허약한 연대성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오른다.
언론의 단순비교보도와 정부의 무능력한 대처
재산세는 선박, 항공기 등 고정자산과 건축물에 부과되는 세금인데, 건축물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보통 '건물세'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건물의 구조와 용도, 위치, 건축연도에 따른 감가상각, 평수 등이 과표의 기준이었다. 물론 위치지수가 건물 부속토지에 대한 가격의 반영이지만, 그 비율은 극히 작은 것이다. 그러니까 평수가 비슷하면 지방 도시의 아파트나 서울 강남의 아파트나 세액이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공평과세'를 목적으로, 여러 가지 가감산지수 중 가장 큰 변수가 되었던 면적대비 가감산율을 시가가 반영된 국세청기준시가로 바꾸었다. 40여 년 동안의 재산세 과표기준이 바뀌어 거의 수수료 수준이었던 세액이 급격하게 인상된 것이다.
문제는 세액을 결정하는 건물과표의 산출체계가 담당 공무원도 헷갈릴 만큼 복잡하고, 그 체계를 잘 모르는 주민들은 거래시가를 기준으로 재산세가 부과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시가가 반영은 되었지만, 그것도 하나의 변수일 뿐 시가 자체가 부과기준은 아니다. 아파트의 거래시가는 건물의 가치보다는 오히려 부속 토지 및 지역의 개발가능성 등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토지에 대해서는 올 10월쯤 종합토지세가 별도로 부과된다.
이번 재산세 파동은 언론에서 이런 주민들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함으로써 혼란을 더욱 부추긴 측면이 크다. 강남과 기타 지자체의 재산세를 단순히 시가 기준으로 비교하여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그런 예이다.
그러나 재산세는 건물세이기 때문에 건축연도와 평형도 국세청기준시가 못지 않게 중요한 변수가 된다. 예를 들면, 강남의 8억짜리 아파트라도 신축연도가 20여 년이 넘고 평수가 적은 경우, 신축연도가 7, 8년 된 일산의 40평대 3억짜리 아파트보다 재산세가 적게 나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어정쩡하게 시가가 반영된 이번 재산세 과표 변경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정부의 무능력한 대처도 혼란의 공범이다. 지자체의 세율인하 도미노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형국이다. 지방분권을 중심 정책과제로 삼고 있는 참여정부가, 지방자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세파동에 대해 단지 황당한 표정으로 입만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도시의 경우 사실 지방세 중에서 재산세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만 해도 전체 지방세 중 재산세의 비율은 약 10% 정도이다. 올해 재산세 총액 265억에서 20%를 인하 하면 29억7000여만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어찌보면 큰 액수지만, 주민 여론에 따라 세율을 인하하는 데는 그리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액수이다. 또한 20%를 인하하더라도 재산세 총액(재산세, 도시계획세, 공동시설세, 지방교육세의 합계)이 아니라 일부 세목만 인하하기 때문에, 가구에 따라 총액 대비로는 20%에 훨씬 못 미치게 줄어들 수도 있다. 따라서 7, 80% 이상 인상된 가구에서 그 정도 인하로는 피부에 와 닿지도 않을 것이며, 결국, 세율인하는 주민들의 심리적 저항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가장 클 것이다.
이번 재산세 논란으로 인해 세무행정의 공신력과 법적 안정성, 그리고 보유세 강화라는 조세개혁의 원칙이 크게 훼손되었다. 뿐만 아니라 매년 재정지출이 확대되는 만큼 세수도 일정하게 늘어가야 한다는 지방재정의 건전성과, 앞으로 지방재정의 형편에 따라 재산세를 인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질 것이다.
수도권 주민들은 과표의 기준이 되는 국세청기준가액이 각 지역의 시가가 공평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이다. 어떤 지역은 시가의 90% 이상을 반영했고, 어떤 지역은 75% 남짓 반영했기 때문에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건물만이 거래되는 시장이 별도로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건물의 가격을 평가해서 재산세를 정할 때 객관성 확보가 상당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공동주택만이라도 건물과 토지를 묶어, 시장에 형성된 거래시가를 전면적이고 공평하게 반영하여 과표를 현실화하는 게 객관적일 것이다. 또한 그 기준이 되는 고시가액 결정의 사전 이의제기 절차를 두어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합의의 과정을 제도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율도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게 합리적인 해결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