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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도 길이 있다
갯벌에도 길이 있다 ⓒ 김준
그렇다고 아무 때나 널배가 갯벌을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바닷물이 빠지고 바닥에 촉촉한 물기가 남아 있어야 이동하기 쉽다. 물이 적게 빠지고 적게 드는 조금 때나 햇볕에 갯벌이 마르는 경우에는 널배를 타고 이동할 수 없다. 따라서 마을이나 계곡에서 작은 실하천처럼 물이 유입되는 곳으로 널배의 이동로가 만들어진다.

갯벌의 이동 수단 '널배'
갯벌의 이동 수단 '널배' ⓒ 김준
널배는 대부분 여자들이 꼬막이나 맛을 채취할 때 이용하지만 짱뚱어 낚시를 하거나, 물을 보러갈 때(그물에 걸린 고기를 거두러 가는 것을 말한다) 남자들도 이용한다. 왼발보다 오른발을 중심 발로 이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왼발을 널배에 올려 무릎으로 지탱하고 오른발로 갯벌을 밀면서 이동한다. 왼 무릎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노끈을 엮어서 만든 또아리를 널배에 고정시켜 그 위에 무릎을 올려 놓는다.

벌교읍 대포리에서 맛을 뽑는 어민들의 경우 널배에 70~100kg의 맛을 싣고 이동한다. 물때가 맞지 않아 갯벌이 말라 버려 이동하기 어려울 경우 널배에 물을 담은 그릇을 싣고 이동하면서 널배가 갈 수 있도록 물을 부으면서 이동하기도 한다.

물길 따라 갯벌은 '맛밭', '꼬막밭', '새꼬막밭', '새조개밭', '키조개밭'

대포리의 갯벌은 깊은 바다로 나가면서 서식하는 갯벌 생물들이 바뀐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가리맛이 서식하는 곳으로 '맛밭'이라고 부른다. 맛밭과 '꼬막밭'을 구분하는 것은 '발'(그물)이다.

발은 찔럭게('칠게'의 현지명으로 부안 등지에서는 '찍게'라고 부른다)를 잡는 그물로 이 부근을 '게밭'이라고 한다. 찔럭게는 게장을 담거나 갈아서 밥에 비벼 먹는 반찬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봄철과 가을철에 낙지를 잡는 주낙의 잇감('미끼'의 현지명)으로 수요량이 많아지면 짭짤한 소득원으로 그만이다.

찔그미와 문절구를 잡는 ‘발’
찔그미와 문절구를 잡는 ‘발’ ⓒ 김준
이곳에서는 발을 설치할 때도 입찰을 통해 설치할 어민들을 선정하고 있다. 마음대로 갯벌을 막아 발을 설치하여 갯벌 생물을 산란과 서식을 방해하는 것을 막으려는 장치로 보인다. 그물을 경계로 물이 쓸 때(썰물) 바다 쪽으로 드러나는 갯벌은 모두 '꼬막밭'이다. 예로부터 뻘이 좋아 맛이 좋기로 소문난 벌교 꼬막은 '간간하면서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소설 <태백산맥>의 맛자랑 덕에 더욱 유명해졌다.

맛을 뽑는 어민
맛을 뽑는 어민 ⓒ 김준
대포리도 겨울철에는 꼬막으로 갯벌이 한바탕 뒤집어진다. 이 꼬막은 '참꼬막'으로 제사상에 오른다고 해서 '제사꼬막'이라 한다. 약간 더 깊은 곳에 서식하는 새꼬막은 배에 '형망'이라는 채취 도구를 달고 채취한다. 대포리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사는 패류는 새조개와 키조개이다. 봄철 영등사리 무렵 물이 많이 쓰면 키조개를 뽑아내는데, 한때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이렇게 대포리 갯벌은 어민들에게 농사짓는 '밭'으로 통한다.

갯벌을 이용할 수 있어야 진짜 마을 주민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포리 어민들은 갯벌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지 못했다. 양식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농사철에 농사를 짓고, 농번기에는 부산이나 제주에서 고기 받아다 작은 이문을 남기고 넘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갯벌에 어민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양식면허제도가 도입되면서 부터이다.

1960년대 수산업협동조합법 개정과 함께 어촌계가 만들어지고, 관행적인 어업 활동에 대한 면허 제도가 도입되었다. 사실 면허 제도 이전에도 대포리에서 꼬막을 채취해 왔지만, 돈이 있고 일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 중심이었지 마을 주민 전체가 참여하지는 않았다. 마을 주민 모두가 꼬막 양식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꼬막 양식이 어촌계에 허가되면서였다.

이렇게 갯벌이 마을 주민 모두 참여하는 생산 공간으로 바뀌자 이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 공동 어장이기 때문에 공동 노동, 공동 분배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수, 순천, 장흥, 고흥 등 일부 지역은 갯벌을 나누어 개인별로 점유하고 있다(소유에 가깝지만 갯벌은 공유수면으로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개인 소유가 될 수는 없다). 갯벌을 양식장으로 만들기 위한 개인의 노력을 마을 공동체에서 인정하여 개별 점유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대포리처럼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분할하는 경우도 있다.

대포리 경우 개인별로 나누지는 않았지만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측량을 통해 갯벌을 7개로 나누어서 조별로 10여명이 꼬막 양식에 참여하고 있다. 조별로 매년 100여만원의 양식 운영비를 거두어 종패를 사다가 뿌리기도 한다. 이렇게 뿌린 종패는 3년 정도면 상품 가치가 있을 정도로 자라는데 주민들이 직접 꼬막을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채취꾼(대부분 순천 '마산'에서 온다) 20~30여명을 고용해서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채취한다. 소득은 조별로 분배하는 데 보통 500여만원 벌이는 된다고 한다.

외지 사람이 대포리에 들어와 산다고 하더라도 꼬막밭의 이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마을에서 3년 정도 생활하면 마을 주민으로 인정해 다른 갯일들은 할 수 있지만 꼬막밭만은 다른 구성원이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진정한 마을의 구성원은 꼬막밭을 벌어먹을 수 있어야 인정되는 것이다.

갯벌에서 하루에 10만원씩 뽑는다

35도를 오르내리는 땡볕에 대포리 갯벌에는 10여명의 여성들이 얼굴이 갯벌에 닿을 정도로 팔을 뻘에 집어 넣어 무엇인가 뽑아내고 있다. 여름철 갯벌에서 맞는 바람은 육지와 다르다. 갯바람은 시원하기는커녕 소죽을 끊인 후 솥뚜껑을 열 때 나오는 훈기마냥 얼굴을 덮쳐 숨을 쉬기 어렵다. 이들은 아침 5시 30분에 나가서 물이 들어 오는 4시 30분 무렵까지 열 시간 이상 갯벌에서 가리맛을 뽑아내고 있다.

100kg의 가리맛을 상자에 담고 갯벌을 이동하는 여성.
100kg의 가리맛을 상자에 담고 갯벌을 이동하는 여성. ⓒ 김준
대포리 어촌계는 공동어장에서 가리맛 채취권을 수산업자에게 넘겼고, 업자는 여성들을 고용해 1kg 뽑는 데 1500원씩 지급하기로 하고 채취하고 있다. 채취를 하는 어민들은 짱뚱어나 찔럭게 등 가리맛 외에 갯벌 생물도 잡을 수 없고 오직 가리맛만 채취하는 것이다. 보통 이들의 하루 채취량은 70~100kg으로 하루에 10만원 벌이가 훌쩍 넘는 셈이다.

갯벌의 더운 바람을 맞으면 일한 대가로 치자면 그렇게 큰돈은 아니지만 여자 벌이로 적지 않다. 이들은 아침에 나올 때 커다란 플라스틱 음료수병에 물과 미숫가루 등을 넣어서 냉동실에 얼리고, 갯벌에서 먹을 수 있는 요깃거리도 준비해 가지고 나온다고 한다.

매년 정월 보름 무렵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매년 정월 보름 무렵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당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 김준
대포리는 갯벌만 아니라 순천만과 여자만에 잇대어진 좋은 바다를 가지고 있다. 갯벌에는 층층이 다양한 조개가 '밭'을 이루고, 40여척의 배가 봄 숭어, 가을 전어와 쭈꾸미를 바다에서 올리고 있다. 예전에 비해서 잡히는 고기의 양은 줄어들었지만 갯벌은 자연이 준 소중한 '전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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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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