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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2004 캠프에 참가한 순천지역 분교 초등학교 학생들
도전2004 캠프에 참가한 순천지역 분교 초등학교 학생들 ⓒ 김석
농주, 용림, 회덕, 구강, 죽학, 어왕, 창녕, 마산, 송산, 쌍지 등은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20명이 넘지 않는 순천의 초등학교 분교들이다. 순천 지역 분교 초등학생 71명이 참가한 여름 캠프가 여름방학을 맞아 순천시 유스호스텔(순천YMCA 위탁운영)에서 8월 16일부터 18일까지 2박 3일간 개최되었다.

학기 중에 가는 소풍이나 현장학습을 제외하면 단체로 학교를 떠나 공동체 생활을 접해보기 어려운 이들에게 전라남도와 순천시의 후원으로 이번 행사가 준비되었다. 캠프 이름은 '도전 2004'.

행사를 주관한 고상연 부장(순천시청소년수련소 운영부장/순천YMCA청소년사업부장)과 박재형 선생(순천YMCA청소년사업부)은 고민 끝에 녀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순천대학교를 집합 장소로 결정했다.

순천YMCA 박두규 총무가 참가자를 환영하고 있다
순천YMCA 박두규 총무가 참가자를 환영하고 있다 ⓒ 김석
16일 오전 9시, 출발 시간이 아직 한 시간 이상이나 남았거늘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에 배낭을 둘러멘 녀석들 서넛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벌써?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이다. 늦으면 안 된다고 할머니가 새벽밥 먹여서 보냈단다. 그렇게 한둘씩 모이기 시작한 녀석들이 오전 10시를 넘어서자 순천대학교 체육관 앞 벤치를 장악했다.

박재형 선생님의 인원점검 시간. "자 집중하세요"라는 한마디에 녀석들은 선생님을 바라보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낸다. 도심에서 학교를 다니는 녀석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에 박재형 선생님은 당황스러워한다. 캠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레크레이션을 통해 어색함을 깨트리고 서로 친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레크레이션을 통해 어색함을 깨트리고 서로 친해지고 있다 ⓒ 김석
소망, 지혜, 우정, 희망, 사랑, 행복, 믿음, 슬기

첫날 프로그램은 녀석들이 평생 간직하고 살았으면 하는 것들 소망, 지혜, 우정, 희망, 사랑, 행복, 믿음, 슬기 8개를 모둠으로 나누는 것이다. 같은 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다른 모둠이 된 녀석들은 이렇게 생이별하는 것은 아닌지 근심이 가득하다.

녀석들의 근심은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끝나자 웃음소리와 함께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각 모둠별 조가, 조깃발, 조구호를 함께 만들면서 녀석들은 학교를 벗어 버리고, 서로의 모둠명으로 똘똘 뭉쳤다. 녀석들은 게임이라도 할라치면 서로 이겨보겠노라고 아우성이다.

얼굴은 온통 숯검댕이가 되어도 집을 떠나 친구들을 새롭게 사귀는 즐거움에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얼굴은 온통 숯검댕이가 되어도 집을 떠나 친구들을 새롭게 사귀는 즐거움에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 김석
저녁에 함께 본 만화영화는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다. 환경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일본 만화영화지만 문만 열면 짙은 녹음이 가득한 세상이 열리는 녀석들에게는 적당한 영화가 아닌 거 같다.

각 모둠별 친근감과 공동체 의식을 높여주는 추적놀이가 시작되었다. 여름 별자리 이야기를 듣는 코스에서는 비록 먹구름 때문에 하늘의 별을 볼 수는 없었지만 검은색 도화지에 야광별 스티커로 자기만의 별자리를 만들면서 하늘에 70개의 새로운 별자리를 그려 넣는 작업을 했다.

신문지로 종이배를 접고, 종이배에 각자의 소원을 빈 후 태운다. 종이배를 태운 재를 서로의 얼굴에 칠해주는 순서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지나 싶더니 지도자 선생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서로 웃고 장난치는 모습 속에서 첫째 날의 어색함은 그렇게 사라졌다.

아이들이 쏘는 물감 총알이 꼭 추억과 희망으로 되돌아 오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쏘는 물감 총알이 꼭 추억과 희망으로 되돌아 오기를 바란다 ⓒ 김석
둘째 날, 섬진강에서 진행된 래프팅과 서바이벌게임, 다들 처음 해보는 프로그램이란다. 서바이벌 게임에서는 숲 속을 이리 저리 신나게 뛰는 녀석들, 무서워 바위틈에 숨어서 꼼짝하지 않고 머리 위 하늘을 향해 허무하게 페인트 탄을 모두 소진해 버리는 녀석들,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한발 한발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는 녀석들을 보며 세상의 모든 총알이 저 페인트 탄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래프팅 교육을 받고 난 후 드디어 섬진강으로 출발
래프팅 교육을 받고 난 후 드디어 섬진강으로 출발 ⓒ 김석
이제 고무보트를 타고 섬진강을 헤쳐 나가야 할 차례다. 차례차례 각자의 보트를 들고 강에 배를 띄우는 순간, 힘찬 함성소리가 여기 저리게 울려 퍼진다. 6km의 대장정, 가이드 선생님들의 구령소리에 맞춰 노를 저어보지만 막걸리 한잔 하신 할아버지가 타는 자전거처럼 배는 삐툴빼툴 좀처럼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기를 30분, 선생님 구령과 독려에 다들 늠름한 뱃사공이 되어 힘차게 노를 젓기 시작한다. 보트끼리 물을 끼얹으며, 서로 경주도 하며 신나게 배는 아래로 비처럼 흘러내린다.

태평양까지 이 배를 몰고 나가 전 세계를 돌아보리라
태평양까지 이 배를 몰고 나가 전 세계를 돌아보리라 ⓒ 김석
래프팅을 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쉬는 동안 지도자 선생은 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학교 끝나면 머하고 노냐?"
"음, 할머니랑 고추따고 친구들이랑 도랑에 놀러가요."

아이는 "할머니 심심하겠다"며 말끝을 흐린다. 무심코 물어본 말에 녀석은 할머니 생각에 이 캠프가 편하지 않은가 보다.

"자자, 이번에는 보트를 거꾸로 뒤짚고 다이빙을 하자."

녀석은 금세 할머니 생각을 잊고 물 속으로 첨벙하고 들어간다.

아이들은 강변 모래사장에 배를 댄 후 보트를 뒤집어 미끄럼틀을 만들어 놓고, 물속으로 신나게 다이빙한다. 오후가 지나간다. 아쉬움 속에 노를 걷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오늘 하루의 무용담을 서로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다.

마지막날 캠프파이어 시간에 친구들과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는 참가자들
마지막날 캠프파이어 시간에 친구들과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는 참가자들 ⓒ 김석
마지막 저녁, 가는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놓고 밤은 깊어간다. 캠프파이어 막바지 다짐의 시간, 집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생각에 숙연해지는 분위기, 그동안의 잘못을 모두 장작불 속에 던져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캠프의 마지막 밤잠을 청해본다.

셋째 날, '캠프 속 내 얼굴'이라는 주제로 나무목걸이에 소원을 적는 공동작업 시간에는 자기 얼굴을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 즐겁게 웃는 얼굴인데 유독 한 아이가 찡그린 얼굴을 그리고 있다. 캠프가 재미없었을까? 아님 친구와 싸웠을까? 직접 묻지 못하고 그저 추측만 할 뿐, 선생님들이 서운하게 했다면 용서하기를 빌어본다.

아이들이 그린 미래의 얼굴, 꼭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기를...
아이들이 그린 미래의 얼굴, 꼭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기를... ⓒ 김석
마지막 단체 사진 촬영을 한 후 차에 오르는 시간 태풍 메기가 몰고 온 빗줄기는 지도자들을 긴장시킨다. 한 시간 정도만 비가 멈춰주면 좋으련만…. 고상연 부장은 숙소에 남아 전화를 기다린다. 삼십 여분이 지난 후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 아이들이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는 분교 선생님들의 전화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후, 아이들이 놓고 간 수건이며, 속옷을 정리한 후 마음 편한 휴식을 취해본다.

도전 2004 캠프는 끝났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도전 2004 캠프는 끝났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 김석
2박 3일, 녀석들과 함께 한 시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고추 따던 이야기, 친구들과 도랑에서 물장난하던 이야기, 학교 끝나면 집으로 가는 길에 보는 하늘과 나무 이야기, 녀석들은 지도자들에게 고향의 모습을 전해주고 갔다.

순천지역 분교 어린이들을 위해 준비된 캠프지만 오히려 녀석들을 통해 지도자들은 잃어버렸던 동심을 되찾는 시간이었다.

순천시 청소년수련소 고상연 부장은 "지금까지 수많은 캠프를 기획하고 진행해 왔지만 이번처럼 기분 좋게, 신나게, 보람된 캠프는 처음이었다"며 "내년에도 녀석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순천시의 지속적인 관심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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