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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중턱 초원 위의 누렁이들
한라산 중턱 초원 위의 누렁이들 ⓒ 김강임
한라산 중턱 해발 600m. '음메-' 하는 소리를 듣고 자동차의 창문을 열었다.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목놓아 우는 누렁이의 울음소리가 창공에 울려 퍼진다. 한 놈이 울어대니 옆에 있는 친구들도 따라서 울어댄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름의 터줏대감으로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천고마비의 계절 속에 초원을 누비는 누렁이들은 한라산의 야트막한 초원이 고향이다. 때를 지어 풀을 뜯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이들은 서로가 몸을 비비기도 하고, 때를 지어 다니기도 한다. 그런 모습이 꼭 산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창공에 수를 놓는 코스모스
창공에 수를 놓는 코스모스 ⓒ 김강임
푸른 창공에 정성껏 수를 놓는 것은 코스모스다. 뭐니뭐니해도 가을꽃은 코스모스다. 하얀색, 빨강색 그리고 분홍색이 한 무리를 지어 있는 코스모스는 가을 바람을 기다린다. 코스모스는 긴 목을 드러내고 가을 바람에 흔들려야 제멋이다. 가을 하늘은 코스모스가 있어서 심심하지 않겠다.

신비의 도로 주변 코스모스 물결
신비의 도로 주변 코스모스 물결 ⓒ 김강임
신비의 도로 옆을 지나면서 브레이크를 밟는다. 꼬불꼬불 길 옆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의 행렬을 그저 지나갈 수 없어 차를 멈췄다. 코스모스 꽃 냄새야 무슨 냄새가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한 잎을 뚝 따서 코끝에 들이댄다. 그저 가을 냄새만 가득할 뿐이다.

어쩌면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사람. 그리고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언뜻 학창시절 코스모스 꽃잎을 따서 책갈피에 끼워 놓았던 시간을 떠올린다. 참 정성스럽게도 묻어 두었던 해맑은 추억들이다.

한라산 중턱 해발 700m에서 만난 억새꽃
한라산 중턱 해발 700m에서 만난 억새꽃 ⓒ 김강임
해발 650m쯤 되는 지점에서 관음사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벌써 억새꽃이 가을을 담금질하고 있다. 이 놈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한라산은 단풍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항상 성급한 놈들이 먼저 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먼저 꽃을 피운 놈들은 아직 여물지 않은 억새꽃에게 빨리 껍질을 벗기라고 손짓을 한다.

관음사로 가는 길에서 만난 강아지풀과 들꽃
관음사로 가는 길에서 만난 강아지풀과 들꽃 ⓒ 김강임
8월은 여름의 흔적까지 가져갔나 보다. 여름내 북새통을 이루던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졌으니 말이다. 그 심심한 도로변에는 강아지풀이 연보라색 가을꽃과 어우러져 있다. 조물주는 참 섬세하기도 하시지. 한라산 중턱에 혼자 있는 강아지풀에게 예쁜 친구를 주셨으니 말이다.

가끔 아침 커피를 혼자 마실 때면 소근거리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 시간이 1분 아니 30초에 느껴지는 공허함일지라도 뜨끈한 커피 한 모금이 목구멍에 들어갈 때까지 그 텅 빈 공간은 채워지지 못할 때가 있다.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제일 먼저 다가오는 가을 냄새를 맡아 볼 수 있는 여유. 그러면서 슬쩍 브레이크를 밟고 지난여름을 회상할 수 있는 낭만이 한라산 중턱에 숨어 있다.

한라산의 길목 한라수목원에 핀 상사화
한라산의 길목 한라수목원에 핀 상사화 ⓒ 김강임
차를 돌려 한라산의 길목인 한라수목원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나를 반기는 것은 푸른 숲 아래 피어 있는 상사화이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평생 동안 꽃과 잎이 서로 그리워만 하는 꽃. 억만 겁의 인연이 닿지 않아 서로 만날 수 없는 꽃. 늘 서로를 그리워하며 홀로 지내는 수밖에 없는 상사화가 9월을 장식한다.

그런데 왜 상사화 꽃잎은 잎이 말라죽은 다음에야 꽃대가 올라오는 것일까? 언 땅을 녹이며 올라온 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9월이면 다시 올라오는 비극. 상상화에 얽힌 사연이 너무나 애절해서 물끄러미 꽃잎만 바라만 본다.

계절을 모르고 핀  노란 매화도 가을 파티에 초대되어
계절을 모르고 핀 노란 매화도 가을 파티에 초대되어 ⓒ 김강임
9월에 초대된 손님은 계절을 모르고 피어 있는 노란 매화이다. 한 송이 아니 두 송이가 가을꽃과 함께 초대되어 있는 한라수목은 벌써 가을 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도종환님의 시를 떠올린다.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자락 덮어도
매화 한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 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을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 속 홍매화 한 송이


가을하늘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배롱나무 꽃잎들
가을하늘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배롱나무 꽃잎들 ⓒ 김강임
한라산의 가을파티에 초대될 손님 중에서 가장 화려한 꽃은 빨갛게 핀 배롱나무이다. 일명 '백일홍'이라 부르기도 하는 배롱나무는 가을 하늘과 좀더 가까이 가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 빨간 그래서 파란 가을 하늘과 더욱 잘 어울리는 조화로움이 9월과 가장 잘 어울린다.

배롱나무 꽃잎은 가을 하늘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가지 하나에 빈틈없이 모여든 꽃잎들. 어우러져 사는 관계. 둘 이상이 모여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간관계와도 같은 모습이다.

배롱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꽃잎들의 관계가 넉넉하고 풍요로워 보인다. 바글바글 보글보글 지지고 볶으며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저 꽃잎들이 참으로 부럽게 느껴지는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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