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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에 위치한 청학주공아파트. 이 아파트 6·7단지 입구에는 '주공의 보증금·임대료 불법인상 결사 반대'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공기업이 서민 상대로 임대료 장사를 하자는 겁니까? 금융업자인가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11리 청학 주공7단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이광남씨는 인터뷰 내내 대한주택공사(이하 주공)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심지어 "이럴 바에 차리라 공기업이 없는 편이 낫겠다"며 주공의 해체를 들먹이기도 했다. 이 회장이 이처럼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오른 것은 주공의 임대료 및 임대 보증금 인상 탓이었다.

청학 주공 7단지는 6단지와 함께 공공임대아파트 단지다. 주공 7단지에는 약 851세대의 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같은 임대아파트 단지인 6단지까지 합치면 1167세대.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최근 자신에게 날아든 임대료 및 임대보증금 인상 납부 고지서를 받고 격분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전반적인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공은 동결은 커녕 인상된 임대료를 8월말까지 납부하라고 채근했기 때문이다.

공정위, 지난해 군산미룡 주공아파트 5% 인상에 시정권고

지난해 공정위가 매년 5%씩 임대료와 임대보증금을 자동 인상토록 규정한 전북 군산미룡주공 그린빌의 표준임대차계약서에 대해 시정권고를 내렸음에도 주공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공정위의 시정조치를 바탕으로 한 주민들의 임대보증금 및 임대료 감액청구도 "공정위의 시정권고 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7조가 다음과 같이 경제사정 등의 변동 때 감액청구를 보장하고 있음에도 주공은 "임대차보호법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차임 등의 증감청구권) 약정한 차임 또는 보증금이 임차주택에 관한 조세·공과금 기타 부담의 증감이나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인하여 상당하지 아니하게 된 때에는 당사자는 장래에 대하여 그 증감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증액의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른 비율을 초과하지 못한다.

입주자대표회의의 장봉화씨(7단지 거주)는 "감액청구에 대한 주공의 자세가 너무 고압적이었고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나왔다"며 주공의 태도에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 청학주공 5년 임대아파트 표준임대차계약서. 2000년 계약 당시부터 입주 후 5년 동안의 임대보증금과 임대료를 미리 못박아 놓았다. 이 부분에 대한 공정위의 시정조치를 두고 입주민과 주공 쪽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인상된 임대료 못 내겠으면 나가라는 식" 입주민 분노

특히 그는 현재 감액청구가 충분히 받아들여질 만큼 경제적 여건이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내수침체, 물가상승, 전세값 하락, 중산·서민층의 실질소득감소 등 서민들을 둘러싼 경제상황이 바닥이기 때문이다.

장씨는 "최근 물가가 많이 오른 데다 경제사정 악화로 임대료를 못내는 세대만 20%가 넘고 관리비도 몇개월씩 연체한 가구가 많다"며 입주민의 경제적 고통을 호소했다. 더군다나 임대아파트의 가격을 전세가로 산정했을 때 주변 같은 평형 아파트의 전세값을 추월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입주민들의 불만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주공이 하자보수에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는 점도 입주민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다. 이광남 청학 7단지 입주민대표회의 회장은 "주공이 임대아파트의 하자보수를 관리업체에 위탁하는 등의 무성의를 보이고 있다"며 주공의 하자보수 책임 떠넘기를 비판했다.

한편 이에 격분한 7단지 주민들은 급기야 임대료 납부 거부 투쟁에 돌입했고 입주민 50%가 이러한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조만간 전국 임차인 연합회 모임이 소집될 예정이며, 이 회의에서 전국단위의 항의시위를 개최하는 방안도 논의될 계획이라고 장봉화씨는 전했다. 그는 "주공의 일방적 임대료 인상에 항의하는 집회를 청와대 앞에서 가질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주공 "감액요청 수용할 만큼 중대 사유 없다" 일축

[대한주택공사 반응] 주공은 입주민들의 감액청구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감액요구를 수용할 만한 중대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통상 임대아파트를 전세가로 환산했을 때 주변 아파트 시세(전세값)를 초과하면 감액사유에 해당하지만 아직 이 수준은 아니라는 것. 주공의 한 관계자는 "모든 임대아파트를 전세로 환산했을 때 주변 시세 보다 높은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시정조치에 대한 해석도 입주민들과 전혀 달랐다. 주공의 한 관계자는 "임대료와 임대보증금을 매년 5% 올리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는 것이 아니고, 감액청구권을 제한하는 약관이 잘못된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제적 여건변화와 관계없이 임대료와 임대보증금을 5% 인상하는 약관은 공정위의 시정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주공이 처음 분양했을 당시 5년치 임대료와 임대보증금이 정해져 있었다"면서 "이 부분을 입주민들이 잘못 생각해 감액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임대주택사업을 대폭 강화하는 주공의 사업구조도 고려해줄 것을 이 관계자는 요청하기도 했다. 주공은 올해 10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할 예정인데, 이 가운데 8만3000가구가 임대주택이다. 주공이 서민주택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는 수익창출이 필요하다. 그러나 임대료나 임대보증금 감액요구가 이어지면, 현금부족으로 임대주택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5년 임대주택 입주민들의 불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임대보증금은 결국 입주민의 돈이 되지 않느냐"며 입주민들의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어정쩡한 공정위... 그래도 "앞뒤 따지지 않고 5%씩 인상은 위법의 소지"

[공정거래위원회] 지난 8월 6일 (주)부영의 '묻지마' 임대료 인상 약관에 시정조치를 내린 바 있는 공정위는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공정위는 (주)부영에 대한 시정조치가 모든 임대차 표준약관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강제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2003년 전북 군산미룡 주공그린빌의 표준임대차계약서에 대한 시정권고도 타지역 주공아파트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송상민 공정위 약관제도과장은 "당해 심사청구된 건에 대해서 내린 것이고 그 약관에만 효력이 있는 것"이라며 "모든 임대아파트를 대상으로 일거에 시정조치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다만 보편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며 청학주공 임대차계약서에 대한 무효판정의 여지는 남겨뒀다. 송 과장은 "우리의 결정은 보편 타당성이 보장된다고 보기 때문에 5% 자동인상은 심사청구할 경우 무효로 판정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했다.

송 과장은 "감액청구권을 부여하라는 지적"으로 해석한 주공의 주장도 반박했다. "임대료 및 임대보증금 인상을 계약서 조항에 못박은 뒤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5%씩 인상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는 "사업자가 무조건 올리고 보겠다며 계약조건 만들고, 여기에 동의하든지 아니면 그만두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내릴 이유도 있지 않느냐"면서 "매년 5%씩 인상하는 것은 사업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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