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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손주며느리가 호두과자 한 말을 사왔다’며 동네 꼬부랑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잔뜩 자랑을 늘어놨던 뻥쟁이 치매할머니였다. 그러나 치매할머니는 정작 지난 주말 손주며느리를 맞은 결혼식 이후에는 아무말도 없으셨다.

새 손주며느리보다 더 애타게 기다리던 당신 딸들과 작은아들 내외. 두 밤만 더 자면 온다는 엄마 말에 할머니는 "내가 지금 몇 밤을 더 잤는데, 아직도 두 밤을 더 자"라며 괜히 엄마만 지치게 했는데….

"하긴, 하루에도 몇 번씩 자고 일어나 옷갈아 입기 바쁘시니 두 밤 얘긴들 믿으시겠냐."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파마하고 옷갈아 입고, 한복까지 챙겨놓으신 이유가 단지 손주 결혼식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걸.

사실 요즈음 집안에 큰일을 준비하고 또 시집간 여동생이 곧 아기를 낳으려고 하니 산 간호까지 신경써야할 입장인 엄마는 거의 녹초가 돼 있었다.

여인들끼리는 나이 많으나 적으나 그런 이심전심이 통했던 것일까. 할머니는 어느 새 짐을 싸놓으셨던 것 같다.

딸들 집이든 둘째 며느리집이든 추석 전까지 가 계시리란 생각도 잠깐 동안 정신을 챙긴 사이에 가졌는지 할머니는 이미 짐을 꾸려놓으셨다.

"에이, 우린 방이 없어. 잘 데가 없다니까."
"어휴, 이 사람은 자기 시어머니도 싫다고 안 모셔요. 그런데 친정엄마를 모시…."

손주며느리 이바지 음식 앞에 놓고 할머니 소원대로 딸들이며 아들들이 다 모였다. 나는 TV드라마 녹화장에 앉아 있는 줄 알았다.

잘 하지도 못하는 술 몇 잔에 고개를 더 숙여버린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는 말없이 주방에서 저녁 준비 하기 바빴고, 작은 엄마는 아예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에이, 누나는 뭘 이런 걸 창피하게 오마이에 올려."

띠 동갑도 훨씬 넘은 작은아버지의 아들이 핀잔 말까지 털어놓는 순간,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우리 집에 깨지지 않을 침묵의 정적이 시작됐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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