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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게 가로 19로, 세로 19로로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대국의 전개를 보면 언제나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다. 오랜 역사, 수많은 대국이 있었지만 결코 똑같은 대국의 모양은 탄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의 세상살이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 어머니 자궁에서 태어난 형제라 하더라도, 한 고장살이를 오래 해온 이웃이라 하더라도, 한 장르의 길을 걷는 친구 사이라 하더라도 그 삶의 모습은 누구나 다른 것이다. '인생 역전(逆轉)'이라는 말처럼 바둑에서도 그러한 역전은 수없이 일어난다.

'세계 바둑의 황제'라 불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조훈현 프로바둑 9단이 마침내 자신의 역사를 정리했다. <戰神 조훈현>이라는 자신의 바둑 역사책을 펴낸 것이다. '나는 바둑을 상상한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 <戰神 조훈현> 표지(청년사 발행)
ⓒ 청년사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 가운데 하나로, 단지 기억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기록을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것이 제대로 기록되었을 때 비로소 후세에 참 역사가 남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매우 뜻깊은 의미를 지닌다.

바둑평론가 박치문씨의 표현을 빌리면, '어려서 만화를 좋아하던 수줍음 많던 소년이 바둑의 길에 들어선 지 어언 40여 년. 사랑하는 아내를 얻고 세 자식을 두었으며 선생과 제자, 동문과 후배 등 숱한 인연도 만들어냈다. 변방에 내몰려 있던 한국 바둑을 세계 최강국으로 끌어올렸고 세계 최강의 제자를 키워냈으며 여전히 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위대한 조훈현'이 자신의 바둑 일생을 자신의 조카인 작가 김종서씨와 더불어 엮었다.

이 책을 드는 순간, 그리 크지 않은 책 한 권의 부피에 비해서 매우 묵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 조훈현이라는 '전신(戰神)'의 일생이 크레파스처럼 짙게 담겨 있기 때문일까?

작가 김종서씨는 300여 페이지의 책 한 권 속에 바둑계 세계 1인자 조훈현의 어려서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마치 물찬 제비 같은 속력 행마를 보여주듯이 속도감 있는 필치로 치밀하게 그려냈다. 이 책에는 조훈현이 직접 쓴 특별한 수필도 여러 편 곁들여져 있다.

'제1회 잉창치배 세계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주위에서 자서전을 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때가 아니라며 사양했다. 현역으로 승부에 임하고 있는 입장에서 아직은 미완성인 인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그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50대에 접어든 지금도 물론 변함은 없다'고 머리말에 고백한 조훈현은 '이번에 비로소 승부인생 40여 년에 관한 기록을 선보이는 셈인데 어쩐지 속살을 드러내는 느낌이어서 쑥스럽기 짝이 없다'고 <戰神 조훈현>을 바둑팬과 독자들 앞에 내놓은 느낌을 털어놓았다.

바둑 천재 조훈현은 어릴 적부터 뭔가 달랐다.

'어느 날 막둥이 훈현이가 엄마, 누나들이 한눈을 판 사이에 집을 나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데다, 기저귀 채우기 쉽게 앞섶이 동그랗게 터진 바지를 입었을 만큼 어린 훈현이 사라지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온 동네를 뒤지고 다녀도 훈현을 찾을 수 없었던 엄마와 누나들은 아버지에게 알리기 위하여 역전 뒤 고무공장으로 바쁘게 달려갔다. 공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맥이 탁 풀리며 희비가 교차하는 한숨을 토하고 말았다. 그렇게 마음졸이며 찾았던 훈현이 뜻밖에도 아버지 무릎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중략)
"훈현아, 너 여기 혼자 왔느냐?"
어린 훈현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만 끄덕거렸다.
"세상에!"
가족들은 일제히 약속이나 한 것처럼 탄성을 터뜨렸다. 집에서 공장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 1.5km쯤 되었다. 거리도 꽤 멀었지만 길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모퉁이를 몇 번이나 꺾고 휘감아 돈 다음, 큰길을 건너고 복잡한 역사(驛舍)를 가로지르고 철길을 건너 공장의 담벼락을 끼고 한 바퀴를 돌아야 찾아올 수 있는 길이었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뛰어난 조훈현은 걸음마를 겨우 시작한 어릴 적부터 승부를 걸었던 셈이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어른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공장을 찾지 못하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릴 적부터 속기에 능했던 조훈현은 사법고시나 신춘문예보다 어렵다는 프로바둑 입성을 겨우 아홉 살에 해냈다. 이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은 세계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

대한 바둑이 일본에 비해 약하던 그 시절, 입단 1년도 되기 전에 2단으로 승단한 조훈현은 바둑을 배우기 위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우칭위엔(吳淸原)의 스승인 세고에 문하로 들어갔다.

뜻밖에도 조치훈 등 유학파가 많이 입문한 기타니 문하가 아니었던 것이다. 마당에 쌓인 눈을 쓸고 치우는 등 '마당쇠 시절'을 보내던 조훈현에게 스승은 제자의 외로움을 덜어주려고 아키타견인 벵케이를 데려다 주었다.

'스승의 집에 내제자는 오직 나뿐이었으므로 나는 무던히도 외로움을 탔다. 그런데 벵케이가 등장하자 나의 아침은 활력이 감돌았다. 정원의 뜨락을 청소하고 난 뒤 30분 정도를 벵케이와 산책했는데 매일 안개 가득한 니시오기 거리를 놈과 함께 헤쳐 가다 보니 자연히 정이 들어 버렸다.

(중략) 공항으로 가기 위해 스승님 댁을 나오는 순간 벵케이는 어떤 예감이 들었는지 무척 슬픈 눈으로 나를 응시했고 낮은 신음소리만 냈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내가 귀국한 지 4개월 만에 세고에 선생님이 자살하셨다.

(중략) 그런데 그로부터 두 달 뒤에 벵케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조훈현의 스승 세고에는 먼저 자살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랜 벗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조훈현이 '괴물 슈코'라 불리는 후지사와 슈코를 만나서 실전감각을 익히던 이야기, 내기바둑을 두었다가 세고에 도장에서 파문당했으나 다시 살아난 사연 등이 <戰神 조훈현> 속에 흥미롭게 담겨 있다.

조훈현이 병역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조국에 돌아왔을 때 한국기원은 매우 난감했던 모양이다. 단위(段位) 결정 때문이었다.

'조훈현이 귀국하자 한국기원은 그에게 몇 단을 부여해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나갈 때는 2단이었다가 일본기원 5단으로 돌아왔으니 대우를 해주긴 해주어야 하는데 명분 차원에서 좀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엿한 한국기원 2단인 조훈현을 일본기원에서는 전혀 인정해 주지 않고 새로 입단시키지 않았던가.

(중략) 우여곡절 끝에 조훈현을 일본기원에서처럼 5단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조훈현은 이 과정을 통해 한·일 양국의 입단대회를 통과한 유일한 기사가 되었다.'


한국기원에서 장난기 가득한 동료기사들에게서 모국의 속어를 바른말로 잘못 배우고는 '눈깔', '대가리'라고 말했다가 창피를 당한 이야기, 공군 훈련병 생활에서도 모국어를 잘하지 못해 고문관 시절("뒤로 돌아가!"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고 버젓이 앞으로 행진하는 등)을 보내는 이야기 등은 재미있다 못해 차라리 눈물겹다.

그러나 이 눈물겨운 이야기는 어머니 사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조훈현이 군복을 벗기 전 한 가지 큰 아픔이 닥친다. 보문동 집으로 중요한 대국 통지서가 날아왔고, 부대로 전화가 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통지서를 들고 성남으로 달려가던 어머니가 트럭에 부딪쳐 큰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그런 슬픈 군대 생활에서도 조훈현은 차민수(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 4단을 만나는 기쁨도 맛볼 수 있었다. 최근 두 사람이 인터넷 바둑에서 만나 대국한 사연을 이 책은 참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차민수는 가끔 인터넷 바둑 사이트의 대국실에 들어가 아마들과 수담(手談)을 즐긴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 차민수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괴상한 아이디의 소유자가 도전을 해온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수 가르쳐 줄 요량이었는데, 어라? 한수 한수 놓일 때마다 판이 답답하게 짜여지는 게 아닌가? 결국 차민수는 참담하게 지고 말았다. 그는 재대국을 요청했는데 두 번째 판에서도 질질 끌려다니다 형편없이 당하고 말았다.

(중략) 수(手)를 보면 프로의 행마 같지 않은데 전투력이 무시무시한 상대였다. 프로의 위신 때문에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서만 그 망신스러운 경험을 서리서리 가슴에 묻고 있다가 나중에 조훈현을 만나 털어놓았더니 그가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더라는 것이다.

"하하하, 내가 그대의 아이디를 알고 있었지."'


이처럼 조훈현이 자녀들의 컴퓨터를 사용해 인터넷 바둑 두기를 즐기는 이야기, 대한의 기(棋)와 일본·중국의 기(碁)를 해석하는 조훈현의 시각, 산 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부인이 오해했다고 할 만큼 조훈현이 등산을 좋아하는 이야기, 독서를 좋아하는 이야기, 소주 한 잔도 못 마시는 이야기, 연초 제조청의 사보에도 실릴 만큼 지독한 골초(하루 4~5갑)였던 조훈현이 담배를 끊어 바둑계를 놀라게 한 사연 등의 뒷이야기가 <戰神 조훈현> 속에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또한 서봉수 명인에게 도전하여 승리함으로써 전관왕의 신화를 이룩하는 이야기. 제자 이창호와의 인연, 소년 바둑기사들을 바라보는 시각 등 대한 바둑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리더로서의 진지한 모습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

한때 동갑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서봉수 9단은 이 책에서 조훈현을 이렇게 평하고 있다.

"내가 거칠다고? 독하기로 하면 조훈현을 따라갈 사람이 어디 있나? 그의 손맛을 본 사람이면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의 펀치가 얼마나 통렬한 줄 아는가? 맞으면 뼛속까지 통증이 밀려온다. 한 판의 바둑에서 그런 뭇매를 수도 없이 맞는데 무려 400판 가까이 상대한 나는 정말 맷집이 좋은 셈이다"

또한 <戰神 조훈현>은 조훈현의 어머니 사랑을 가슴 뜨겁게 전하고 있다.

'얼마 전 김주영의 <홍어>라는 소설 제목을 보면서 불현듯 홍어회 생각이 간절했던 적이 있다. 아내가 요리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먹는 일에는 큰 불편 없이 살고 있지만 그날따라 갑자기 어머니의 요리가 그리워졌다.

(중략)뭐니뭐니해도 어머니의 전매특허 메뉴는 홍어회다. 용인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시집와 처음 우리 집 부엌에 들어왔다가 항아리 속의 홍어를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뭐 하려고 이토록 상한 생선을 신주 모시듯 담아 놓았느냐 싶었던 것이다.

(중략)신 김치와 홍어회 그리고 돼지 편육, 이 메뉴라면 동향인 김인 국수님도 아마 군침이 돌 것이다. 언제 여유 있는 날, 어머님과 김 국수님을 모시고 어디 소문난 홍어집이라도 한번 찾아가긴 가야 할 텐데.'


그러나 그 어머니는 2003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다섯 달 뒤인 11월 25일, 조훈현은 목포대학교에서 체육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머니 무덤을 찾아간 그는 부인이 눈물을 훔치며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니, 제가 박사학위를 받게 됐습니다. 어머니께 바칠게요" 하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 책은 마지막을 이렇게 끝맺으며 그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픔을 절실하게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갑자기 조훈현이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선가 샛노란 날개를 지닌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어머니예요!"
정미화가 불현듯 외쳤다. 어머니가 임종한 이후에 조씨 일가 사람들 상당수가 노란 나비를 봤다고 했다. 그것도 도저히 나비가 있을 만한 공간이 아닌 곳에서, 도저히 나비가 생존하기 힘든 계절에 똑같이 생긴 나비를 여러 명이 보았다는 것이다.
"불가에서 나비는 빠른 윤회를 상징한대요. 보세요. 어머니가 무척 홀가분하게 날아다니시잖아요?"
조훈현은 환하게 웃으며 나비를 올려다보았다. 나비는 오랫동안 그의 머리 위에서 너울너울 날갯짓하며 꿈결 같은 춤을 추고 있었다.'

이렇게 '어머니 생각'으로 마무리된 이 책에서 조훈현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후배기사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우리를 기다린다."

이제 대한의 바둑 실력은 일본과 정반대가 되었다. 일본도 한 수 아래요 중국도 한 수 아래다. 조훈현은 <戰神 조훈현>에서 '한류와 공한증(恐韓症)'을 바둑과 축구를 빌려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한국 축구와 바둑은 왜 중국에게 강한가? 역사적으로 우리는 늘 중국을 사대(事大)하는 입장이었지만, 결코 중화의 변두리 국가로 기죽어 지내지는 않았다. 문화의 중심국이기에 섬기긴 했어도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완강한 저항을 하지 않았던가?

수(隨)나라 양제가 중원을 차지하고 마지막 과업으로 고구려를 정벌하려다 큰코 다쳤던 내력이며, 당(唐)태종이 10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굴복시키려고 했다가 제대로 한반도에 발을 내딛지도 못하고 물러났던 역사적 사건들을 상기해 보자.

(중략)타이틀을 쥐고 있다고 최강국은 아니다. 어쩌면 중국은 바둑의 모든 면에서 우리를 저만큼 추월했다고 볼 수도 있다(바둑 리그, 바둑 인구를 보라). 바둑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마땅히 중국 바둑이 성장해야 한다. 우리 기사들도 벌써 중국리그에 참여하고 있고 앞으로도 바둑의 국경은 급속히 허물어지리라고 본다.

'공한증', 어쨌든 우리에겐 그다지 싫지 않은 단어이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아도 우리는 특유의 '매운맛'으로 그들에게 계속 긴장감을 주어야 한다.'


추석을 앞둔 이 가을, 바둑 마니아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한번 돌아보고 싶은, 앞으로 살아갈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戰神 조훈현>은 '인생의 진리'라는 화두를 풀어내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넉넉하고 진지하게 알려줄 것이다.

전신(戰神) 조훈현 - 나는 바둑을 상상한다

조훈현. 김종서 지음, 청년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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