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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는 총 네 편의 무용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하얀배꼽1'이라는 소제목으로 묶인 두 작품 <여자, 다리를 벌린다>와 < Mon. 7. 14 >가 16일 관객들과 만났다.

공연이 끝난 후 <여자, 다리를 벌린다>의 예라영 안무가(MC YEH 무용단 단장)와 < Mon. 7. 14 >의 김윤순 안무가(크레용 댄스 프로젝트)를 차례로 만났다. 두 안무가 모두 공연에 직접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발레(좀 더 정확히 말하면 컨템포러리 발레)와 현대무용이라는 다른 분야의 춤을 공부하고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것은 "무용을 이해하려고 들지 말고 그저 느끼라"는 것이었다.

#1. 여자, 다리를 벌린다

▲ <여자, 다리를 벌린다>는 제6회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이기도 하다.
ⓒ 예라영
여성들이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 중의 하나가 '다리를 오므리라'는 주문일 것이다. 무심결에 벌어진 다리를 화들짝 놀라며 오므려본 경험이 있는 여성들에게는 <여자, 다리를 벌린다>는 제목은 불온하기 짝이 없으면서 동시에 매력적인 문장이다.

붉은 옷을 입은 네 명의 여성이 움직인다. 그들의 움직임은 부드럽지만 연약하지 않고, 강하지만 공격적이지 않다. 사과를 던지거나 굴리면서 그들은 숨가쁘게 움직인다.

- 어떠한 의도로 기획하게 되었나?
"요즘 여자들은 자유롭다. 사회에서도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사랑하면 섹스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혼전 섹스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다.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여성들의 삶을 모티브로 삼았다."

- '여자, 다리를 벌린다'라는 제목이 참 흥미롭다.
"발레리나들은 언제나 다리를 벌린다. 그게 발레의 기본 동작인 턴아웃(turn-out)이다. 앉을 때도 유연한 동작을 위해 다리를 벌리고 앉는다. 실제로도 그게 더 편하다. 그런데 막상 연습실 밖을 나오면 다리를 벌리고 앉을 수 없다.

발레는 여자에게 금지된 동작을 허용한다. 하지만 클래식 발레의 여성은 공주 아니면 요정이다. 움직임도 아주 부드럽고 여성적이다. 분위기나 중력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면 발레가 자유롭게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이처럼 모순되는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 발레 작품이면서도 기존의 발레와는 다른 독특한 맛이 난다.
"나는 발레를 만들 때 클래식 발레의 기본을 매우 존중한다. 그러면서도 현대무용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하려고 노력한다. 발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3자가 봤을 때 생기는 라인의 아름다움이다. 팔이 더 길어보이고 다리가 더 가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무용은 어떤 라인보다는 내면의 에너지를 많이 강조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내 속의 움직임들을 끌어내려고 많이 노력했다. 동작 또한 되도록 일상에서 가져오려고 했다. 무의미한 팔선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움직임들을 춤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장르의 구분이 없어지는 추세라 굳이 장르를 규정하고 싶지 않지만 따지자면 컨템포러리 발레라고 할 수 있다."

▲ <여자, 다리를 벌린다>는 소멸되지 않은 여성의 금기와 이에 대한 반항을 표현한다.
ⓒ 예라영
- 그 움직임들이 시종일관 빠르게, 그리고 쉴새없이 진행되는데.
"움직임의 미학을 전반에 깔고자 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내가 생각해낸 동작들로 채웠기 때문에 그냥 흘리는 부분이 없다.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슷한 부분을 반복하면서 관객들이 익숙해지고 끊임없는 움직임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할 수 있다."

- 무용은 흔히 어렵다고들 한다. 무용수는 이런저런 동작들을 하는데 관객은 난감해 하는 식이다.
"무용을 연극처럼 보려고 해서 그렇다. 나도 무용을 하지만 그 움직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저 작품을 보고 났을 때 '좋다'는 느낌이 들면 좋은 거다. 무용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해하려 들면 어려운 게 당연하다."

- 앞으로 만들고 싶은 무용은?
"현재 발레 안무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현대무용을 하면서도 발레를 놓지 않는 것은 발레를 사랑하고 내가 발레의 움직임을 몸에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갈 수 있는 클래식 발레 공연은 한정돼 있다.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 즐길 수 있는 춤을 만들고 싶다."

#2. 7월 14일 월요일,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제 23회 국제현대무용제 공연작이기도 한 는 '풍부한 상상력과 감정을 바탕으로 한 실험적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 김윤순
7월 14일 월요일. 여자는 곱슬곱슬한 머리 위에 빨간 풍선을 달고 춤을 춘다. 얼굴에 메모지를 잔뜩 붙였다가 난폭하게 떼버리거나 풍선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는 터뜨려버린다. 그는 기이한 의자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의자 속으로 들어가 퐁퐁 뛰어다니더니 빠져나와버린다. 이는 < Mon. 7. 14 >의 내용이다.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 정말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관객이 상상하는 모든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관객이 느끼기 나름이다. 실연당했거나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관객이 스토리를 상상하면 된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스토리는 있다. 내 이야기 속에서는 메모지는 지나간 사랑의 흔적들을 의미한다. 왜 누군가를 사랑하면 뭐가 씌인다고 하지 않나. 얼굴을 덮고 있는 메모지를 떼버리는 것은 사랑을 뿌리치는 행위다.

공연에 쓰이는 마이크 역시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남성의 성기일 수도 있고 내가 괴로움을 토해내는 도구일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한 남자일 수도 있다.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 무용에 관한 가장 큰 편견은 어렵다는 것이다.
"동작 하나 하나의 목적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걸 왜 하느냐가 아니라 저건 어떤 느낌인가로 접근해야 한다. 슬프구나, 즐겁구나, 웃기네…. 그 느낌 하나면 된다."

- 다른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무용 역시 늘 재정적인 어려움을 끌어안고 있는 분야 아닌가?
"그래도 무용은 학원이나 학교에서 레슨을 할 수 있으니까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춤추는 것 따로, 돈 버는 것 따로라는 것인데 현대무용은 국립무용단도 없어 더 힘들다. 나 역시 이대건씨와 함께 '크레용 댄스 프로젝트'라는 팀을 만들고 다양한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은 늘 있다. 그러나 돈 보고 하는 일들이 아니지 않은가?"

-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상상의 폭이 줄어들지 않는 무용가였으면 좋겠다. 음악 하나를 들어도 춤을 떠올릴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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