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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을 때였다. 우연히 지금 필자가 살고 있는 후쿠오카에서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 생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그분께 기필코 이 일을 해낼 것이라는 약속을 했다. 앞으로의 내 일생을 걸고서라도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은 말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구체적으로 밝혀내기로 결심했다.

만주의 간도성 명동촌에서 출생한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을 나와, 동경에 있는 릿교(立敎)대학을 거쳐 교토의 도지사(同志社)대학 영문학과에 들어간다. 여기서 고종사촌 송몽규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검거되자 윤동주 시인도 함께 검거되었다. 윤동주 시인의 경우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보다 일본어가 아닌 순우리말로 시를 썼다는 것이 더 큰 죄가 되었을 것이다. 재판 결과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감옥에 유치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매일 투여받은 이름모를 주사(생체실험을 한 것으로 여겨짐)로 인해 1945년 2월 16일 그렇게도 바라던 광복을 몇 달 앞두고 죽음을 맞이한다.(중략)

그 시인이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고, 이 책이 탄생한 이곳 후쿠오카에서 돌아가셨다. 이 사실은 내게 예사롭지 않은 감동과 아픔을 불러일으켰다.’ (<아나타는 한국인> ‘에필로그’에서)


▲ 비교언어학자 시미즈 기요시, 박명미 교수가 함께 쓴 <아나타는 한국인> 표지
ⓒ 정신세계사
"일본어는 한국어와 같이 한어(韓語)를 어머니로 해서 태어난 말"이라는 근거를 제시한 책이 나왔다. <아나타는 한국인>. ‘아나타’를 번역하면 '당신'이므로 결국 제목은 <당신은 한국인>인데, 여기서 말하는 ‘당신’은 일본인을 가리키고 있다.

저자는 비교언어학자인 일본의 시미즈 기요시(淸水紀佳)씨와 한국인 박명미(朴明美)씨. 시미즈 기요시 박사는 만주 출생으로 도쿄대학 대학원 재학중 아프리카에 통역원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비교언어연구를 하게 됐다. 나이지리아 이바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아프리카 연구소에 18년간 재직하며 독일어로 아프리카 언어학을 가르쳤다. 그때 아프리카와 유럽의 언어를 상세히 체험하고 관찰한 그는 비교언어학자로서 한 가지 의문에 부딪혔다.

'고대 이집트 언어는 현대 아프리카 언어와 같은 계통이며, 또한 영어는 독일어의 자매어로서 게르만 언어의 하나다. 그렇다면 일본어는?’

그는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한 작업이 얼마 진행되지 않아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어는 바로 한국어 그 자체다!’

그렇게 깨달은 그는 ‘왜 이러한 사실이 진작 연구되지 않았을까?’하고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상당한 연구를 끝낸 뒤에 느낀 감상을 말한다.

'이러한 언어의 운명을 밝히는 것도 그 시기와 주인이 따로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가 그 시기를 만들고 그 주인이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는지도…’

공동저자인 박명미씨는 14년 전, 단돈 10만엔을 들고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에 도착하여 차와 식사를 나르는 일을 하다가 한국어 개인과외를 하면서 공부를 했다. 구마모토대학 문학부 언어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재학중에는 다마나(玉名)여고 한국어 강사를 했다. 현재는 시모노세키시립대학 한국어 강사.

시미즈 기요시 박사와 박명미씨는 1년 동안의 연구 성과와 한어 비교언어학의 시작을 알리는 글을 2003년 9월에 한글학회에서 발표하여 학계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연구가 계속 이어져 또 1년이 흘렀고, 마침내 한국과 일본의 언어 관계에 대한 치밀한 보고서 한 권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일본인은 한국인’에서는 반도한어와 열도한어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으며, 일본의 야요이 시대와 역사시대를 개략적으로 훑어나가면서 한어비교언어학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말하고 있다. ‘반도한어와 열도한어의 개념’을 요약해 보면 이렇다.

기원전 4세기경부터 일본 열도로 이주하기 시작한 한민족은 당연히 언어도 함께 가지고 간다. 이 언어를 한어(韓語)라 부르며, 현대 한국어와 구분한다. 이때 한민족이 열도에 가지고 들어간 한어를 열도한어라 부르고, 한반도의 한어를 반도한어라 부르는 것이다. 영어와 대륙의 네덜란드어는 방언에 따라서 지금도 매우 비슷하며 영어와는 방언연쇄를 형성하는 것처럼, 한민족의 열도 이주가 시작돤 때부터 500~600년 동안은 통역 없이도 서로 말이 통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부 ‘언어의 유전자를 밝히다’에서는 ‘한민족과 한어의 범위’ ‘현대 일본어에 살아 있는 한어의 음운 체계’ ‘비교음운론’ ‘비교형태론’ 등 비교언어학의 이론적 기초체계를 설명해 놓았다.

3부 ‘한어의 세계’는 이 책의 클라이맥스다. 2부에서 설명해 놓은 언어학적인 이론을 실제로 증명해 놓았다. 반도한어와 열도한어 1300여 단어(대응하는 열도한어는 1500여 단어)를 ‘인간세계, 자연세계, 시간과 공간’으로 나누어 그 어근을 비교했다. 가령, ‘자연세계’에서 ‘호랑이’라는 말에 관해 연구해 놓은 것을 요약하면 이렇다.

열도에서는 ‘호랑이’를 ‘虎tor-a'라고 한다. 시미즈 기요시와 박명미 두 학자는 ‘돌아다니다’라는 말에서 ‘돌dor-'이라는 접두사를 발견했다. 이것은 ’호tor-a'의 ‘tor'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어원이었다. 열도에서는 술주정뱅이를 ‘とらtor-a'라고 부른다. 또한 건달이나 불효자들을 가리켜 ’토라 자식‘이라고 하며 도둑고양이를 ’토라 네코‘라고 부른다.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한국에서 ‘막 돼먹은 사람’이나 ‘정신나간 사람’을 ‘또라이’라는 속어로 부르고 있으니, 이 말은 ‘돌아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건너갔던 ‘돌아다니다’의 ‘돌’이 ‘토라(또라)’가 되어 다시 역수입(?)돼 온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까지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 언어의 비교는 백지 상태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어비교언어학의 어휘와 문법 모두를 포함하고 있으니, 동아시아에서의 비교언어학의 시작을 알리는 책인 셈이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며 ‘한일간 언어학적 관계의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시미즈 기요시 박사. ‘일본어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한어(韓語)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말’이라는 그의 주장은, ‘고구려, 부여 등의 언어와 일본어 오키나와와 류큐어를 포함하는 한어 비교언어학의 탄생을 선언하고 있다.

박명미 교수가 연구 동반자인 시미즈 박사에게 “하나 더하기 하나는 얼마예요?” 하고 물으면 “무엇과 무엇을 더하는 거냐? 물 한 방울씩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아니면 빵 하나씩을 더하는 것인가?” 하고 시미즈 박사는 되물었다고 한다. 이러한 치밀함은 이 책의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어의 유전자를 새롭게 밝혀낸 두 학자의 노력은 참으로 치밀하다.

앞으로 이 책의 성과는 학계에서 어떻게 인정받을 것인가? 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받는다면 세계의 언어 지도는 다시 그려져야 할 것이고, 한일 양국의 언어사전 또한 새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한일 두 나라의 상반된 고대사에 대한 논쟁을 불식시키는 데도 도움을 주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아나타는 한국인 - 겨레 밝히는 책들 19

시미즈 기요시.박명미 지음, 정신세계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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