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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추석은 예초기(풀 베는 기계) 소리에서 시작된다. 이른 아침부터 이곳 산골마을에도 예초기 소리가 요란하다. 추석이 가까워온 모양이다. 오늘은 추석을 한 주 앞둔 데다가 날씨조차 좋아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초가 한창일 게다.
나도 아우들과 함께 어제 새벽같이 고향 선산에 가서 꼬박 비를 맞으며 벌초한 후 돌아왔다. 벌초 객들로 고속도로가 엄청 막혔다. 해마다 겪는 연례행사로 길에서 고생할 줄 뻔히 알면서도 때를 놓칠 수 없기에 다녀왔다.
비를 흠뻑 맞으면서 봄여름 내내 자란 풀로 쑥대밭처럼 엉클어진 조상 산소의 풀을 말끔히 깎아주자 비로소 조상에 대한 최소한의 자손 노릇을 하였다는 흐뭇함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제 우리나라의 이런 묘지 문화를 다시 심각하게 재고하여 일대 개혁해야 할 시점에 이르지 않나 싶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 간다'는 말처럼 죽은 후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돌려보내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이제까지 이런 관습이 죽 내려왔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사람이 죽으면 땅에다 매장하는 묘지 문화였다.
그런데 이 매장 문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묘지는 자꾸 늘어나는데 땅은 늘어나지 않는 데다 죽은 사람도 평등하지 않고 사후에도 그 묘지로 차별받는다는 점이다. 후손들이 그 묘지의 호화로움과 장식물(비석 비문 등)로 은연중에 집안을 과시하거나 그것으로 행세하는 풍토가 없어지지 않는 한 묘지문화의 개혁을 백 번 부르짖어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묘지는 약 2천만 기로, 그 넓이는 서울시의 1.6배인 약 3억 평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해마다 묘지 20여 만기가 늘어나서 전국 공장 부지의 세 배가 넘는 토지가 묘지로 바뀐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10년 후에는 집단묘지 공급이 바닥이 나고 50년 후에는 이 땅 어디에도 묘지를 쓸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차창으로 주변을 살펴보면 야트막한 남향받이 야산들은 거의 묘지가 차지하고 있다. 도시 가까운 곳의 공원묘지도 가 보면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산 아래에서 거의 꼭대기까지 묘지가 들어서서 온통 묘지로 산을 덮고 있다. 폭우라도 내려 산사태가 나면 축대가 부실한 묘지들이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려 허물어져서 시신을 찾지 못해 소동을 벌이는 사태가 벌어지기 일쑤다.
그나마 공원묘지 사용료도 엄청나게 비싸서 어떤 이는 멀쩡한 밭을 사서 가족 묘지로 쓰는 일이 더 경제적이라고 편법으로 사들이고 있다. 이렇게 내버려두다가는 밭조차 묘지화해 죽은 자를 위하여 산 자들의 삶의 터전이 야금야금 잠식당할 것이다.
지도층의 호화분묘
해외를 다니면서 각 나라의 산을 둘러봐도 우리나라와 같이 묘지로 뒤덮인 나라가 없다. 파리에는 도심에 공동묘지가 있는데 마치 조각공원 같았고, 이웃 일본은 마을 곳곳이나 집안에 납골당이 세워져 있었다. 또 사찰 뒤 울창한 숲에다 화장한 뼛가루를 뿌리기도 한다고 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공원묘원에서 본 바, 그 넓은 나라에서도 1기당 묘지 면적이 한두 평 정도로 매우 좁은 데다가 모두 평장으로 쓰고 묘비도 간단했다.
고인의 이름과 출생연도와 죽은 해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이(주로 가족으로, 부인 또는 남편 자식 또는 부모)만 새겼을 뿐이다. 마침 그곳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을 곁에서 지켜봤더니 가족 중심으로 아주 간소했다.
프랑스에서는 드골 대통령 무덤의 묘비마저도 본인 이름과 출생, 사망 연도만 새겼다고 하니 그들의 평등사상과 인류의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은 정말 선진국답다.
히말라야의 티베트계 주민이나 인도 봄베이를 중심으로 사는 파르시족은 조장(鳥葬)을 한다는데 새가 시체를 파먹게 하여 처리케 하는 장례문화다.
사람이 사는 동안 무수한 동물들을 잡아먹었으니 다시 그들의 먹이로 되돌려주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깊은 종교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그들의 풍습을 야만이라고 폄하할 게 아니라 자연 회귀사상으로 곰곰이 음미해 볼 일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이 내린 유교문화, 그 중 조상 숭배에 대한 절대적인 사상은 아무나 손대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그 폐단을 알면서도 과감히 고치지 못하는 것은, 자칫하면 천하에 불효막심한 자손으로 매도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우고면, 이리저리 눈치 보다가 재래의 문화를 답습하고 만다.
이런 오래된 인습의 묘지문화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서 개혁해야만 백성들이 따라갈 텐데 그들이 더 호화분묘를 꾸며서 개혁은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치게 하고 있다.
역대 여러 대통령들이 대통령이 된 후 조상 산소를 호화롭게(심지어는 어떤 이는 헬기장까지) 꾸미거나, 조상 산소를 잘 써야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풍수지리설 때문인지 후보 이전에 미리 호화분묘를 만드는 판이었으니 어찌 묘지문화가 개혁될 수 있었겠는가?
매장 묘지 풍습 바꿔야
몇 해 전, 항일유적 답사 길에 중국 베이징에서 한 독립 운동가를 만났다. 그때 93세 고령이신 그 어른은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셨다.
지금의 매장 묘지 풍습을 바꿔야 한다. 오늘날 매장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모택동 주석이나 김일성 주석도 죽은 후에 화장하지 않고 안전관에 모셔 두고 있는데 인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몰라도 앞으로 100년이나 1000년이 지난 다음에는 분명히 잘못된 일로 판명될 것이다. 한 줌의 재로 날려버린 주은래, 등소평 주석이야말로 얼마나 멋진 선각자인가.
호화 분묘를 만들고 비석을 세우는 일은 다 소용없는 일이다. 후손을 위하여 화장하는 게 옳다. 나는 이미 부모와 처를 모두 화장했고 나도 화장하라고 일렀다.
어제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우선 우리 집부터 묘지문화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천을 하게 될지 섣불리 장담할 수는 없다.
나 혼자의 생각만으로 조상의 묘지를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이 혁명보다 더 어렵다고 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묘지문화의 개혁에 공감할 줄 안다. 이럴 때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여 국토 백년대계를 위한 새로운 묘지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바른 생각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도자라면 바른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