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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의 <잃어버린 고향 풍경>을 유쾌하게 읽었다. 이 제목은 <오마이뉴스>의 '사는이야기' 공간에 자주 들어가 본 독자라면 낯익을 것이다.

'사는 이야기'에 연재되고 있는 수필 가운데서 똑같은 제목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연재수필을 쓰는 기자가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저자는 그동안 연재했던 글들을 제목 그대로 묶어 펴낸 것이다. 그래서 <오마이뉴스>를 가까이하는 네티즌들에게는 이 책의 제목이 무척 낯익을 것이다.

'라면봉지에 그려진 대파랑 달걀은 어디 있을까?'라는 제목을 보면 무슨 이야기가 나올 것인지 대강 짐작하게 해준다. 그러나 짐작한 대로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그의 이야기 꾸려가는 솜씨가 남다르기 때문에 그 맛은 참으로 각별하다.

처음 삼양라면 보았을 때의 느낌을 그는 이렇게 썼다.

▲ <잃어버린 고향 풍경> 표지
ⓒ 하이미디어
'겉봉에는 대파가 숭숭 썰려 있고 한우 한 마리도 그려져 있었다. 그뿐이던가. 노란 생달걀 하나가 떡하니 있다. 뽀글뽀글 면발과 라면 국물, 그리고 위에 얹어 있던 쇠고기, 달걀, 대파는 어린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군침이 돌았다.
"워메, 맛있겄는 거. 언제 쩌거 한번 묵어 본다냐?"'


남도 사투리가 실감나게 구수하다. 한 번도 못 먹어본 라면을 먹고 싶던 어릴 적 저자는 성호랑 병주에게서 "허벌나게 맛있다"고 전해 들었던 모양이다. 마침내 엄마를 조른다.

다행히 "언제 놉(인부) 얻을 때 끓여주마" 하는 약속은 받았지만, 그새 라면이 달아나 버릴까봐 안심이 안 되는지, 어릴 적의 저자는 동네 입구에 있던 구판장 앞까지 달려가 라면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껑충껑충 뛰어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얼마 뒤 드디어 라면을 먹게 되는데, 라면 봉지에 그려진 대로 내용물이 들어 있지 않자 "허, 참. 이상하구먼요, 왜 쇠고기랑, 대파랑 안 보이고…" 할 뿐만 아니라 "거기다 달걀은 왜 또 없는 거지라우? 봉지에는 다 들어 있다고 사진이 있는디. 썩을 놈들 우리 것만 쏙 빼놓았는갑소" 하고 투덜거리는 것이다.

얼마나 순박한가. 저자의 어릴 적 순박한 마음이 그대로 우러나온다. 이런 순박함은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47편 어느 글에나 나온다.

자장 소스가 먼저 나오자 면과 따로 먹는 것인 줄 알고 짜장 소스를 후루룩 먹어치운 육남이 이야기, 콘돔으로 풍선 불어 축구를 하던 이야기, 배가 고파서 떨어진 떫은 풋감도 우려 먹던 이야기, 배터리로 물고기 잡다 감전돼 죽을 뻔한 이야기, 백열등에 필름 열고 비추어 보며 "왜 안 찍혔지?" 하고 고갤 갸우뚱하는 이야기… 이런 시골 아이들의 순박한 이야기는 이 책의 도처에, 구수하면서도 맑게, 군침 돌게 깔려 있다. 청국장처럼 진하면서도, 샘물처럼 맑다.

그의 글에 들어가는 이야기의 시간과 공간 폭은 그리 넓지 않다. 단 몇 줄로 끝내버려도 될 것 같은 이야기를, 그러나 그는 결코 그대로 내버려 두는 법이 없다. 구수한 입담으로 실컷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저자 스스로 유쾌한 마음으로 쓰는 모양이다. 그러니 글이 당연히 유쾌해지고, 그 글을 읽는 이도 유쾌한 마음이 아니 들 수 없다.

이제 저자는 그 고향을 잃어버렸다. 전남 화순군 북면 백아산 아래, '그 시절의 고향 모습'은 '바로 그 땅'에서 온 데 간 데 없어져 버렸다. 저자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사연으로 어릴 적에 뛰어 놀던 고향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나 역시 그렇다. 내 고향 춘천에 돌아가도, <잃어버린 고향 풍경>의 저자와 비슷하게 뛰어놀던 그 시절의 고향 모습을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 법원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들어서 버렸다.

그러나 다행히, 그의 글을 읽은 네티즌들은 한결같이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은 기분"이라고들 말한다.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 흐뭇하다.

현재 <오마이뉴스>와 <여행 스케치>에 '잃어버린 고향 풍경'과 '동무들의 악다구니'를 각각 연재하고 있는 저자는, 책 펴내는 말미에서 첫 수필집을 펴낸 뒤의 소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철부지 아버지 어머니가 어릴 적 놀고 자랐던 교본으로 삼도록 하렵니다. 귀향하여 지은 우리집 도서관에 하나 꽂아두는 게 소원입니다. 애들이 심심하면 한번 들춰보게요. 지나친 욕심일까요? 앞으로 잃어버린 고향 풍경을 계속 찾겠습니다."

앞으로 그 시절의 고향 모습을 찾아낼 길은 우리에게 분명히 없다. 그러나 저자는 찾아낼 방법을 한 가지 알고 있다. 그것은 '김규환'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글짓기 마술'을 통해서다. 그 고향을 찾아내는 '글짓기 마술'을 즐기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잃어 버린 고향 풍경 1 - 김규환의 추억여행

김규환 지음, 하이미디어(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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