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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고민거리를 푸나?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고민거리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고민거리가 있겠지만 친일청산문제라든지, 국가보안법문제, 수도이전문제, 경기침체극복방안이 가장 다급하고도 큰 고민거리가 아니겠나 싶다.

어쩌면 그런 고민거리들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밤 잠을 설칠지도 모른다. 머리를 싸매고 골몰히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자신의 임기 동안에 그 문제들을 해결해 보든지 밑그림을 그려 놓으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그 고민거리들을 안고 풀어나가는 방법은 따로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정부 관계자들과 일반 학자들의 연구보고서를 읽어보고 꼼꼼히 따져 물어 보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그것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여·야의 협조와 동의를 얻어야 하고, 더 나아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고 우수한 집단이 짜낸 정책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뜻이 담겨 있지 않으면 지금은 그 해결책마저도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때다.

(2) 조선시대 왕들은 어떻게 고민거리를 풀었나?

옛 조선왕조 시대에는 어떻게 했을까. 절대권력을 지니고 있던 그 당시의 왕들은 자신의 고민거리들을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까. 물론 그들의 고민거리란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결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 궁금점을 다소나마 풀어주는 책이 나왔으니 바로 김태완이 쓴 <책문>(소나무·2004)이다.

"책문은 젊고 싱싱한 넋을 가진 지식인이 시대의 부름에 대답하는 주체적 결단의 절규이다. 그것은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고, 시대의 부조리에 반항하며,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려는 시대의식의 투영이었다."(23쪽)

<책문>이란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합격한 33인이 마지막으로 치렀던 시험으로서, 왕이 당대 현안 문제를 써서 문제로 내면 응시자들은 그에 대한 대책문을 써서 왕에게 바쳤던 시험제도다. 물론 책문과 대책문에는 당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지리뿐만 아니라 철학과 심리·자연과학과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부분을 다루게 돼 있다.

그런데 김태완이 쓴 <책문>은 조선시대 문헌으로 남아 있는 열 세 편의 책문과 그에 따른 대책문 열 다섯 편을 묶어서 우리말로 풀어 옮긴 것인데 여러 가지 흥미 있는 해설도 곁들여 주고 있어서 읽을 거리가 쏠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3) 책문과 대책문 엿보기

"고대의 교육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그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라.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어떠하며, 만일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말해보라. 더불어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과 인재를 올바로 양성하는 방법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혀 보라."(278쪽)

이는 1558년 명종 13년 생원회시 때 내린 책문이다.

이에 대해 조종도(1537-1597)는 교육의 흥망은 오로지 임금이 몸소 터득한 것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데서 이뤄질 수 있음을 밝히고, 요순 시대와 주나라·한나라·송나라의 교육제도를 차례로 예로 들어 설명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조종도가 무엇보다도 명종의 교육정책을 꼬집고자 했던 것은 당대의 과거제도였던 바 과거제도로만 모두 인재를 뽑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과거제도의 요령만 익힐 뿐 덕을 닦고 학문을 수양하는 풍조는 이미 사라져 버렸음을 한탄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거제도의 폐단을 개탄하면서, 명종이 내린 책문에 대해 이런 대책문을 적고 있는 것이다.

"재주와 기량이 적당한지 그렇지 않은지, 인물이 현명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경쟁시켜서, 문맥이 대충 정해진 법식에 맞으면 등용하고는 의심하지 않으니, 이것이 과연 예의를 갖추고 서로 겸손하고 양보하는 도리를 가르친 것이란 말입니까? 학교가 쇠퇴해 진작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286쪽)

그 외에도 이 <책문> 속에는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라는 광해군의 책문에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목숨을 건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임숙영의 대책문이라든지, "정벌이냐 화친이냐"라는 선조의 책문에 "정벌은 힘, 화친은 형세에 달려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박광전의 대책문 등 다양한 책문과 대책문을 엿볼 수 있다.

(4) <책문>을 읽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첫 머리에서 말했듯이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고민거리가 분명 있다. 친일청산문제라든지, 국가보안법문제, 수도이전문제, 경기침체극복방안 등이 그것이다. 그게 이른바 현대판 책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대판 책문에 대해 이미 정부 관료나 유명한 학자들은 나름대로 대책문을 대통령에게 내 놓았다. 그것도 조목조목 따져 묻고 먼 앞까지 내다보는 틀까지 세운 책문들이다. 다만 그런 책문들이 여·야 정치권과 국민 모두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 그리고 여·야 정치권에 달려 있다. 대통령으로서 나라 안팎의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대책문을 받아 볼 것인데 그런 대책문을 두고서 어떤 방향타를 가늠할지는 대통령 자신과 여·야 정치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어 대책을 결정하느냐에 따라 국민 모두가 잘 살 수 있고, 국민 모두가 또 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문>은 우리나라의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 그리고 여·야 정치권 모두 한 번은 꼭 읽어 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그래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두 머리를 싸매고 더 멀리 내다보며 더 깊이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지음, 현자의마을(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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