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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의 '노란배꼽' <젊은 어멍 먹은 늙은 딸년 얘기>(이하 <젊은 어멍…>/작가 경민선·연출 최여림)가 21일 관객들과 만났다.

▲ 어멍(최희진)과 딸년(이미라)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 멀쩡한 소풍
<젊은 어멍…>에는 독특한 두 여자, 젊고 고운 어멍과 늙고 허리굽은 딸년이 등장한다. 게다가 극이 진행될수록 어멍은 노쇠해지고 딸년은 젊어진다.

이 가족의 남자들 운명은 더욱 기상천외한데, 어멍의 아홉 아들은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병에 걸린 아비에게 잡아먹히고는 똥으로 나와 삭고 있다. 또한 아들 잡아먹은 아비는 아파트, 아스팔트 할 것 없이 먹어치우다가 배가 터져 죽었다. 어멍은 이 아비의 내장을 씻어 말끔하게 포를 떴다고 한다.

어멍과 딸년이 그 아비와 (똥이 되어버린) 아들들을 보러 길을 떠나는데, 어멍은 도중에 딸년을 위해 눈도 바꿔주고 그의 굽은 허리도 펴준다. 말 그대로 '젊은 어멍 먹'고 젊어지는 딸년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지고 만다. 나 역시 젊은 어멍을 먹고 자란 늙은 딸년 아닌가?

오래 전 먼지가 두껍게 덮인 어머니의 사진첩을 본 일이 있었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꼭 내 나이쯤 되었을까? 단정한 땡땡이 무늬 원피스에 양산을 받쳐들고 살포시 서 있다, 어색하지만 밝은 미소를 물고서. 그때 어머니는 눈가의 주름, 가족들에 대한 근심 대신 꿈과 설레임을 안고 있었다.

그 무렵 어머니도 나처럼 꿈이 많았겠지? 미래가 두렵기도 했을까? 어떤 가수를 좋아하고 어떤 책을 읽었을까?

물음들이 꼬리를 물고 튀어나왔지만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다. 내 나이의 어머니는 낯설고도 신기했으므로. 나는 어머니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로 나는 거라고 착각하는 수많은 철부지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꿈많던 어머니에게 주름과 근심을 안겨준 것은 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미안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꿈과 설레임으로 가득찬 눈빛 앞에서 나는 죄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이야기를 진행하는 놀이꾼들 산너머산(이상영)과 강건너강(김지영)은 여러가지 연희를 펼치면서 흥을 돋군다.
ⓒ 멀쩡한 소풍
그러나 극 속의 딸년은 현실의 나처럼 개의치 않는(척 한)다. 어머니에게 왜 늙어버렸느냐고 의뭉스레 묻고, 어머니가 외로워서 사람 많은 데서 똥을 누겠다고 하자("사람 많은 데서 외롭지 않게 쌀란다! 뿅뿅 뿌직뿌직", 이 대사가 그렇게 애절하게 들렸다) 부끄럽다고 요란을 떤다.

그 딸도 속내는 그렇지 않았으리라. 자신에게 또렷하게 보이는 눈을 주고, 자신의 허리를 펴준 어멍의 마음을 알면서도 쑥쓰러워 혹은 미안해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 뿐이리라.

속으로 미안하고 고맙다고 중얼거리는 사이 어멍은 속세의 옷을 훌훌 벗고 신나게 춤을 추며 연기처럼 흘러간다. 이야기는 흥겹게 시작한 것처럼 흥겹게 끝난다.

전통연희 마당극을 표방한 작품답게 <젊은 어멍…>은 버나, 살판, 지전춤 등의 전통연희를 다양하게 선보인다. 버나와 살판은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놀이에 속하는 전통연희로 각각 대접돌리기, 땅짚고 제비넘기를 의미한다.

지전춤은 무굿에서 행해진 의식무로서 억울한 넋들의 천도와 후생복덕을 기원하는 춤이다. 이름과 설명만 들어선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은 누구나 어디선가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놀이들이다. 종종 미숙함이 눈에 띄지만 '잘한다' '얼씨구' 추켜주면 배우도, 관객도 더 신이 난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악기와 대사가 함께 나오는 부분에서 악기 소리에 묻혀 대사가 잘 전달되지 않았던 점이다. 또한 전통연희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사전 몸풀기가 없었던 탓인지 관객과 배우가 충분히 흥을 주고받지는 못했던 듯싶다.

이런 부분들은 연출자에게 이야기를 해두었으니 아마 다음 공연부터는 고쳐지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관객들은 안심하고 마당극 <젊은 어멍…> 즐기러 가시라. 특히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첩을 넘기면서 애틋해져 본 적이 있는 당신이라면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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