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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고운 어멍과 늙고 허리 굽은 딸년의 이야기, <젊은 어멍 늙은 딸년 얘기>(작가 경민선·연출 최여림)는 익숙한가 하면 낯설고, 우스운가 하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지는 마당극이다. 버나(대접 돌리기), 살판(땅 짚고 재주넘기), 지전춤 등의 전통 연희가 재담과 맛깔스럽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관객들의 웃음이 툭툭 벙그러진다.

우리는 모두 젊은 어멍의 젊음을 먹고 자란 딸년들(혹은 아들놈들)인 탓에 한 시간동안 웃고 나오면서도 살짝 눈물을 훔치게 하는 <젊은 어멍…>의 젊은 연출자 최여림(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아동청소년극 전공 전문사 과정)씨를 만났다.

그는 극 중간 중간에 이어진 실수들, 관객을 확실히 끌어들이지 못한 거리감 등에 대해 아쉬워하는 한편 연출자로서의 자부심과 꿈도 분명히 드러내었다.

▲ <젊은 어멍 먹은 늙은 딸년 얘기>의 연출자 최여림씨
ⓒ 최여림
- 젠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서는 첫 공연을 했는데 어떤가? 만족스러운가?
"작년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을 하면서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캐스팅이 전체적으로 바뀌었고 소소한 줄거리 변화도 있었다. 첫 무대라 그런지 실수가 있어서 아쉬웠다. 악의 리듬과 배우의 호흡이 맞추어가며 음량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러한 밀고 당김이 잘 되지 않은 것 같다."

- 전통 연희 마당극은 텔레비전이나 영화, 혹은 길거리에서 한두 번쯤은 본 경험이 있지만 사실은 잘 모른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설기도 하다. 이야기 전개가 난데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어멍 귀에서 피가 나는 것 같은 사건은 의미를 종잡을 수 없었다.
"우선은 그저 즐기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매 순간 논리적으로 따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나중에 보면 하나의 큰 틀을 이루어낸다.

꼭두각시놀음이나 탈춤과 같은 연희극을 보면 그런 '난데없는' 부분들이 많다. 갑자기 이무기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솔방울 가지에 맞아죽는 남자 이야기도 있다. 무슨 이야긴가를 늘어놓고는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는 식이다. 그게 난데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갑자기 아들과 아버지가 죽어버리는 것도 그렇다. 우리 현대사만 해도 난데없는 죽음들이 얼마나 많았나. 80년 광주도 그렇고, 얼마 전 대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군대에서도 해명되지 않은 죽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아들과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이 나라가 이래' 하는 생각을 한번쯤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워낙 우리네 삶 자체가 난데없지 않나. 또 누군가에게는 어이없는 일이 또 다른 이에게는 실제일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고 삶이다. 연희극에서는 이 같은 삶의 슬픔들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 그건 난데없이 일어난 이러저러한 일이었지' 하고 싱겁게 쏟아버린다. 이처럼 단순하고 우회적인 표현은 세월과 지혜가 만들어내는 초연함, 처연함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젊은 어멍 먹은 늙은 딸년 얘기>의 한 장면
ⓒ 멀쩡한 소풍
이를테면 어떤 아비는 '우리 아들은 옛날 옛날에, 솔방울 가지에 맞아 죽었다'고 노래한다. 어떻게 죽었든 자식을 잃은 어버이의 마음은 비통한 것 아닌가? 아무리 슬퍼해도 자식은 돌아오지 않고 부모에게는 그 슬픔이 계속 이어진다. 솔방울 가지에 맞아 죽었다는 표현은 부모의 어이없는 마음 아픔과 체념의 또 다른 말일 수도 있다는 거다.

이런 식의 표출은 매우 한국적이며 그러한 삶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 전통 연희극의 맛일 수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연희는 그리 대중적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이 우리 전통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낯설게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우리의 전통 연희는 전래동화 같은 것이다. 잘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어쩔 수 없이 몸에 밴 정서가 있다. 그래서 진부하게 느끼면서도 흥겹게 즐길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젊은 어멍…>의 경우 기예와 재담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제 맛을 낸다. 단순히 기예를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재담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야기란 동시대의 정서를 담을 수밖에 없다. 동시대의 정서와 고래의 기예가 융합되어 전통연희의 현재성을 이룬다는 것에 이 작품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작품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사람들, 자연스럽게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 이 작품에서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각 역할들이 관객들과 즐겁게 놀아주기를 바랬다. 관객들이 직접 어멍이 되고 딸년이 되면서 한바탕 어우러지는 마당을 만들고 싶었다. 첫 번째 공연이라 그런지 공연 전반부에 배우들이 낯설어했던 것 같다. 관객들에게도 그렇고, 무대 자체에도 그렇고.

연희와 연기의 일종의 크로스오버 작업을 시도해본 것인데 즐거운 도전이었다. 환경이 열악하고 시간이 촉박하여 욕심만큼 다 풀어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답은 관객들에게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페스티벌에서 만난 다른 연극인들도 작품 활동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다.
"거의 연출이 자비를 털어 팀을 짜고 워크숍을 해서 공연을 한다. 대학로 기획실과 연결이 돼서 공동 출자를 하는 경우도 있고 인지도가 있는 이들은 기금을 받기도 한다. 아무리 열정과 의지가 강해도 생활을 하자면 어려운 부분이 생긴다.

ⓒ 멀쩡한 소풍
이 페스티벌도 그러한 의미에서 시작됐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뭔가 하고싶은 사람들이 모인 거다. 젠더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만들어 관객들과 만날 것인가의 고민이었다."

- 여성주의 연극인 혹은 연출인으로 명명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 혹은 거부감이 있었을 법한데. 아무래도 한계가 지워진달까, 우려할 수 있는 부분 아닌가.
"여성의 특권을 만들자는 것이 여성주의가 아니잖은가? 차별에 대한 이야기고 이를 전복시켜보자는 시도가 이번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적이기 위해 하는 고민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나 역시도 어느 날 보니까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남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이렇게 여성의 이야기가 가능하구나, 깨달았다. 그것이 여성주의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여성주의 연극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페스티벌은 기존의 여성주의적 공연의 틀에서 벗어난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우선 당장은 <젊은 어멍…> 공연이 잘 끝났으면 한다. 배우들이 덜 힘들어하고 관객들은 더 즐거워하면 좋겠다. 나중에라도 떠올릴 수 있는 공연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관객들에겐,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참신하고 진실한 가능성을 지닌 작품에도 박수를 보내주었으면 한다는 걸 부탁하고 싶다. 많이 부족하면서도 대학로의 관객들을 찾아 나선 객기(?)는 그러한 관객들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도전을 함께 지켜보고 응원해줄 수 있는 관객들이 많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꿈이라면… 새털처럼 가벼운 연극인이 될 수 있으면 한다. 연기든(그의 전공은 아동청소년 연기이다), 연출이든, 관객이든. 우리는 너무나 자의식에 휘둘리며 살고 있다. 그런 삶을 건드리는, 나의 자의식을 뛰어넘는 그런 연극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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