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입니다."
이 답을 본 광해군의 진노로 임숙영은 삭과(削科)의 위기에 처한다. 그렇지만 직언과 고언을 보장하기 위한 원로대신의 만류로 삭과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편, 왜군의 모략에 휘둘린 조정의 명령을 거부한 이순신은 삭탈관직을 당하고 죽음 직전에 이른다. 반면에 자신의 출세를 위해 곧이곧대로 조정의 명령을 따른 원균은 조선 수군의 대부분을 잃고 몰락을 자처한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지 알면서도, 올바름을 지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올바른 일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조선은 과연 500년이라는 긴 시간을 존속할 수 있었을까? 임숙영과 이순신 같은 이들이 없었다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크게 쇠약해진 조선이 그 후로도 300년을 더 지속할 수 있었을까?
사즉생의 리더십을 개인의 인성 차원으로 본다면 좁은 시각일 것이다. 시대적인 위기감으로 촉발된 언로 보장 시스템이 있었음을 임숙영 외에도 많은 선비들이 내놓은 대책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만약, 현대의 CEO격인 임금이 시대적인 위기의식을 공감하지 못하고, 감히 하늘같은 임금을 향한 발칙한 발언과 행동을 포용할 체계가 없었다면 임숙영과 이순신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재 활용의 리더십
<징비록>에 따르면 이순신은 무과에 급제하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진급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조정에 줄을 대면 진급이 빠를 수 있었지만, 이순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이 왜 왜구의 침략을 받았고 그 대책이 부족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리사욕을 채우느라 적시적소에 인재를 배치하지 못하고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지 못하는 지도자들의 탐욕과 무능력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의 예는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책문>에 나오는 많은 '대책'의 내용들은 '사람을 모든 일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간언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은 인재를 알아 볼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책문>의 선비들이 공통으로 간언하는 것은 '인재 스스로가 등용되고 싶은 분위기를 만들라'는 것이다.
즉, 인재들이 국가와 백성을 위해 죽도록 일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욕망을 갖게 하는 것이 왕의 역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인 왕이 먼저 덕과 지혜를 고루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평적 리더십
과거제도의 한 부분인 '책문'을 통해 젊은 엘리트들에게 국가경영의 대책을 구하게 한 것, 이순신이 각종 전략, 전술회의에서 직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발언하게 함으로써 이론과 실전의 결합을 꾀한 것은 수평적 리더십의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함경도 변방과 내륙인 해미읍의 수령이었던 이순신이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였던 해전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물길과 해전에 능한 장수와 병졸 그리고 어부들과의 의견 조율과 단합이 승리의 비결이었다. 일방적인 명령 하달의 방식이었다면 이뤄내기 힘든 결과였다.
이러한 모습은 'GE'의 잭 웰치를 비롯한 많은 성공한 경영인들이 경직된 기존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수렴 창구와 조직 전체의 통합을 도모할 유력한 수단의 하나로 수평적 리더십을 활용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원 선발 과정에서 회사와 관련된 주제를 놓고 대책을 내놓게 하여 신선한 아이디어와 인재 선발의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해고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옳다는 믿음으로 발언하고 실행하는 직원과 부서를 장려하고 기업의 경영층이 그것을 인용할 수 있는 언로를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조선의 리더십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적용한 것이 이런 모습들이 아닐까.
기존의 명령 전달 및 보고 체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위와 역할을 따지지 않고, 자유롭고 솔직하게 토론할 수 기회를 만들어 본다면 위기의 시대를 돌파할 중요한 무기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