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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의 날 축제 풍경
ⓒ 강구섭
'독일 통일의 날'(10.3)이 낀 10월의 첫 주말, 베를린에서는 통일의 상징 브란덴브르그 문 주변을 중심으로 3일간 통일의 날 축제가 열렸다.

통일의 날 축제라고 하지만 가끔 브란덴브르그 문 앞 대로를 통제하고 열리는 여느 축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통일의 날을 알리는 플래카드만이 이 축제의 성격을 알려주는 유일한 표시인 듯하다.

통일의 날을 맞아, 각종 행사가 열렸지만 정부에서 주관하는 독일 통일의 날 공식행사가 저녁뉴스의 첫머리를 차지하지 못할 만큼 독일사회에서 통일은 어느덧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독일 통일이 독일인들의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구동독지역의 경제는 통일 14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독일을 여전히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지난 9월 중순경 연방정부는 전년도의 동독 재건 과정을 종합, 평가하는 독일 통일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에서 연방정부는 구동독 지역의 경제가 높은 경제 성장률(평균 3.7%)과 함께 국제경쟁력을 갖춘 형태로 빠르게 회생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물론 보고서는 구동독 지역의 높은 실업률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으며, 20%에 육박하는 구동독 지역의 실업률을 낮추는 것을 가장 큰 과제라고 자평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정부 보고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통일 14년째인 올해 초반부터 가끔 독일의 주요 시사지의 표지를 장식한 기사들은 그간의 동독 재건 작업에 대해 오히려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다수 언론매체 판단에 따르면 구동독 지역은 여전히 경제적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채 구서독 지역으로부터의 재정 이전을 통해 그나마 현상 유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은 현재 구동독지역 성인 인구의 47%가 사회보장을 통해 생활하고 있다는 한 연구소의 통계에서 확인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연방정부 보고서에서도 인정했듯이 구동독 지역은 20%에 육박하는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써 구동독에서는 일자리를 찾아 서독으로 빠져나가거나 서독지역으로 몇 시간씩 출퇴근을 하는 인구가 계속 늘고 있다. 즉, 일할 능력을 갖춘 젊은 세대가 대거 빠져 나가면서 동독지역은 회생을 위한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툭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천문학적 재정이 투입된 동독재건 작업이 실패했다는 것이 동독재건 작업에 대한 독일의 일반적 평가다.

정치, 언론, 학계를 비롯한 독일의 각계, 각층은 14년간 1조2500억 유로(1유로 = 약 1400원)라는 천문학적 재정이 투자된 동독재건 작업이 왜 실패했는가 하는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 통일의 날 축제 현수막
ⓒ 강구섭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을 비롯한 여러 현지 언론들은 구동독 재건이 실패한 첫 번째 원인으로 '구동독에 투입된 막대한 재정이 경제를 재건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적절히 투자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전된 재정이 동독 경제의 자생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집행되기 보다 불필요한 부분에 투자되거나 잘못된 전망을 근거로 투입된 경우가 많았으며 상당 부분이 만성적 생활고에 허덕이던 동독인들의 소비욕구를 채우는데 사용되어졌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집집마다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었고, 물질적 빈곤에서 벗어났지만 동독의 경제는 여전히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고 결과적으로 구동독지역은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구동독 재건 과정에서 구동독인들이 인센티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 주요한 실패의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다.

동독지역 스스로 민영화 체제를 감당할 만한 능력이 안 되는 상황에서, 구동독 각 지역의 상황에 무지한 서독의 자본과 기업이 이 지역을 완전히 '접수', 각 지역에 맞는 적절한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동독 재건에 적합한 능력을 갖고 있는가'가 검증되지 않은 구서독의 인력이 동독 지역에 투입됨과 동시에 구서독의 체제를 무리하게 이식함으로써 실패가 충분히 예견되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구동독 지역의 급속한 민영화를 실시했던 원칙 자체는 옳았지만 전환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서독의 체제를 바로 적용함으로써 동독지역이 자생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구동독인이 동독지역에서 새로운 기업을 세우려면 상당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결국 일자리 창출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수가 증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14년 전의 이야기지만 거슬러 올라가 통일 직후부터 이미 구동독 재건을 위한 첫 단추가 잘못채워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 통일 후 베를린 장벽이 서 있던 자리에 표시해 놓은 장벽 경계선. 사진위의 왼쪽 건물이 브란덴브르그 문이다.
ⓒ 강구섭
통일 후 당시 콜 총리가 수년 내에 동독의 경제가 꽃을 피우고 동독이 서독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실제로는 제대로된 청사진을 갖지 않은 채 동독의 생활 수준을 급속히 올리기에 급급해 무리한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사실 동독의 마르크화를 서독의 마르크화와 일대일로 교환함으로써 동독이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것이기도 하고 콜 수상도 본인의 실수를 어느 정도 인정하기도 했다. 콜에 이어 구동독 재건의 중책을 떠맡은 슈뢰더 정부의 구동독 정책도 비판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1998년 집권을 시작한 슈뢰더 총리는 구동독 재건을 자신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선언했고 두 달에 한 번씩 각료회의를 동독지역에서 열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슈뢰더의 동독 재건 정책 또한 분명한 청사진을 갖지 못한 채 보조금을 지급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두 달에 한 번 동독에서 각료회의를 열겠다는 공언도 단 한 번 실행되고 더 이상 지켜지지 않았다. 독일 현지 언론은 이미 90년대 중반 이전부터 구동독 재건 작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은 채 방치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구동독 재건 작업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전 총리를 역임했던 헬무트 슈미트는 구동독 지역의 재건을 위해 신연방(구동독) 지역에 특별법을 선포하고 세제혜택과 함께 규제를 완화하는 등 신연방을 위한 새로운 경제정책을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경쟁의 원리를 도입, 필요를 정확히 분석하고 성과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신연방 재건사업을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구동독 지역을 근거로 하는 일부 정치인들은 그런 발상은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더 낙후한 다른 구동독 지역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렇지만 구동독에 대한 계속적인 대규모의 재정이전이 전독일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무엇보다 전체적인 사회 환경이 바뀌면서 구동독 지역 재건은 다른 국면을 맞이할 기로에 서 있는 형국이다.

현재 연방정부는 2019년까지 1500억 유로를 구동독의 재건을 위해 추가로 지원할 것을 약속했고, 덧붙여 새로운 정부의 거시정책이 구동독의 재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 통일의 날 축제가 열리고 있던 3일 오후, 베를린의 또 다른 장소에서 정부의 새로운 노동시장정책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기도 했지만 통일과 관련된 회의적인 소식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실패로 평가되고 있는 구동독 재건, 새로운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반발 등으로 그다지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지만 독일 통일의 날을 즈음해 발표된 통일 관련 여론 조사나 각종 연구들은 동서독 주민간의 마음의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소식을 전해주기도 한다.

물론 일부 여론조사는 '베를린 장벽이 다시 생기기를 바란다'는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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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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