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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광주비엔날레'가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이라는 주제로 지난 9월 10일부터 광주 지역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그 밖의 어떤 것-마이너리티' 현장전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이너리티의 문화적 코드로 무장한 이 전시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중심 논리가 스며 있는 도시 광주에서 '그 밖의 어떤' 문화와 예술 그리고 신나는 놀이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앗싸! 마이너리티' 기획은 이 전시에 대한 비평을 중심으로 대한민국과 광주 사회의 '그 밖의 어떤 것', 즉 마이너리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고자 합니다. '마이너리티'의 큐레이터 박찬국씨를 시작으로 문화비평가 서동진씨, <전남매일> 박호재 편집국장, 미술평론가 임정희씨, 작가 강홍구씨 등이 필자로 참가합니다...<편집자 주>
광주, 5.18을 기념하는 미로
5.18 자유공원 상무지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후 안 일이지만 '5.18 자유공원, 상무지구'란 지리적 명칭이야말로 광주의 알레고리 자체였다. 첫날은 떡하니 5.18 기념광장인 도청 앞으로 데려다주었다. 황당하고 낭패한 심정에 다시 택시를 잡아탔다.
이는 아주 운 좋은 경우였다. 마침 택시 기사는 그에 관한 기억이 있었다. 그는 상무대의 비통한 기억을 들려주며 날 데려다 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간 곳은 상무대였지 5.18 자유공원은 아니었다. 도착했을 땐 이미 전시가 끝날 즈음이었다.
다음날 아침 역시 나는 결국 두 번이나 헛걸음한 끝에 겨우 5.18 자유공원엘 갈 수 있었다. 한 번은 광주시민공원엘 한 번은 5.18 기념문화관엘, 택시기사들은 날 데려다주었다. 이곳이 아니라 해도 막무가내로 거기라고 우기는 데 할 말이 없었다. 길 찾기의 명수들인 택시 기사들은 5.18을 기념하는 장소의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의 택시 기사에게 5.18과 공원 어쩌고를 뺀 채 그냥 상무대로 데려다 달라고 몇 번 다짐을 주었다. 그리고 겨우 정오를 지나 5.18 자유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 낭패와 곡절이 바로 5.18 이후의 광주 이야기임을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려진 기억의 좌표에서 바라보는 광주
광주 비엔날레 현장전시의 세 번째 전시 카테고리인 <그 밖의 어떤 것>에 참여한 작업의 상당수는 광주를 향한 기억의 전략과 상대한다. 기억에 발목 잡히지 않은 채 발전하는 광주에 관해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전시물에 적힌 어느 광주 시민운동가의 인터뷰처럼 개발과 발전은 기억을 청산하려 애쓴다. 그는 광주시민이 기업가적인 진취성이 희박하다고 푸념한다. 그러나 민주화투사에서 경영마인드로 무장한 지역발전의 전략가로 변신한 사람들이 기억의 멍에를 규탄할 때, 그것은 자칫 유치하며 패배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칫 유치하며 패배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25번 버스'란 설치작업에서 나타나는 기억의 시각적 지도는 가치 있다. 광주란 도회와 실핏줄처럼 연결된 시골마을과 그것을 잇는 125번 버스 노선을 관찰하며, 사람들은 노동과 교환, 성장과 이동의 민중적 미시사를 기억해낸다. 그 시민운동가는 지방분권시대를 접수한 지역발전의 담론이란 좌표에서 기억의 위치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위치에서도 기억이 만들어지고 생산된다. '섬-중흥동 252번지' 역시 그런 기억의 전략을 향해 이의를 제기한다.
작가들은 "흔히 민주화의 성지, 항쟁의 도시, 인권의 도시, 문화의 중심도시, 예술의 도시로 상징되는 광주의 여러 가지 얼굴의 이면에는 감춰지고 가려진 또 다른 얼굴이 있다. 이 작품은 사회중심에서 소외되어 소수 또는 약자로 살아가는 주변부의 사람들에게 광주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오만의 가면을 벗겨내고자 한다"고 작업 의도를 설명한다.
중흥동 252번지 마을 사람들
'섬'의 작가들은 광주란 얼굴의 이면이라고 말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이면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허위를 벗겨내면 드러나는 진실의 얼굴이 아니겠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면에 있다고 말한 중흥동 252번지 마을 사람들은 기억의 권력에서 배제된 주체들이다. 그들은 기억의 이야기 안에 자신의 공식적 위치를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차라리 인도의 탈식민주의자들이 말하는 하위주체(the subaltern)에 가깝다. 삶은 있지만 기억은 없는 주체, 현실은 있지만 재현할 언어를 결한 주체란 뜻에서 중흥동 252번지 주민은 기억의 공동체에서 배척당한 주체이다. '민주화 시대'에 광주는 복원되고 조사되며 기념되었다.
광주를 공식적인 국가와 지역의 이야기로 조직할 때 그것은 광주란 지역의 변화의 전략과 합성된다. 상무대가 상무지구란 이름의 개발 권역이 되고 그 옆에 자리할 공간적인 사건이 아파트 단지이자 전철역이란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기억의 전략과 발전의 전략이 뒤엉킨 공간 안에 '중흥동 252번지'를 끌고 들어오는 것 역시 정당한 일이다. 그것은 기억의 전략들이 대립하는 자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규율과 통제, 그리고 폭로
어쩌면 광주비엔날레란 이벤트가 그 대립의 공간 자체일지 모른다. 광주비엔날레는 지역 발전의 전략에서 비롯된 이벤트이다. 그리고 그 이벤트가 지닌 긴장을, <그 밖의 어떤 것>이란 전시에 참여한 주체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상무대란 공간이 그런 긴장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한다.
그런 점에서 훈육적인 학교사회를 향해 소박한 비판을 던지는 '원(元)하자'의 설치작업이나 '풀밭 위의 식사' 팀의 섹스를 모티브로 한 설치작업은 엉뚱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엉뚱한 것도 아니다. 산업화를 위해 치닫던 시대의 질식할 듯한 규율과 통제는 학교-공장-감옥-병영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질서로 나타난다. '원하자'는 바로 그 학교사회의 훈육과 규율을 폭로한다.
관처럼 세워진 규격화된 종이박스와 그에 그려진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아이들의 실물 크기의 모습들, 욕조에 잠긴 교복과 그 앞에서 점멸하는 훈육사회의 슬로건들, 그리고 영창과 사열을 위한 뜰을 가르는 담벼락을 에워싼 교실 책상의 벽들. 물론 그것은 폭압적인 군주의 모습을 한 권력의 모습 옆에 나란히 놓인 또 하나의 권력을 부감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산업화 시대의 국민을 길러내는 권력이고, 그 권력의 공간은 학교이며 공장인 것이다.
그리고 기억은 언제나 외상의 자리를 맴돈다
'풀밭 위의 식사' 역시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은 거리의 룸살롱과 술집들의 간판에서 채집한 이국적이고 천박한 상호들을 티셔츠에 프린트하여 빽빽이 진열한 후 그 위로 거리의 풍경을 영사한다. 헌병대 식당이던 옆방에 설치된 양초 덩이에서는 싸구려 냄새 물씬한 화학적인 방향이 스멀스멀 풍겨 나온다.
작가의 의도와 달리 이 설치 작업은 탈출과 도피의 자리를 차지하는 성욕의 공간을 비춘다. 그러나 그 욕망 역시 균질적이고 도식적이다. 벗어나려던 욕망은 언제나 같은 자리를 맴도는 욕망에 자리를 내준다. 그렇게 넓게 보아줄 때 '원하자'와 '풀밭 위의 식사'는 또 다른 기억의 켜를 들춘다. 그리고 아직 기억할 것이 남아 있고 다르게 기억할 세계로 현실은 존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의 작업들을 압도하는 것은 역시 상무대라는 외상(外傷)적인 공간 자체일 것이다. 그것에 아무리 다른 기억의 이야기를 앉혀놓아도 상무대는 그것을 압도하는 '작품'으로 버텨낸다. 결국 우리는 기억은 언제나 외상의 자리를 맴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다시 기억함으로써,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냄으로써 기억을 극복할 수 없다. 새로운 서사적인 허구의 주인이 되는 기억으로는 충분치 않다. 외상은 다른 외상을 통해 사라질 뿐이다. 그 다른 외상이란 물론 광주항쟁의 꿈을 완수하는 사건이 만들어내는 역사적인 외상이다. 그 사건에서 만들어질 시각적인 표현을 선취하는 작업과 만날 때 상무대는 아마 전시의 공간이자 배경으로 조용히 물러날 것이다.
| | 해태 타이거즈 | | | 광주에 대한 몇 가지 기억 | | | |
| | ▲ 현대사의 암흑기인 80년대, 광주시민들이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했던 것은 그들 스스로를 응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무대에서 작가그룹 퓨전이 ‘해태 타이거즈’를 다시 한번 응원하는 것은 역사 광주 안에 있는 오늘날의 우리를 응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 ⓒ이성제 | 광주에서 광주에 관한 기억을 떼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전면엔 문화수도 광주라는 번영의 전략을 꿈꾸어야 하는 광주가 있다. 뒷면엔 상흔으로 가득 찬 시대의 악몽을 꾸어야 하는 광주가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그 양면 사이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현장3에 참여한 '87항쟁 이후 세대'의 젊은 작가들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듯 보였다. 광주의 젊은 그룹은 '해태 타이거즈'에 관한 수다를 늘어놓는다. 그 기억이 유난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기억해서 다르게 살아 보고 싶다는 소망을 나타냈을 것이다.
인적 드문 전시장에서 만난 자원봉사자가 마침 그 그룹의 멤버였다. 그는 함께 전시에 참여했던 광주 민중미술운동의 선배가 건넨 '비판'이 섭섭했던 듯 했다. 프로야구란 게 민중을 현혹하기 위한 지배이데올로기의 황색 도구란 걸 모르냐는 투의 핀잔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서로 무얼 기억하든 그 기억은 결국 한 가지 외상을 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주라는 고유대명사로 각인된 사건의 상처. '상무대'에서 기억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서울에서는 우익 국회의원들이 “좌파정권이 역사교과서를 통해 잘못된 기억을 조장한다”고 법석이다. 문득 광주비엔날레 역시 기억의 짐을 짊어진 세대들을 위한 싸움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서동진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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