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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물건의 신기한 기능

얼마 전까지도 발은 흔한 물건이었다. 대나무를 가늘게 다듬어 만든 세렴(細簾)은 귀한 것이었지만 굵은 대나 비닐대롱으로 만든 것은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었다. 방문을 열어 놓고 발을 쳐두는 것은 여름나기의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임금이 등극해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국사를 대행할 때도 남녀가 유별했으니 조정 대신들과 내놓고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이 때 발을 늘어뜨리고 내외를 하며 나랏일을 봤으니, '수렴청정'이란 바로 '발'을 뜻하는 한자 '렴(簾)'에서 나온 것이다. 그야말로 발은 신분과 장소의 상하를 막론하고 그 소용이 넓었다.

바람은 발을 부드럽게 지나가지만 빛은 제 맘대로 지나가지 못한다. 가는 대오리가 촘촘히 늘어선 발은 밝은 쪽에서 보면 실제보다 올이 굵어 보이고 어두운 쪽에서 보면 실제보다 가늘어 보인다. 빛이 반사되거나 가는 틈새로 통과하며 일어나는 이 착시현상을 최대로 이용한 것이 발이다.

발은 올이 가늘수록 밝은 곳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어두운 방에 있는 사람은 밖이 훤히 내다뵌다. 밝음으로 어두움을 보지 못하나 어두움으론 밝음을 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신통방통한 물건이다. 바람은 제 맘대로 통하되 빛은 사람의 필요대로 통하는 발은 전통가옥의 여름철 사생활 노출을 멋지게 해결한 것이다.

중국에도 우리와 같은 모양의 발이 있지만 대부분 주렴이라하여 구슬을 꿴 줄을 세로로 촘촘히 늘어뜨린 것이니 우리 발의 섬세함에는 비교가 안되고 드나들 적마다 출렁거리는 모양이 방정맞아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

▲ 조대용 장인의 작품. 희끗희끗 보이는 대마디의 무늬가 이채롭다. 130cm X 180cm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발이 주는 무한한 상상력의 미학

발을 치는 목적은 공간의 분리이다. 그러나 벽에 의한 공간분리와 발에 의한 공간분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발이 쳐진 공간은 상징적으로만 분리된 공간이지 실제론 분리되지 않은 공간이다.

발을 내렸다는 것은 문을 닫았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발을 함부로 걷고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방문을 갑자기 열어제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몰상식한 일이다. 가벼운 발이지만 함부로 들추지 못하므로 발로 가려져 안 보이는 공간은 무한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여름날 절집에 가서 발이 쳐진 승방을 보면 발 너머에 공부하는 스님이 계시고 차향(茶香)이 나는 듯 고상하게만 상상되지만, 정작 방안엔 큰스님 몰래 낮잠을 즐기는 행자가 누워있을지 모를 일이다.

길을 가다가 주렁주렁 늘어진 주렴을 보면 그 곳이 무슨 가게가 되었건 갑자기 배가 고파지며 자장면이 생각난다. 우스워 보이지만 차향도 자장면도 학습으로 익혀진 문화형에서 비롯되는 '문화적 조건반사'에 의한 상상이다.

세렴(아니면 비닐대롱 발이라도)으로 가려진 방에서 깊이 잠든 여인의 숨소리라도 나면 그 궁금증은 뜬금 없이 요사스럽다. 보일 듯 안 보이는 발로 가려진 곳에 대한 궁금증은 빨간색 비디오의 직설적 호기심엔 댈 것이 아니요, 백 발짝을 양보해서 발이 연상되는 망사 팬티의 경망스러움에 댈 일이 아니다. 만일 발이 내려진 곳이 호젓한 정자라도 된다면 상상의 화려함은 극을 달릴 것이다.

이건 추한 상상이 아니라 발을 타고 주택으로까지 들어간 아름다운 에로티시즘이다. 필자는 실용성의 기치 아래 본의는 아니지만 에로티시즘을 방문에 멋지게 내걸은 우리의 조상님네를 금세기 최고의 큐레이터라 칭하고 싶다.

대를 잇기 힘들었던 장인의 고뇌

▲ 일반의 관심을 돋우려고 자주 공개시연을 갖는다는 조대용 장인. 명주실이 감긴 고드렛돌 460여개를 교차시켜 대오리를 매어 가면서 발이 된다.
ⓒ 곽교신
조대용(55·경남 통영시) 장인은 2001년에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받은 염장(簾匠)이다. 가업으로 익힌 것이 4대째를 이은 것인데 후계가 없어 막막했다. 힘든 일에 비해 돈이 되지 않으니 배우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둘째 아들을 후계자(공식 명칭은 '이수자') 삼아 "너라도 배워 두라"며 반 강제로 대를 물리고 있으니 다행이지만 아들의 본업은 따로 있단다.

전통을 소신껏 이어가려면 발만 매도 생계가 되어야 한다며 무형문화재의 현실적 한계를 아쉬워 한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한 달에 지원 받는 돈은 100만원이다. 'IMF' 이후 발은 단 한 개도 안 팔리는 달이 대부분이므로 지원금이 월수입의 전부인 셈이다. 일을 가르치는 것을 아들에게 미안하게 여기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일본은 전통 발을 상품화하여 수요도 많고 발을 전문으로 만드는 공장만 60여개나 된다고 한다. 발 전문박물관까지 세워 이미 조 장인의 작품도 여러 점 소장하고 있고 각국의 발을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등 체계적인 연구를 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고 한다.

중국에도 발 제작 기록은 없다는데 일본은 에도시대는 물론 그 이전 발 제작 기록도 있다고 들었다며, 우리 발을 가져다 배운 게 분명한 일본이 언제 뒤를 때릴지 조바심이 난다는 장인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

문화재청에서 책자를 내기 위해 지난 7월에 발 제작의 전과정을 기록해갔다는 것을 위안 삼는 장인의 순수한 전통사랑이 정겹다. 나라사랑이 별다른 것이랴.

실처럼 가는 대오리

▲ 쪼갠 왕대가 실같은 대오리로 바뀌어가는 과정. 맨 오른쪽이 고무쇠를 두번 통과한 세렴 제작용 대오리로 평균 지름이 0.5mm.
ⓒ 곽교신
다듬어 놓은 대오리 중 임의로 10여개를 집어 정밀한 공업용 게이지로 직경을 재어 보니 0.48~0.55mm이다. 눈금이 많이 나간다 싶은 게 있어서 다시 재어 보니 0.57mm였고 그게 가장 굵은 놈이었다. 대나무가 부러지지 않고 이렇게 가늘게 다듬어진다는 게 신기하다. 그런 대오리 2400여개가 210여가닥의 명주실에 매이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세렴'이 된다.

발 재료로는 화살을 만드는 시누대가 가장 좋으나 무차별 뿌려진 제초제에 시누대가 귀해져 지금은 왕대를 쓴다. 대마디가 긴 3년생을 골라 수분이 가장 적을 때인 11~12월에 자르는데, 그 때 자르지 않으면 발에 좀(얼룩)이 나고 색도 바랜다고 한다. 때를 놓치면 일년을 기다려야 하므로 일년간 쓸 재료를 이 때 채비해 놓는다.

대를 발의 가로 길이로 자르고 엄지손가락 굵기로 갈라 굳은 외피를 훑어 내고 안쪽의 너무 연한 살도 대칼로 발라내면 연녹색의 대나무 편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서리와 이슬을 맞히고 볕을 쪼이며 2~3개월 말리면 연한 갈색이 된다. 이렇게 낸 색깔은 아무런 칠을 하지 않아도 발 수명이 다하도록 변치 않는다.

발 작업의 기술적 절정은 대오리를 가늘게 뽑는 과정이라고 한다. 발을 매는 일은 6개월 정도 작정하고 배우면 웬만큼 해내지만, 대오리를 뽑는 일은 순전히 손끝 감각으로 익혀야하기에 최소 4~5년은 지나야 쓸만하게 뽑아낸단다.

대오리를 삼는 것을 "뽑아낸다"고 말하는 것은 필수공구인 고무쇠란 도구에 기인한다. 이름만 있을 뿐 책에도 설명이 없고 도대체 고무쇠가 뭘까 늘 궁금했는데 알고 나니 '콜럼부스 달걀 세우기'다.

고무쇠를 만들려면 손바닥 넓이의 스테인리스 철판에 못을 살짝 쳐서 작은 구멍을 낸다. 못이 철판을 파고 들어가며 생긴 오목 볼록 못 자국을 그대로 살려서 줄로 세밀히 다듬으면 못구멍은 칼날이 선 정밀한 도구가 된다. 대칼로 가늘게 쪼갠 거친 대를 오목 구멍으로 밀어 넣어 잡아당기면 매끈한 대오리가 떡갈래 나오듯 빠져 나오는 것이다.

전통 발의 미래

▲ 세렴에 놓은 문양의 최고 경지. 거북 문양의 일부. 100Cm X 90Cm 소품으로 조 장인의 작품.
ⓒ 곽교신
현실적인 문제는 이 발의 가격이다. 웬만한 사람이 세렴을 사려면 월급으론 말이 안 통하고 연봉을 따져봐야 하는 판이니 수요가 없고 그래서 자주 못 만드니 단가는 점점 올라가는 악순환의 연속고리이다.

힘들더라도 '세렴'의 전통미는 그대로 이어가되 대오리를 좀 굵게 가공하고 무늬도 단순화해서 실용적인 발을 만드는 노력을 해보라고 말씀드리니 난감한 표정이다. 수지도 맞추고 염가 보급도 할 겸 궁리를 많이 했단다. 가마니 짜는 손기계를 개량하여 대량 생산의 길이 보이는 듯 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는데 필자가 듣기엔 마케팅 실패로 보였다.

차창의 햇빛 가리개로 소형 발을 차유리에 맞게 상품화하면 좋지 않을까. 땡볕에 차를 세워 둘 때 앞 유리창을 신문지로 가려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장에서 싸게 파는 중국제 굵은 발을 잘라 와이퍼로 눌러두니 바람에도 안 날리고 좋던데 그건 어떨까. 고급 커튼의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주름식으로 접어 올리는 커튼의 재료로 발을 활용하는 것은 또 어떨까.

궁리를 하면 길이 없는 게 아닐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생활방식의 변화로 발이 소용이 없다고 하지만 쓰기에 따라 발의 용도는 무궁무진해 보인다.

쓰면 살아나는 무형문화재를 실생활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해서 우리 세대에 '무형문화재가 유형문화재로 되는' 문화의 침몰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문화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주렴을 보고 자장면이 생각나는 것도 분명히 문화현상이다. 세계 어디서든 발을 보면 한국이 생각나게 할 수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발을 보면 일본이 생각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우리의 지극한 관심이 간신히 이어지고 있는 전통 발의 숨결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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