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욕을 먹어도 없애서는 안 됩니다."
주공 임대아파트 임대료 인하를 위해 몇 달째 시민단체와 공동 사업을 벌여왔던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의 주장이다. 이 본부장은 주공이 주택공기업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흘러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공에 강한 반감을 지녀왔던 시민단체나 학계 등 전문가 집단들도 이러한 견해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가운데 소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주공의 민영화 또는 해체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주공이 앞으로 수행해야 할 공적 영역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 그 영역은 더 확대될 수 있다는데 대체로 동의했다.
그렇다고 '현재'의 주공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있는 전문가들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현재의 주공으로선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는 "주공이 임대주택사업을 통해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문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대안은 싱가포르의 주택개발청(HDB) 모델부터 캐나다의 캐나다모기지주택공사(CMHC) 모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임대주택사업을 통한 주거 빈곤층의 주택안정, 즉 저소득층과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적 서비스 제공을 주공이 수행해야할 할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시민단체와 진보진영에서는 공영개발의 업무 확대를 강조했고, 학계에서는 임대주택에 대한 공공적 관리방안 마련을 더불어 주문했다. 이와함께 민영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제기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아울러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와 정부 관계자는 주공이 주택 관련 공금융을 취급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모기지론을 취급하는 주택금융공사와는 차별화 된 서민주택금융 분야를 주공이 서비스해야 한다는 것.
다음은 각계 전문가 7인이 제시한 주공의 발전방향을 요약한 것이다.
"임대주택 재원은 정부가 마련, 주공은 공영개발에 매진"
▲박완기 경실련 시민감시국장 "우리는 계속 공영개발을 주장해 왔다. 이를 중심으로 주공의 기능이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건교부가 돈을 대지 않고 주공이 분양사업이나 택지사업을 통해서 임대주택을 짓는 왜곡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상적인 시스템이 되려면 공공임대나 임대주택 재원은 정부가 투자를 해 서민주거안정이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
현재 주공과 토공이 택지개발 사업과 관련해 영역조정이 잘 안 이뤄지고 있다. 택지개발과 주택·아파트 건설도 공공성을 중심으로 시스템이 재정립돼야 할 것 같다. 주공 자체가 지니는 불투명성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주택을 짓고 나면 끝이었는데 분양 이후 공공부문에서 국민임대주택을 계속 보유하게 된다면 관리의 문제들이 주공의 새로운 역할이 될 수 있다. 단지 관리체계에 있어 임대주택에 하자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공공적 관리체계의 문제가 앞으로 부각될 것으로 본다."
"주택금융·R&D 기능 수행하는 캐나다모기지주택공사 모델이 바람직"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 "개인적으로 주공은 주거복지공단의 개념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주공은 부동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유형에 공급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복지적 요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단의 개념이라면 조직이 다소 축소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 조직이 위축되는 것을 환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그리고 주공은 주택 공금융 역할도 위임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캐나다에는 캐나다모기지주택공사(CMHC)라고 있다. 캐나다모기지주택공사는 세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 있다. 정통적 의미의 주택공사의 기능, 주택금융 기능, R&D 기능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공이 주택금융 기능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현재 서민들은 전세금 대출마저도 주택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발행해 주지 않으면 못 받는다. 만약 주공이 공금융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다면 서민주거복지 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정부가 이 기능을 넘겨줄지는 의문이다."
"임대사업은 대형 민간업체에 맡기고 주공도 민영화해야"
▲임덕호 한양대 교수 "원래 설립한 목적에 맞게 돌아가야 한다. 민영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민간이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세금 들여가며 하라고 설립한 것은 아니다. 임대아파트 건설은 민간이 수행할 여력이 없다. 수익이 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주공이 저소득층 대상으로 한 주택사업을 계속 하게 된다면 주공의 역할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주공이 금년부터 임대아파트 쪽으로 많이 전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점은 경영의 효율성이다. 공기업을 민영화하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민간에 맡겨서 훨씬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다면 굳이 주공에 맡길 이유가 없지 않나. 주공에 들어간 지원 총액을 민간에 맡겨서 보조금을 주는 것이 훨씬 덜 들어간다면 민간에 맡길 수도 있다고 본다.
2012년으로 가면 공급 과잉 상태에 놓이게 될 수 있다. 이 시기쯤 되면 임대주택사업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선진국에서는 임대업을 하는 금융회사들이 많다. 리츠나 보험회사도 있다. 이런 형태로 임대사업의 형태가 체계화 돼야지 영세한 소규모 업자들 중심으로 이뤄져서는 관리도 안 된다. 그러한 점에서 주공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민영화된 회사로서 나갈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분양주택 민간에 맡기고, 주공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하성규 중앙대 교수 "주택사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고 주거빈곤층도 많다. 소득격차가 심한 상황에서 주거문제 안정을 시장경제에만 내맡겨 해결할 수는 없다. 때문에 공기업이 필요하다. 주공이 기능을 많이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첫 번째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한다고 본다. 주공이 노력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지난 3∼4년 동안의 통계를 보면, 분양주택을 더많이 지었다. 앞으로는 분양주택 보다는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해야 산다. 바람직한 방향은 분양주택의 경우 민간에 맡기고, 주공은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면 된다. 다만 정부의 재정지원이나 국민주택기금 등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도 성찰을 해야 하고, 주공 자체도 자구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2012년 100만호 임대주택건설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주공의 역할이 끝난다고 보지는 않는다. 공급량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멸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공공주택을 계속 공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임대아파트는 앞으로 유지·관리가 더 중요한 요소가 될 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국민주택기금이 있지 않나. 기금의 파이를 넓혀야 한다. 현재 국민주택 기금으로서는 국민임대주택 100만호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주거비 보조, 주공은 싱가포르 주택개발청 모델 본받아야"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 "싱가포르에 주택개발청(HDB)이라는 공사가 있다. 싱가포르는 이 주택개발청을 통해 완전 공영개발을 한다. 들어와서 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판다. 나갈 때는 다시 반납하고 나가야 한다. 주택에 있어서는 어떤 프리미엄도 인정을 하지 않는다. 특히 서민들에게는 임대아파트 식으로 싼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은 주택에 대한 프리미엄을 없애는 공영개발로 가야하며 그 사업을 담당하는 곳이 주공이어야 한다고 본다. 싱가포르 모델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건설업체 로비에 따라 없애거나 해서는 안 된다. 주공이 공영개발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하고, 정부는 주거비를 보조한다면, 선진국형 주거형태가 될 것이라고 본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공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은 없었다. 올해는 7000억원 정도 배정이 됐다. 너무 적은 비용이다. 앞으로 10여조원은 주거비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주공이 제기능만 한다면 땅값은 내려간다. 그러면 전체 건축비용이 싸지기 때문에 재정이 많이 들어갈 필요가 없어진다."
"민간비영리단체와 파트너십 주도...입주권(VOUCHER) 관리 영역도 검토해 볼만"
▲유병권 건설교통부 주거복지과장 "선진국에서는 민간비영리단체들이 주택건설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비영리단체들이 주택건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필요한 물량 공급할 만큼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다. 비영리단체들이 나름대로 정착이 되기 전까지 주공이 민간비영리단체의 역할을 하면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혹은 주공과 민간비영리단체가 파트너십을 형성해서 복지주택을 공급하는 것도 주공의 새로운 영역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도시 주거환경개선 사업, 재개발 사업 등은 보통 상업성이 있어야 민간이 뛰어들지 않나. 반드시 해야 한다만 하면 정부 보조가 들어가더라도 주공이 이 역할을 맡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리고 탈북자 주택도 민간이 안 하려는 부분이다. 민간 부분에 맡기면 프로세스가 느리기 때문에 주공의 상당한 역할이 있을 수 있지 않겠나.
주공에서 돈이 있을 지 모르지만 주거비 보조파트도 역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는 바우처(Voucher)라고 해서 입주권 제도가 있다. 주택관리공단에서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지만, 주공도 입주권을 관리할 수 있다면 주거복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계획들이 구체화되려면 재원이 필요할 것이다. 재원이 부족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주공이 단기적으로 당장 부족해서 작업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필요한 경우는 특수채를 발행하거나 외자도 도입하는 계획을 주공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분양가 먼저 낮춰 집값 하락을 주도해 달라"
▲B수도권 주공아파트 건축현장 수급업체 공무과장 "무주택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분양가를 낮춰 달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원가가 얼마인지 안다. 원가 대비해서 너무 하지 않나 생각된다. 주공이 먼저 나서면 분양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곳 현장의 경우 750만원 정도인데, 이 때문에 민영아파트는 850만원으로 분양을 한다. 시세가 주공을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평당 건축비 250만원으로 건설을 하고 있다. 택지비를 추가해도 550만원 밖에 안 된다. 그런 실정이다. 주공은 지방 공사에서 적자가 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거기 투입할 비용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지방 공사의 적자는 미분양 물량에서 나온다.
그리고 주공 인원이 3500명인데 인원이 너무 많다. 행정서류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우리 경우 주공에서 감독을 나오면 그 두 배의 일을 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 민간 업체들은 주공 감독이 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수동적으로 된다. 주공이 감사 받을 때도 우리가 다 서류를 만들어서 올린다. 업무가 중복되기 때문이다. 민영은 지금 우리 인원의 절반인데도 주공 보다 만족도가 높은 아파트를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