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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2일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입장도 아닌 철저한 구경꾼인 내가 여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선거에 나온 후보 때문도 아니요, 쫒고 쫒기는 박빙의 대결 양상 때문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나의 관심은 이번 대선에서 플로리다주에서 도입했다는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 투표 방식에 쏠려 있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인 약 5천만명이 이용할 이 투표 방식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본격적인 전자투표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펀치 카드와 터치스크린

플로리다주가 터치 스크린 방식을 도입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지난 2000년 대통령 선거 때 플로리다주에서 기존의 펀치 카드 방식을 사용하다가 구멍이 채 뚫리지 않은 투표지 때문에 재검표 소동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플로리다주 정부는 개표 논란을 사전에 막기 위해 터치 스크린 방식을 도입했다. 그러나 플로리다주정부가 의도한 대로 터치 스크린 방식이 과연 정확할까?

은행에서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 현금 인출기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짐작하겠지만 아무래도 키보드에 비해 입력 정확도가 떨어진다. 평상시에도 손가락 끝의 미묘한 강약에 따라 오작동이 쉬운 터치 스크린이 한정된 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또 이중 기표가 불가능하도록 프로그램했다지만 기표 누락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투표 중에 시스템이 다운되거나 에러 메시지가 뜨거나 혹은 기계 자체가 정지되는 비상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는 싫지만 만약 하드웨이 조작 결함이나 소프트웨어 에러 또한 해킹으로 유권자 명단이 삭제되거나 왜곡될 경우 재확인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재검표가 아니라 재투표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우려는 지난 3월 플로리다주 민주당 예비선거 투·개표 과정에서 실제로 나타났다. 플로리다주 지역 신문인 <선 센티넬>의 3월 11일자 보도에 의하면 지난 3월에 지금과 동일한 터치 스크린 방식으로 투표한 플로리다주 민주당 예비선거 투·개표 결과를 분석한 결과 1.09%의 표가 누락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종이 투표의 오차 수준인 0.12%보다 최소 8배나 높은 수치였다.

각종 신문 보도에 의하면 지난 10월 18일부터 시작된 조기 선거에서도 일부 선거구에서 터치 스크린 투표가 시작된 지 10분 만에 컴퓨터 시스템이 다운돼 투표가 중단됐으며 유권자 신분 확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다고 한다. 어느 해보다 박빙이었던 이번 미 대선은 투표 종료 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의 선거는 과연 민주적인가?

비록 터치 스크린 선거 방식 때문에 미 대선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그 많은 후보자 중에서 지지자의 이름에 펀치를 뚫어야 하는 기존 투표 용지의 복잡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렇게 복잡하니 영어와 스페인어 두 가지 버전으로 터치 스크린 방식을 생각해 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다.

기존에 비해 편리하다고 해도 스크린 터치 방식의 문제점도 많아 보인다. 특히 선거 운동이 완료되지 않았는데 유권자의 편의를 위해 실시하는 조기 투표와 결합할 경우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의문이다. 이쯤 되니 미 대선 투표 방식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만약 터치 스크린 방식으로 조기 선거를 한 사람들은 그 결과가 즉시 집계될 텐데 그 결과가 사전에 새어 나기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을까?

둘째, 터치 스크린 방식을 실시했을 때 선거 전에 지급되는 인증카드의 보안 문제 및 투표자의 신원 및 투표 성향에 대한 데이터가 유출될 여지는 없는가?

셋째, '터치 스크린' 방식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비적응 유권자들에게는 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넷째, 전자 투표에서 일반적으로 우려되는 투표 결과의 데이터 조작 가능성에 대한 방지 대책은 완벽한가?

남의 나라 투표 방식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내 나라의 선거가 떠오른다.

붓 뚜껑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우리네 투표 방식. 우스운 얘기지만 문맹이 많았던 자유당 시절부터 비록 부정 선거일 망정 고무신을 돌리며 사람 이름 볼 필요 없이 무조건 '첫번째'를 찍으라는 투표전략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다 간단한 투표 방식 때문이 아닐까 한다.

도입 시기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조만간 우리 나라도 전자 투표나 인터넷 방식의 투표가 도입될 것이고 그 방식에 대한 공정성과 조작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것이다.

투표 방식의 개선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바로 주체와 수단이다. 어디까지나 국민 개개인의 정확한 투표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수단은 개선을 거듭하는 것이다. 만약 국민들의 의사가 왜곡되거나 누락, 조작될 우려가 있다면 조금 더 불편하더라도 안전한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선거를 하는 주체는 인간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편리함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의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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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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