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신랑 박종훈 군과 신부 이정희 양.
신랑 박종훈 군과 신부 이정희 양.
저는 이 두 젊은이에게 벌써 여러 달 전에 결혼 주례를 부탁받았습니다. 아마 이들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 약속을 했을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제가 강화 교동이라는 섬에서 살았었는데 지금은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부산에서 열차 편으로 아내와 함께 올라왔습니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올라오지 말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당황해 할 신랑, 신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술렁이는 하객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막 웃음이 나왔습니다. 긴장해 있는 신랑 신부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웃자고 한 말입니다.

"거친 바다로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 그러나 결혼식에 나갈 때는 세 번 기도하라"(에리히 프롬)는 말이 있습니다. 곧 결혼이 인생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두 사람을 의미하는 인간(人間)은 혼자서 살 수 없음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결혼의 조건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결혼은 같이 살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결합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낭만적이기보다 현실적이기 때문에 사랑이 비록 충분조건까지는 되지 않을 수는 있어도 필요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한 사람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인생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양가 부모님과 여러 하객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이 두 젊은이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만났습니다. 아마 서로의 짝을 찾다가 이렇게 세월이 조금 늦어진 것 같습니다. 조금 늦게 만난 만큼 더욱 사랑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 이 두 사람의 결혼식의 주례자로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신부와 함께.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신부와 함께.

1. 결혼의 전제 조건이 사랑이니 만큼 서로 잘 맞는(어울림) 부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결혼의 성공은 서로에게 잘 맞는 짝을 찾는 데 있기보다는 살아가면서 잘 맞는 짝이 되는 데 있습니다. 결혼은 누구에게나 맞는 기성복이 아니라, 남여 당사자에게만 맞는 맞춤복입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했지만 몇 달 지나면 습관이나 성격이 맞지 않아 다투는 수도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다보면 묵은 장 맛이 깊은 것처럼 서로 어울림의 관계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2. 상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편과 아내를 다른 사람의 남편 또는 아내와 비교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결혼생활의 파괴에 이를 뿐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고 귀한 존재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각 나름대로의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뜨고 결혼한 후에는 한 눈을 슬며시 감으라"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느릿느릿 가족들과 함께. 서울 부산 광주 인천 안양 부산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느릿느릿 가족들과 함께. 서울 부산 광주 인천 안양 부산에서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3. 부모님으로부터 온전히 떠나시기 바랍니다.

정신적으로 부모로부터 떠나지 못한 남편이나 아내의 의식구조 속에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이 일어납니다.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남편과 아내는 결혼까지에 이르게 될 자격이 없습니다. 오늘 이후로 이제 두 분은 자신들의 가정을 이루어가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또 부모가 될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4. 상대방이 원하는 나의 모습을 갖추시길 바랍니다.

결혼은 쌍방적이고 상호 작용적인 노력의 과정이라고 볼 때 상호 존중하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대나무는 씨앗을 심은 후 첫 4년간은 땅속에서 죽순이 하나 올라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4년 동안 모든 성장은 땅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섬유질의 뿌리구조가 형성되어 땅 속으로 깊고 넓게 퍼져 나갑니다. 그리고나서 5년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대나무는 25미터 높이로 자란다고 합니다.

5. 서로가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일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가까이서 보면 티(약점)없는 얼굴은 없습니다. 그 어떤 남편 또는 아내도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크게 또는 적게 언짢게 하거나 괴롭히는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때 가능하면 즉시 겸손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함이 바람직합니다. 그렇게 하는 일은 나 자신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결혼은 완벽한 두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 하지만 용서하는 것만큼은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느릿느릿 가족들과 함께.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느릿느릿 가족들과 함께.

6. 서로 화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가꾸어 나가는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결혼은 하나의 작은 배에 남·여의 두 사람이 함께 타고 폭풍우 몰아치는 망망한 대해(大海)를 떠나 항해하는 것과도 같은 여정입니다. 그래서 이 여정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은 위대한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행복은 무엇보다도 부부의 화목에서 비롯됩니다. 결혼은 특별한 사람들의 만남이 아니라, 특별한 관계의 형성임을 잊지 마십시오.

7. 서로가 승자가 되는 싸움을 하십시오.

서로가 화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가꾸려는 이와 같은 자세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삶의 문제로 인해 어려운 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부부싸움을 하게 됩니다. 부부간의 모든 크고 작은 시비는 상대방의 장점과 자신의 단점을 생각하지 않는 데서 생깁니다. 부부싸움이 때로는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양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양념은 적당하게 넣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삼가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결혼을 하고 새로운 인생의 보금자리를 꾸릴 박종훈 군과 이정희 양, 저는 앞으로 그대들의 삶을 지켜볼 것입니다. 오늘 두 사람의 사랑의 약속이 더욱 튼실하게 뿌리를 내려 두 분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주례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지은 ‘사랑’이라는 제목의 시(詩)를 선물로 드리려 합니다.

당신의 모습은
느낌으로 붙들 수밖에
삶은 당신이 꾸미는
나의 작은 나라입니다.
때로 절망하며 내 스스로 넘어질 때
당신의 힘을 빌려
어둡고 긴 날을 넘어 온 나
이제 당신은 내 핏속에 흐르고
나는 새날을 위하여
두려움 없이 가는 것입니다.

-박철. <사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