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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월도에 가려면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서 자월도행 배를 타야 합니다.
자월도에 가려면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서 자월도행 배를 타야 합니다. ⓒ 송주현
"아침에 문을 열문 쩌기 좀 봐. 바다가 보이지? 속이 을매나 쎤해지는지 몰러. 난 세상 사람들 모두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자네 같언 도시 사람들은 영 그렇게 못사니 그게 뭐여."

누구나 우아하고 고상한 노년을 살아보는 걸 소원하는 세상에 쉽게 편승하실 만도 하시건마는,

"여긴 냉이 달래 굴 바지락 죄다 돈 되는 것들 천지여. 아이구, 저런 거 캐다 팔먼 돈푼이나 받겄구먼. 사부인더러 노시는 짐에(노시는 김에) 여기 오시서 돈벌이 허시라먼 좋겄구먼."

산책을 나가셔도 온통 장모님 눈에 보이는 건 돈이 될만한 먹을거리들인가 봅니다. 저런 강렬함으로 자식들을 키우신 게야. 그래서 자식들이 다들 올곧은 게야.

"송 서방, 이 굴 좀 들어보게. 맛난 거여. 자네는 산골사람이라 이런 거 맛없다 허겄지만서두 딴 사람들은 자월도 굴이라먼 한장(환장)을 허제."

굴을 따시는 장모님
굴을 따시는 장모님 ⓒ 송주현
장모님께서는 방금 딴 굴을 바닷물로 슬슬 씻어 입에 넣어 주십니다. 여기저기 손끝이 갈라지고 터진 장모님의 손가락 끝이 제 혀에 살짝 닿습니다. 뭉클하여라. 짭짜름함에 비린 갯내음이 입안에 가득 퍼집니다.

껍데기를 벌려 놓은 굴. 굴을 딸 때엔 꼬챙이가 달린 '죄'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껍데기를 벌려 놓은 굴. 굴을 딸 때엔 꼬챙이가 달린 '죄'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 송주현
장모님께서 하루종일 갯가에 엎드려 따는 굴은 약 7, 8kg. 그걸 다시 소쿠리에 담아 바닷물에 씻고 나서 육지에서 들어온 굴 매입업자에게 1kg 한 봉지에 1만원씩에 팝니다. 가끔 그나마 매입업자들이 가격을 깎으려고 배짱을 부리거나 아예 안 들어오면 아내에게 전화를 하십니다. 굴 좀 갖다가 팔아 달라고.

"아유, 엄마. 이걸 내가 어떻게 팔아요? 그냥 좀 싸게라도 장사꾼에게 자월도에서 넘기시지, 나참…."

그 굴을 가지러 자월도에 다녀오려면 배 삯(편도 요금이 어른 1인당 6600원, 거기에 차를 싣고 가면 승용차 4만원, 승합차 4만5000원.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발하는 배 삯은 이보다 비싼 1만5600원입니다)이 굴 값보다 더 들어간다는 건 도시에 사는 우리들의 경제논리이고 장모님의 논리는 다릅니다.

"아, 그럼 이 굴을 따 썩혀 버리네? 그리고 장사꾼들이 하두 값을 후려쳐서 인제는 그렇겐 못허겄다. 내가 그 장사꾼에 넝기느니 차라리 내 새끼덜 먹이제. 아, 갖다 팔아 쓰고 남으면 송 서방이랑 시어머니랑 해서 드리면 좋제. 먹기 싫음 관둬라, 다 내다 버리제."

아내는 마음껏 투정을 하면서도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전화하느라 부산하고. 전 그 아내의 그 모습과 장모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굴처럼 짭짜름한 감동을 느끼고….

강원도 횡성이 고향인 저는 해산물에 대하여 아직도 입맛 적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생선이라면 고등어 자반이나 붕어, 미꾸라지밖에 모르던 제가 굴이라니. 장모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저나 어머니는 굴을 잘 못 먹지요. 비릿하고 짭짤한 맛이 도저히 비위가 안 맞아서요.

지금도 기억납니다. 결혼을 위해 인사를 갔던 처가에서 저 먹으라고 한 접시 내놓은 싱싱한 생굴. 그 옆에 겨자 넣은 간장과 초장…. 비릿한 것도 모자라 매운 겨자라니. 무슨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렇게 음식이 다르단 말인가.

생긴 것이 꼭 뭐 풀어놓은 것 같은데다 물컹한 느낌이 징그러운 이미지만 연상되고… 먹기는 먹어야겠고 참 죽을 맛이더군요. 눈 딱 감고 입에 넣고 나서 바로 토할 뻔 한 상황. 지금은 토할 상황은 아니지만 굴과 쭈꾸미 지금도 영…. 게다가 익히지도 않고 먹는 건 나물 종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장모님이 친구분과 갯바위에서 굴을 따는 모습
장모님이 친구분과 갯바위에서 굴을 따는 모습 ⓒ 송주현
그러나 이젠 많이 적응이 되었습니다. 즐기지는 않아도 먹는 흉내는 제법 내지요. 장인어른처럼 시원스럽게 먹지는 못하지만. 그 드시는 모습이 얼마나 경쾌해 보이던지. 전 젓가락 끝으로 깨작깨작.

"이 사람아, 아, 몸에 좋으문 약으로도 먹는 거지. 그렇게 먹기가 힘든가? 살다 살다 자네 입맛은 첨 보네."

그런 퉁사발을 들으면서 익숙해져 온 것도 벌써 십 년. 아내가 어떻게든 절 먹여보려고 미역국에 넣어 끓이고 김치부침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덕분일 겁니다.

배는 어느덧 자월도에 닿고 긴 고동을 내뿜습니다. 대부도에서 한 시간 걸려 도착한 자월도. 집에 가자마자 가방을 던져 놓고 바로 장모님 계신 바닷가로 나갑니다. 장모님은 제가 온 것도 모르고 굴을 따고 계십니다.

같은 바람인데도 도시와 이곳은 왜 이리 기온이 다른 걸까요. 불어오는 칼바람에, 엉덩이도 마음껏 대고 앉을 곳도 없는 물가. 장모님의 볼은 유리병처럼 깨질듯 발갛게 얼어 있었습니다. 아직 채 겨울이 오지도 않았는데도.

"못 살아, 내가 못 살아…."

장모님 드리려고 도시에서 가져온 핫케이크를 꺼내 놓으며 아내는 울컥하기부터 한 모양이었습니다. 고생을 사서 한다고 생각하는 건 모든 자식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하루 종일 굴을 따다가 중간에 싸 간 간식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있다.
하루 종일 굴을 따다가 중간에 싸 간 간식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있다. ⓒ 송주현
"봐라, 여기 굴 천지 아녀? 이런 디 놔두고 내가 왜 집에서 노네? 여기선 꼼지락거리면 다 부자여. 못사는 사람덜은 귀찮아서 못사는 거여."

평생을 바다가 젖줄이라고 믿어오신 장모님. 팔 곳이 없어 굴이 썩어나가도 썰물만 되면 어김없이 바다로 바다로…. 바람을 이기시려 벌써 한겨울 내복에 솜바지에… 보기만 해도 짠 내음이 물씬 나는 장모님.

마흔 가까운 이 막내 사위가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겨 재롱이라도 부리고 싶어지는 분. 눈처럼 흰 굴 껍질 사이로 살며시 보이는 빨간 볼의 장모님. 자식들 생각해서라도 따뜻한 아랫목 좀 지키시면 어때서.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굴. 하얀 건 이미 따낸 껍질입니다.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굴. 하얀 건 이미 따낸 껍질입니다. ⓒ 송주현
"옛날엔 굴이 남아나질 안 했어. 사람이 많으니 저마다 따먹고 살기도 바뻤지. 아이구, 그때 생각하문 내가 지금도 눈물이 줄줄 난다야."

가난한 집 홀시어머니 모시는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시동생들 모두 출가시키며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장모님. 자식들과 친척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그나마 민박이며 낚싯배며 하겠다고 섬으로 들어온 젊은이들은 굴 맛있는 건 알아도 따기는 싫어서 도시에서 사다 먹는 풍조가 되었으니 갯가에 굴이 지천이 된 겁니다.

바닷물이 들어옵니다. 일어날 시간이 된 거지요.
바닷물이 들어옵니다. 일어날 시간이 된 거지요. ⓒ 송주현
"들어가야 겄다. 요즘은 물때가 일러져서 많이 줍지도 못해. 바다는 항상 먹을 걸 주는 게 아녀. 때에 따라 가문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그나마 먹고 살제."

"장모님 그 돈 벌어서 다 뭐 하시려고요? 다리도 아프시고 허리도 아프신데 병원 다 갖다 주시려고요?"

안타까운 마음에 장모님께 어깃장도 놓아 보지만,

"아, 나야 다 살았는디 욕심이 있간디? 나야 그저 자석덜 사는 거 보매(보며) 여서 바다나 보매 살다 죽으문 그만이제."

허리가 잘 안 펴져서 일어나는데 시간이 꽤나 걸리십니다.
허리가 잘 안 펴져서 일어나는데 시간이 꽤나 걸리십니다. ⓒ 송주현
장모님이 따신 굴 종다리를 받아 들고 앞서서 갑니다. 제법 무거운 게 실한 느낌이 드는 든든한 종다리. 이 속에 장모님의 삶이 담긴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그 동안 갯가에서 나온 음식들은 비릿하다며 싸잡아 은근히 하대하던 저였는데 이젠 이 차가운 겨울 굴을 먹을 때마다 장모님의 온기를 느끼며 삽니다. 아, 나의 장모님 언제까지나 건강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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