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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976년 <76년도 대학신입생 대학 학과별 예시 성적 판명 > 기사. 인문사회계, 자연계 학과별로 1위부터 5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중앙일보 1976년 <76년도 대학신입생 대학 학과별 예시 성적 판명 > 기사. 인문사회계, 자연계 학과별로 1위부터 5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 중앙일보
입시배치표. 각 대학의 학과를 지원 가능한 점수 별로 일목요연하게 늘어 놓은 ‘대학서열표’다. 배치표는 사설입시학원들이 나름의 기준을 적용해 작성한다. 전국의 수많은 수험생들은 이들의 배치표를 기준 삼아 지원 대학을 선택하고 있다.

기자는 학력고사를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을 먼저 지원하고 나중에 시험을 치렀다. 당시 대학 선택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몇 번 치렀던 모의고사 성적을 토대로 판단했다. 당연히 대학의 당락 여부는 학력고사 점수로 결정됐다.

모의고사를 치르고 받는 성적표 뒷면에는 배치표가 있었다. 340점 만점 기준으로 볼 때 ‘280점은 A대학, B대학에 지원이 가능하다’는 등 등급 별로 전국의 대학이 나열돼 있었다. 점수에 맞춰 대학의 서열이 매겨진 것이다.

제 7차 교육과정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2005학년도 수능

2005학년도 대학진학을 위해 오는 11월 17일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2005년 수능은 1997년 제정된 제 7차 교육과정이 처음으로 적용되는 해다. 제 7차 교육과정은 조금 복잡한 과정을 통해 수능 점수를 산출하며 대학 별로 적용하는 입시 전형도 다르다.

2005학년도 수능은 언어, 수리(가ㆍ나), 탐구(사회/과학/직업), 외국어(영어), 제2외국어(한문포함) 등 크게 5개 영역으로 나뉜다. 각 영역별 시험 과목은 수험생들이 임의로 선택해 치른다.

수능 영역은 크게 계열별로 구분된다. 인문계는 언어ㆍ사회탐구ㆍ외국어 또는 언어ㆍ수리ㆍ사회탐구ㆍ외국어 영역으로, 자연계는 수리ㆍ과학탐구ㆍ외국어 또는 언어ㆍ수리ㆍ과학탐구ㆍ외국어 영역으로 나뉜다.

수리는 가ㆍ나 중 선택, 사회탐구는 11개 과목 중 4개 이내 선택, 과학탐구는 8과목 중 4개 이내 선택, 제2외국어는 8과목 중 1개를 선택하는 등 시험을 치르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수험생들은 수능을 치를 때 선택한 수리 영역 유형, 탐구 영역과 선택 과목, 제2외국어 영역과 선택 과목명을 표기한다. 시험과목은 수험생 각자의 선택에 맞춰 치르고 그 결과는 영역/과목별로 계산하기 위한 것이다.

수능 결과는 시험과목에 대한 원점수 및 종합등급은 표기하지 않고 영역/과목별 표준점수와 백분위 및 등급으로 표기한다. 서로 다른 영역과 과목을 선택하는 수험생들을 원점수와 종합등급으로 동일하게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학별 입학 전형은 수시모집인지 가ㆍ나ㆍ다 군으로 나뉘는 정시모집인지에 따라 다르고, 수능 영역/과목별 표준점수, 백분위, 등급을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서 구분된다. 시험과목 선택뿐만 아니라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도 복잡해졌다.

대학은 수능성적을 전형자료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점수와 등급을 다단계 전형의 자격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 수능의 일부 영역 성적만 활용하거나 영역별 점수에 가중치를 부여할 수도 있다. 전형 방법에 따라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단순 비교가 불가능한 점수를 한데 모아 나열하는 입시배치표

조선일보 1983년 <내 점수로 어느 대학 갈 수 있나> 기사. 학력고사 성적 분포에 따라 합격 가능 대학 및 학과를 나열했다.
조선일보 1983년 <내 점수로 어느 대학 갈 수 있나> 기사. 학력고사 성적 분포에 따라 합격 가능 대학 및 학과를 나열했다. ⓒ 조선일보
올 수능에서는 대학에 입학하려는 수험생이나 수험생을 받아들이는 대학이나 다양한 요소를 감안해야 한다. 단순 비교가 불가능한 수능 점수로 학생들과 학교를 줄 세우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사설입시학원에서 배포하는 입시배치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서울대 법대와 의대를 정점으로 대학간 학과간 등급을 매겨 배치표에 나열해 놓고 있다. 이 배치표는 오래 전부터 대학 선택을 돕는다는 명목 하에 언론에서, 학교와 학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1976년도 중앙일보의 <76년도 대학신입생 대학ㆍ학과별 예시 성적 판명> 기사를 보면 배치표의 실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인문사회계와 자연계로 나눈 표에서는 순위/대학/계열(학과)/76년성적 등으로 구분해서 1위부터 50위까지 친절하게(?) 서열을 매겨놓았다. 이 서열별 점수로 학교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1983년 조선일보의 <내 점수로 어느 대학 갈 수 있나> 기사는 좀 더 노골적이다. ‘다음 표는 학력고사 성적 분포에 따라 합격 가능 대학 및 학과를 추정한 것이다. 대학입시사가 각 대학 커트라인과 지원경향에 비춰 작성한 것으로 학과선택에 참고토록 소개한다’며 점수 별로 대학과 학과를 일일이 나열했다.

대학학원의 <2004년 대학별 지원ㆍ배치 참고표>를 보면 대학을 정시모집 단위인 가ㆍ나ㆍ다 군으로 나누고 수능원점수로 등급을 매겨 놓았다. 상단 부분에는 ‘본 지원ㆍ배치 참고표는 대학학원에서 일선 진학지도 교사들과 공동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수험생과 교사들의 참고 자료이며, 대학ㆍ학과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님을 밝혀둡니다’라며 단순히(?) 참고만 하라고 한다.

그러나, 전국의 수많은 수험생들과 진학지도 교사들이 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는 명확하다. 고등학교에서 일선 교사들이 학생들 앞에 배치표를 쭈~욱 펴놓고 점수와 학교를 맞추는 일은 아주 익숙한 모습이 되었다.

참고만 하라는 입시배치표를 대신할 만한 것이 없다

대학학원의 2004년 입시 지원 배치표(정시모집 가군 대학 일부)
대학학원의 2004년 입시 지원 배치표(정시모집 가군 대학 일부) ⓒ 대학학원
그렇다면 과연 입시배치표는 믿을만한가?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매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A대학은 점수가 부풀려졌느니 B대학은 고평가인데 C대학은 저평가되었다느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배치표에 대한 문제제기는 비단 한 학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설학원들은 한 목소리로 입시배치표는 참고만 하라고 한다. 하지만 수험생들이 달리 참고할만한 입시정보는 크게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공교육의 영역에서 사설학원의 배치표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대학입시라는 중요한 선택의 기준을 왜곡한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말이다.

올해는 고등학교 3학년 66만 명 정도가 수능을 치른다고 한다. 이들은 11월 17일 수능을 치른 후 12월 14일 성적을 통보 받는다. 점수가 발표되고 나면 사설학원들은 배치표를 상업적으로 활용한다. 대성학원은 인터넷에서 배치표를 확인하는데 3000원을 부과하고 있다. 다른 학원들도 마찬가지다.

수험생들을 위한 확실한 대책은 ‘배치표 작성 및 배포 금지’

이런 배치표를 기준으로 삼아 대학에 진학했던 대학생은 입시배치표를 어떻게 바라볼까. 최근 교육부 홈페이지에 대학의 입학점수발표와 배치표의 신뢰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던 김민호(24)군의 말을 들어보자.

“대학선택의 기준은 극히 주관적인 것으로 배치표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입시학원에서는 수험생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수험생의 심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합니다. 그것도 기준이라 할 수 없는 자의적인 서열에 의해 대학을 줄 세웁니다.

2005년만큼은 엄밀히 말해 그 어떤 대학도 동일한 전형방식을 택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배치표는 무의미합니다. 선량한 수험생, 정말 대학입학이 절실한 수험생들을 위하여 미봉책이 아닌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 대책은 사설학원에 의해 진행되는 '배치표 작성 및 배포 금지'입니다.”

대학을 진학하는데 선택 기준은 중요하다. 다만, 그 기준이 점수로 서열화된 것이어서는 안된다. 대학 선택의 기준은 사설입시학원이 아니라 공신력 있고 사후 관리가 용이한 정부 관련 단체가 책임지고 마련해야 한다.

교육부를 비롯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 대학 선택을 책임질 단체는 많다. 대학 선택의 기준과 정보는 정부가 책임지고 제공해야 한다.

더 이상 입시배치표로 인해 수험생들과 학교 당국, 그리고 대학의 미래를 논하는 사람들이 정열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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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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