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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늘에 닿을 듯한, 이세상 사람들은 그 크기를 짐작도 하지 못할 거대한 말이었습니다. 여의주함의 보석의 빛줄기와 신비로운 동물들이 춤이 불러낸 구름 벌판의 말이었습니다.

호랑이들도, 선녀들도, 아이들도, 바리 전부 숨을 멈추고 그 말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말의 목줄기에는 새하얀 기다란 갈기가 신비롭게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그 갈기 뒤로, 새로운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아……”

선녀와 함께 있던 아이들은 그 분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태양 수백개를 모아 놓은 듯 붉고, 그의 이마에는 수천개의 횃불을 밝힌 듯 장대한 빛이 이글거리고 있었고, 그의 눈은 이세상의 모든 바다가 들어 앉아 있는 것처럼 거대했습니다. 그의 등 뒤로는 눈부신 안개가 병풍처럼 드리워져 그분의 날개가 된 듯, 아니면 커다란 망토가 된듯 말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앗.”

바리는 눈이 부셔서 고개를 돌려야 했습니다. 그때 바리의 뒤에서 그 말탄 분을 경외롭게 쳐다보고 있는 백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백호의 얼굴엔 지금까지 바리가 한번도 보지 못했던 눈빛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본 듯한,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던 사랑하는 사람을 본 듯한,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풍경을 본 듯한, 그 기쁨에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것을 바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치우……천황이다……….”

백호는 바리가 자기 옆에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한 모양인지, 혼자 말로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백호야……”

백호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그 분을 보고는 바위가 된 것처럼 꼼짝않고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바리는 얼른 백호를 껴안았습니다. 그리고는 따뜻한 가슴에 자기의 얼굴을 부볐습니다. 누군가 바리 귀에 이 순간이 백호를 보는 정말 마지막 순간이 될 거라며 속삭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바리는 백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보고는 말했습니다.

“백호야… 난 너를 영원히 잊지 않을거야……”

그리고는 그 하얀 말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빛을 뿜는 듯한 칼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 칼은 산맥 하나가 손에 들린 것 같았습니다.

거대한 호랑이는 그 백마 탄 사람을 공격하려는 것처럼 등을 돌려 그를 향해 돌진해 갔습니다. 백두산 수백개를 한자리에 쌓아 놓은 듯,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아무리 높이 올려도 닿지 않을 만큼 거대한 호랑이와 그 백마탄 사람은 서로를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했습니다. 호랑이는 그분을 말과 함께 쓰러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앞발을 위로 쳐들었습니다.

그 백마탄 사람은 빛을 뿜는 아름다운 칼을 호랑이의 심장을 향해 겨누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늘을 향해 높이 쳐들기만 했습니다. 호랑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하얀 말이 금방이라도 상처를 입고 붉은 피를 흘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 순간 하늘을 향해 쳐들린 그 칼은 또 한번 강렬한 광채를 뿜어냈습니다.

“아…..”

바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칼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빛줄기를 일월궁전에 쏟아부었습니다.

어쩌면 그 칼은 하늘을 찌른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하늘은 이세상의 모든 빛을 가득 담고 있는 자루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찔린 자리로 그 자루에 모아둔 빛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나 봅니다.

아니면 하늘이 그 칼에 찔려 금이 간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유리조각처럼 산산조각이 난 것 같았습니다.

그런 빛줄기들이 터진 물줄기처럼 하늘 틈새를 뚫고 일월궁전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빛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는 산이 무너져 굴러 내리는 소리 같았습니다. 수천만 마리의 말들이 한꺼번에 울리는 말발굽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백두산의 폭포 수천개가 한꺼번에 물을 뿜어내는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수억마리의 독수리가 한꺼번에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르는 소리가 그것과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강하고 억센 말들이 모두 모여 광야를 돌진하는 소리 같았습니다.

바리는 하늘 틈새를 뚫고 터져나오는 그 빛을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눈이 부시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빛줄기는 날카로운 칼처럼 바리의 마음을 쑤시고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그 빛은 날카로운 칼처럼 바리의 몸을 두동강 내고 지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 빛이 바리의 몸에 닿는 즉시 산산조각이 나서 부서져 내릴지도 몰랐습니다.

바리는 비명을 지르며 백호를 끌어 안고 엎드렸습니다. 순간 바리가 있던 그 구름 벌판에 구멍이 난 듯 바리의 몸은 어딘가 한없이 깊숙한 곳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듯 무너져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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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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