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 졸- 졸- 졸-
바스락- 바스락-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낙엽 지는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는 한라산의 가을이 겨울을 준비한다. 흐르는 물은 겨울이 싫은 듯 떨어진 단풍잎에 걸려 있다. 신록을 틔워온 푸른 이파리 하나가 가을 계곡 속에 제 몸을 숨긴다. 신록은 가을을 꿈꿔 왔지만 이렇게 빨리 계절이 지나 갈 줄 어찌 알았을까.
형상을 알 수 없는 기암괴석들이 가을하늘을 가로질러 병풍을 두르면, 가을 단풍은 서둘러 융단을 깔고 가을소나타를 연주한다.
지나가던 구름이 병풍바위 위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다. 푸른 바다 건너서 달려온 탓일까? 조각구름은 다리가 아픈 듯 긴 휴식을 취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한라산의 소나무가 키 자랑을 하면 얌전하게 계곡을 지키던 단풍나무는 곱게 물들인 다홍치마 자랑을 늘어놓는다. 자연도 저마다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세상, 세상의 이치는 자기 색깔이 분명해야 생존할 수 있는 것일까?
한라산 등산로를 뚜벅뚜벅 걷다가, 가던 길 멈추고 귀 기울여 보니, 한라산의 소나무 숲에는 아직 여름이 남아 있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돌 틈새로 돋아난 푸른 이끼. 물 속에서 피어나는 푸른 이끼가 생명의 위력감을 준다.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심장을 움직이는 고동소리처럼 느껴진다.
등산로의 시뻘건 가을이 옷을 벗는 11월 한나절. 한라산의 가을은 어제 보았던 모습이 아니다. 어제 보았던 가을은 아쉬움만 주고 겨울을 부른다.
숲 속에 숨어 있던 오백장군도 가을 옷을 벗었다.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는 것은 단풍잎만이 아니다. 남아 있는 단풍을 보기 위해 달려온 사람들은 짧은 그림자를 아쉬워하며 가을 산을 지킨다.
산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털썩 주저앉아 여유를 부려도 그 누가 나무라지 않는다. 오붓하게 앉아 있는 가족들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같이 느껴지는 순간, 이들이 꿈꾸는 천국은 어디쯤일까?
한라산 해발 1800고지에 피어 있는 빨간 열매도 화려한 외출을 나왔다. 한겨울의 눈을 기다리는 이 열매는 아마 겨울산 지킴이가 되어 줄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산의 매력이다. 형상을 알 수 없는 오백장군 뒤로 전설처럼 피어나는 서귀포의 앞 바다. 아스라이 떠있는 서귀포 앞 바다에 희미하게 서 있는 섬 하나가 보일 듯 말 듯 요술을 부린다.
바다에서 보는 섬이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라면 산에서 보는 섬은 안개 속에 피어나는 이상향이다. 바다에 가면 육지가 그립듯 산에서 바다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병풍바위에 걸려있던 마지막 가을은 선작지왓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늘 변함없이 정상의 의미를 전해주는 선작지왓은 가을햇빛이 반짝인다. 선작지왓은 한라산 정상을 숨겨놓은 곳이다. 어디 그뿐인가? 봄에는 철쭉을, 여름에는 신비를, 그리고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을 마음대로 그려내는 선작지왓.
선작지왓의 통나무 길을 걸어 본 사람이라면 산행의 여유로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을 걷는 사람들은 정상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윗세오름을 바라보며 심호흡 한번으로 한라산의 구름을 다 모을 수 있는 요술을 부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