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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비디오 대여 가게 <츠타야>의 한국물 전용코너
일본 최대 비디오 대여 가게 <츠타야>의 한국물 전용코너 ⓒ 유용수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열도에 지금처럼 한국에 대한 바람이 불어온 적이 있었을까 싶다. 물론 소위 말하는 '한류(韓流)'라는 것은 한국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라고 하기보다는 일시적인 대중 유행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에 언제라도 금방 다시 사그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이 재일동포 인권문제 개선이나 외국인 차별 철폐, 식민지하에서의 과거역사 참회 등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수반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일반 대중들에게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극적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일본 대중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는 "조선반도"(일본에서는 한반도를 여전히 조선반도로 부르고 있다)의 '조센징'이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그들에게 조센징이란 의미는 무섭고 사나운 사람들, 어리석고 거칠고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신용은 없고 돈만 밝히고 별로 배울 게 없는 하급인간들이라는 뜻을 은밀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 조센징 혹은 '쫑'이라는 말에는 열등민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함축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몇몇 일본인들은 한국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살을 찌푸리고 아예 상대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폐쇄적인 일본사회에 있어서 일종의 자기방어인 셈이다.

그러한 조센징으로서 한국인의 이미지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대중문화에 있어서 계은숙 등 일부 한국인 가수가 일본인들에게 사랑 받기는 하였지만 최근 들어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 변화를 가져다준 영화는 강재규 감독의 <쉬리>였다.

2000년 일본 전국 170개관에서 개봉돼 130만 관객을 동원한 <쉬리>는 멀고도 가까운 이웃이라는 한국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은 <쉬리>를 통해 자신들과 똑같은 감성과 친구간의 우정 등 일본인과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민족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가수로서 보아는 일본 젊은 세대의 우상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후 2002년 한일 공동 개최한 월드컵을 통해 그들은 붉은 악마의 투혼을 가진 한국에 대해 다시 놀라움과 경이를 간직하게 된다. 모든 것이 질서있고 차분하게 잘 정리되어 보이는 일본이 결여하고 있는 부분, 즉 투혼과 정열, 끈기 등을 한국은 아낌없이 보여주었고 그러한 모습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질투를 느끼게 함과 동시에 감동을 주었다.

일본 전철역의 간이매장에서 본 <겨울연가> 포스터
일본 전철역의 간이매장에서 본 <겨울연가> 포스터 ⓒ 유용수

그리고 드디어 2003년 <겨울연가>가 일본을 흔들었다. 배용준과 최지우가 주연한 이 TV드라마에 일본열도가 완전히 녹아든다고 표현해야할 정도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인들에게 이렇게 영향을 끼친 것은 일본이 잃어버린 따뜻하고 정열적인 정서를 느끼게 해 준 까닭이었다. 대개 30대 이후 주부층에서 시작된 <겨울연가> 열풍은 곧 한국의 연애물에 탐닉하게 만들었고 한류 열풍은 주부층에서 남녀불문하고 20대로 까지 번졌고 이제 한류 자체가 일종의 사회현상처럼 되어 버렸다.

<겨울연가> 주제가를 유창한 한국어로 열창하는, 도쿄의 한 스낵바의 여주인
<겨울연가> 주제가를 유창한 한국어로 열창하는, 도쿄의 한 스낵바의 여주인 ⓒ 유용수
지금 일본 아침방송 황금시간대에는 한국 TV드라마가 두세 개씩 계속 방영되고 있다.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라고 불리는 한국 대중문화 열풍은 이제 영화, 방송, 가요 등 전 분야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는 어떤 서점에 들어가도 배용준 이병헌 장동건 권상우 원빈 최지우 이영애 송혜교 전지현 등을 표지 모델로 한 한류 관련 잡지들이 쉽게 눈에 띈다. '욘사마'라고 불리는 배용준은 여기저기에 CF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어느 지방도시는 <겨울연가>를 테마로 한 테마파크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할 정도이다.

한류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한국을 잘 아는, 한 일본인은 이미 줄거리와 등장인물에 크게 변화가 없는 한국의 멜로드라마에 식상했다고 하며 더 이상 볼 여력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한류를 이용한 졸속 기획물이 일본인들의 기대를 져버려 그러한 배신감은 오히려 한류에 대한 역류를 일으킬 수도 있다.

어차피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멜로드라마나 영화에서 동경하는 따뜻한 인간미와 정(情)의 세계는 한국에서도 상실되어가는 덕목이기에 그들이 바라는 기대감이 깨어졌을 때 이 한류는 한때의 유행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리라.

한류가 지속되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끊임없는 창조적인 문화컨텐츠가 생성될 수 있는 환경의 제공과 국제사회에 걸맞는 양심있고 책임있는 기업인들의 문화 비즈니스 참여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도쿄 도심 전철역의 한국 영화 <올드보이> 광고
도쿄 도심 전철역의 한국 영화 <올드보이> 광고 ⓒ 유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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