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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평화 탁발순례단과 기념 촬영
ⓒ 정일관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는 강령을 세상에 던지며 탁발 순례를 통해 생명 평화의 씨앗을 온누리에 뿌리고 있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지난 16일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지리산 실상사의 전 주지인 도법 스님을 단장으로 '지리산 시인' 이원규님과 박남준 시인이 동행한 순례단은 지난 3월 1일부터 3년 일정으로 한반도 전역을 순례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지역을 시작으로 제주도, 부산을 거쳐 얼마 전 경남 지역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이번 경남 지역 순례에는 마산창원 지역 길라잡이였던 진달래님과 아들인 한결이, 그리고 곡성에서 홈스쿨을 하는 김평화('평화'는 실명이며 12살입니다) 어린이도 함께 동참했습니다. 순례단은 거제, 통영, 고성, 마산, 창원, 진해, 밀양, 창녕, 함안, 의령에 이어 지난 15일 합천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평소 도법 스님께서 대안교육에 관심이 많아 이번 원경고등학교를 방문하게 됐다고 합니다.

▲ 생명평화 탁발순례단 일행들. 평화와 한결이도 참가하였습니다.
ⓒ 정일관
생명평화 순례단은 이라크 전쟁 전후로 한반도에 핵 위기가 고조되자 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에 근거해 생명 위기 시대에 생명을 살리자는,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를 지켜내는 '10만 평화군'을 양성하자는 소망에서 시작했습니다.

원경고등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한 순례단은 도서관에서 원경고등학교 교사들과 합천 지역 전교조 교사들과 함께 도법 스님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로 교육에 대한 얘기들이 오갔는데, 대안중학교인 '실상사 작은 학교'를 경험하신 도법 스님은 "교육의 문제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님"을 설파했습니다.

▲ 탁발순례단의 여정을 담은 영상물 상영
ⓒ 정일관
도법 스님은 교육 문제는 단순한 교육 정책의 변화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통찰이 필요하며, 아울러 인류 역사에 대한 문명사적인 반성과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0세기 100년의 인류 역사는 끝없는 전쟁과 참상의 역사였고, 현재 '생명 위기'라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동안 잘못 걸어왔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겁니다.

도법 스님은 생명은 안정성과 건강성을 원하고 평화는 반드시 그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므로, 생명의 안정성과 건강성이 담보되는 교육, 평화로운 삶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가치가 실현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원경고등학교, 전교조 교사들과 나눈 대화의 시간
ⓒ 정일관
생명 평화 사상을 실현하려면 그 근간을 이루는 자연·농업·농촌이 살아나야 하는데, 현재 농촌은 사형 선고를 받은 정도가 아니라 이미 집행된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생명평화운동은 지역운동이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부터 생명평화의 문화를 익힌 다음 그 기운을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도법 스님은 한반도와 미국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 나라의 이라크 파병은 6·25 전쟁 이후 우리가 생명 평화의 문화를 가꾸어 오지 않은 당연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또 미국의 부시를 폭력적이라고 비난하는 우리들도 부시를 증오하는 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부시는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우리는 심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 도법 스님의 생명 평화 사상 특강
ⓒ 정일관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의 폭력'을 먼저 종식 시키고, 생명과 평화의 논리를 확산시켜 한반도 4천만 국민이 폭력과 전쟁을 막아낼 때, 우리 민족은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경고등학교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도법 스님은 원경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셨습니다. 특강에 들어가기 전 이원규님은 지리산 시인답게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유장하게 낭송했습니다.

도법 스님은 "탁발이란 동냥질인데, 그럼 무엇을 동냥하려 하는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7000리이고 만난 사람이 2만명이다. 우리가 동냥질로 얻으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을 얻으려는 것이고, 그래서 여러분을 얻고 싶어서 여기 왔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 다음 도법 스님은 "생명 평화의 사상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임을 인식하는 것"이고, "부자가 되고 승리하는 능력보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하여 존중하고 감사하는 능력이 진정한 능력이고, 이 능력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길"임을 역설했습니다.

끝으로 도법 스님은 생명 평화의 간절한 열망을 담아 원경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세상은 내가 변한 만큼 변합니다."

특강을 마친 후 도법 스님은 원경고등학교에 '생명 평화의 등(燈)'을 전달하고 아이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전하는 <생명평화 서약문>

평화는 모심과 살림이며, 섬김과 나눔의 다른 이름이요,
함께 어울림이며, 깊이 사귐입니다.

생명 평화의 길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념이요,
깨어있는 선택이며, 지금 여기서의 행동하는 삶입니다.

나는 이러한 간절한 믿음과 소망을 담아 다음과 같이 서약합니다.

첫째,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겠습니다.
둘째, 모든 생명을 우애로 감싸겠습니다.
셋째, 대화와 경청의 자세를 갖겠습니다.
넷째, 나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청빈하게 살겠습니다.
다섯째, 모든 생명의 터전을 보존하겠습니다.
여섯째,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한 길에 앞서겠습니다.
일곱째, 끊임없이 깨어 공부하겠습니다.

나는 이제 평화의 등불입니다.
그렇게 일정을 마무리하고 운동장에서 석별을 정을 나누는데 아침에 잔뜩 끼었던 안개가 말끔히 걷히고 햇살이 무척 따사로웠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생명과 평화의 문화를 모르고 자란 원경고등학교 학생들에게 3년을 걸어서 전국을 순례하려는 순례단과 도법 스님의 강연은 어쩌면 뜬금없는 가르침으로 보일지도 모르고, 충격일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생명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생명 평화의 사상과 실천은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입니다. 생명과 평화를 건강하게 지키고 가꾸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이 함께 복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아이들 속에 생명 평화의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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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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