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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부정'이라는 대형 사고가 터진 후에야 TV 심야토론을 비롯해서 온갖 매스미디어가 아우성을 치고 있다. 아우성친들 무슨 소용인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아니 '고치기'는 할 수 있을까? 눈 꼬리 한번 올라가고 다시 원 위치다.

오늘도 정규수업이 끝나면 EBS 방송수업, 방송수업이 끝나면 자율학습이라는 미명 아래 학생들은 환하게 불 켜진 교실이라는 사육장에서 그야말로 사육을 당해야 한다. 사육장에서 풀려 나오면 그들은 또 어디로 몰려 가나. 교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학원 차에 다시 몸을 맡긴다. 잠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눈을 붙인다. 우리 나라의 일반적인 고등학교 학생들의 모습이다.

자율학습 감독 교사의 억센 목소리가 오늘도 여지없이 들린다. "야, 이 XX야, 어디가? 이리와. 전부 여기 엎드려. 누가 도망가랬어?" 이제는 귀에 익어 웬만한 말 정도에는 나도 덤덤하다. 복도의 모퉁이를 막 돌아서려는데 한손에는 가방, 다른 손에는 운동화를 들고 납작 몸을 아래로 낮추어 숨어 있던 몇몇 아이들이 내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꽁지가 빠져라 하고 온 힘을 다해서 도망친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견딜 수 없는 씁쓸함이 가슴을 눌러온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하나? 왜 저 학생들은 당당히 학교 문을 걸어 나갈 수 없나?

학교도, 부모들도, 학생들도, 공통된 목표는 오로지 수능시험에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3년 내내 한가지 목표를 향해서 줄기차게 달려간다. 일렬로 줄 세운 대열에 아무쪼록 다투어서 앞에 서야 한다. 그 이외의 다른 것이 끼어 들어올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 인성교육, 전인교육, 기본생활 습관지도는 이제는 구호조차라도 명색을 읽은 지 오래다.

학생들은 복도에서 선생님 어깨를 치고 가도 “죄송합니다”라고 말 할 줄 모른다. 교무실 문을 있는 대로 열어젖히면서 시장바닥 장터처럼 큰소리로 말하고 목례 하나 없이 들어와도 어느 누구도 딱히 그것을 지적하지 않는다. 예의와 질서와 존경심이 살아 숨쉬어야 할 마지막 보루인 학교는 더 이상 그런 가치 기준을 높게 받드는 배움의 전당이 아니다. 학생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앞만 보고 가고 있고, 교사들은 일일이 입에 올려 지도하기도 맥이 빠지고 지쳤다.

악다구니고 전쟁이다. 모든 체제가 대입학수능 위주로 움직인다. 수능문제 한 문제를 더 맞히기 위한 교육이다. 사교육비 절감의 한 대책으로 교육부에서는 문제 풀이식 방송강의를 시장에 내 놓으면서 학생들과 부모와 심지어 교사들을 위협했다.

현장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의 공부의 형태는 어떤가? 고3 신학기가 되고 각 과목별로 문제집이 결정되면 학생들은 비슷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 풀면서 일년을 보낸다.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그들의 공부의 모양새는 거의 같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비판하고, 토의하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나누는 공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생각 주머니는 오로지 수능 점수 좋게 올려 좋은 대학 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들을 그렇게 사고하도록 몰아 붙였다. 나라도, 학교도 부모도 그 길만이 살길이라고 목소리 높인다. 나만은 아니라고 말하지 말자.

태능 선수촌에 들어가 금메달리스트로 키워지는 운동선수들과 고등학교의 학생들과 뭐가 크게 다른가? 장차 학교를 빛낼 특별 학생들이 직간접으로 뽑히고 결국 학교의 모든 관심과 애정은 그들에게 쏟아진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 있느냐고? 있다. 잔인한 말이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미운 오리새끼이고 들러리다. 이 체제에서 살아남는 학생들은 살아남고, 본인의 게으름까지 포함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살아남지 못하는 학생들은 아웃사이더로 내동댕이쳐질 수밖에 없다. 결국 거의 모든 학교들은 수능 고득점을 따올 몇몇 학생들을 길러내는 3개년 일모작 농사터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계획할까? 질서와 순리의 경시, 예의와 존중의식의 부재, 옳고 그름의 판단력 상실, 토론 문화와 독서의 결핍, 오로지 성적과 수능 지상주의의 이 체제와 분위기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과연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면서 인생의 가장 예민하고 소중한 시기를 보내게 되는 것일까?

낮은 곳에서부터 머리에 머리를 맞대 보자. 가슴과 가슴으로 답을 찾으려 몸부림치다 보면 얼키설키 엉켜버린 실타래의 첫 부분을 찾게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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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음 좀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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