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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한·미 정상회담은 북-미 핵 문제에 대한 부시의 정책을 당분간 유연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유연한 기간이 얼마가 될지, 무엇을 계기로 돌변할지가 걱정거리로 남기는 하지만 한국 정부로서는 핵 문제에 좀더 과감하게 개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공식 탄력을 받고 있는 남북 정상회담과 특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북·미 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

"특사 언제 가요? 누가 거론되나요? 정상회담 전망은 어때요?"

이런 속사포같은 질문에 오랜만에 만난 정부 당국자는, 약간은 어이없다는 미소를 짓더군요.

"요즘에 하도 많이 물어봐서 이젠 이렇게 대답해요. 준비하고 있어요. 때가 되면 가겠죠. 열심히 해야죠."

서로 웃고 말았는데 당국자의 말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특사에 대한 정부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투(2) 트랙이라는 시커먼 글자로 뽑은 신문 제목들이,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면서, 생각까지도 이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민 A : "정부가 북이랑 꿍짝짝을 해서, 갑자기 뻥 터뜨리겠지? DJ도 그랬는데."
시민 B : "맞아. 그리고 또 현금을 줄 거고."
시민 C : "3월인가 4월인가, 내년 봄에는 재보궐 선거도 있잖아. 그 전에 뭔가를 하겠지 뭐.""

분단으로 한국 정치 상황에 익숙한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속 빠른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국 국내의 변수는 둘째치고 북·미 핵 문제만 놓고 볼 때도 특사와 그에 따른 2차 정상회담(또는 특사 없이 바로 정상회담)은 정치권과 일부 전문가들은 물론,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사견을 전제로, 경우에 따라서는 공개적인 발언을 통해 상당히 폭넓게 검토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미 핵 문제를 중점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당국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최근 만난 두 명의 당국자들은, 공통으로 남북정상회담과 특사를 이 시점에서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들의 자리를 밝힐 수는 없지만,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 기간은 정상 회담과 특사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심각하고 본격적으로 추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핵 문제가 급격하게 악화돼 결정적인 위기 국면, 예를 들어 부시 행정부의 군사력 동원 움직임이 감지되는 등의 위기 상황에서는 다른 얘기일 것입니다.

"정상회담·특사 성과 없을 땐 오히려 부담"

정상회담과 특사에 대한 일부의 주문과 기대와는 달리 이들이 소극적인 이유는, 먼저 정상회담이나 특사로 핵 문제를 풀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당국자 A : "현재의 상황 돌파를 위해 필요하다는 얘기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부담이 너무 크다. 정상회담이 잘 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특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먼저 제안하기는 했지만, 2003년 1월에 북한이 오라고 해서 임동원 특보가 갔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을 아예 만나지도 못했다. 남북 관계는 점진적으로 진행시키는 것이 좋다. 북한은, 미국에는 요구할 것이 많지만, 우리에게는 없다…바꿔 말하면 (우리에게는)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레버리지(지렛대)가 없다는 얘기다. 쌀, 비료를 레버리지로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당국자 B : "정상회담 전에 밝혔던 '주도적 역할'이 회담에서 빠진 것을 주목해라. 한국이 주도적으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도적으로 해결할 위치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열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북을 움직일 수가 없다. 핵 문제는 결국 미국이 움직여야 한다…정상회담을 지금 열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북포괄지원은 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는 할 수 없다. 쌀, 비료는 레버리지가 아니다."


좀더 설명하자면, 특사가 가면 핵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는데 남쪽이 나섰다고 북쪽이 돌파구를 열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투명한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그것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를 생각하면 오히려 핵 문제가 악화할 수 있는, 즉 미국으로서는 대북제재의 명분만 더 쌓을 수 있는 후폭풍이 우려된다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대북포괄지원을 거론하고 있지만, 핵 문제가 풀리는 시점이나 결정적 위기 국면에서 쓸 수 있는 카드지 지금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상회담, 지금은 아니다…남북 관계 재개가 먼저"

그렇다면 특사나 정상회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지금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 정확하다"고 이 당국자들은 다소 조심스럽지만 거리낌없이 말했습니다. 여기에다 내년 3, 4월로 예상되는 국회 의원 재보궐 선거와는 선을 그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내 정치에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남북대화를 활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래도 특사 방북, 정상회담을 언제쯤 하겠다는 시간표가 있지 않느냐는 직업병과도 같은 질문에 이들은 일단 현재 중단된 남북 대화가 재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당국자 A : "이번 적십자 회담에 큰 기대는 어렵지만 이제까지 남북 회담을 보면 교착 국면에서 적십자 회담을 먼저 연 뒤, 당국간 대화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당국자 B : "특사, 정상회담은 갑자기 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세스 속에서 열려야 한다. 6자 회담이 진행되고, 남북 관계도 풀리고. 또 미국 쪽의 인사도 봐야 한다…북쪽이 남북관계 경색을 오래 끌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달이냐 다음 달이냐, 시기가 문제로 본다. 장관급 회담을 재개할 것이다. 장관급 회담 등 각급 회담에서 핵 문제, 남북관계 다 얘기할 것이다. 그렇지만 특사는 다른 채널에서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질문: "가게 되면, 특사는 누가 좋나요?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은데? 또 얼마 전에 임동원 전 특보가 세종연구소로 가셨는데, 의미가 있나요? 정세현 전 장관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던데?"

당국자 A: "특사로 누가 갈까는 이렇게 비유를 들 수 있어요. 한국 축구가 아무리 어렵다고, 홍명보를 다시 쓰기는 어렵잖아요. 홍명보가 한국 축구에 대해 축구장 밖에서 글도 쓰고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다시 선수로 뛸 수는 없잖아요. 어려워도 신인 선수들을 기용해야 하죠. 지금 갈 만한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부 논리에 대한 반론…"핵 문제 교착 때문에 오히려 추진해야"

정상회담과 특사에 대한 이같은 논리에 대해서는 반론이 만만찮습니다. 오히려 핵 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북 정상이 모여, 북한의 동결을 이끌어내면서, 핵 문제에 대해 남북이 주도권을 잡아야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고, 결국은 북한을 움직여야 핵 문제를 풀 수 있는데다, 그나마 북한이 6자 회담에도 나오지 않고 있는 만큼, 특사라도 빨리 가야한다는 논리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정부에서 핵심 위치에 있던 고위 당국자는, 남북정상회담을 해도 북한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현 정부의 주장에 대해, 뼈있는 한 마디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조인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관계와 북·미 핵 문제를 피고와 원고의 논리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죄가 있거나 없는 일종의 흑백 논리, 단순한 논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직 고위 당국자는 남북 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며 6·15 정상회담 당시에 DJ는 무모할 수도 있고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설득했다며 현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를 아쉬워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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